알파고,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를 각인시키다
  • 김진형 제1대 소장 (2013.12. ~ 2016.07.)
날짜2016.03.14
조회수8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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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파고의 성과는 인류의 승리다.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번 대국 그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인류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컴퓨터를 발명한 것이 어언 70년. 이후 꾸준히 발전한 컴퓨터과학은 인간 최고수를 능가하는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많은 가능성을 순식간에 검토해 최적의 한 수를 찾아내는 능력은 계산 속도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기보를 통해서 수를 배우고, 프로그램끼리 스스로 두는 바둑에서 좋은 수를 더하는 학습능력이 놀랍지 아니한가? 아, 알파고 프로그램은 예술이다.
    • 컴퓨터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다. 사람의 생각을 옮겨서 자동화하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사측계산과 비교하는 능력뿐인 이 기계에 일을 시키는 것은 사람이 작성한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의 명령에 따라 컴퓨터는 빠른 속도로 지시된 작업을 수행한다.
    • 그런데 큰 사건이 일어났다.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을 인간이 터득한 것이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점진적 발전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격언을 실현한 것이다.
    • 컴퓨터는 이제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데이터로부터 학습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생겼다. 18년 전 서양 장기에서 인간 고수를 물리친 딥블루도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이 판단은 했었지만, 이번 알파고는 기보로부터 배운 능력과, 또 자기들끼리의 대국에서 스스로 깨우친 능력으로 대국에 임했다. 기계학습의 가공할 능력을 전 세계인이 같이 본 것이다. 개발자들도 그 능력에 놀랐다.
    • 이쯤 되면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 공상과학영화를 연상하고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은 지시하면 학습하고 사람의 지능을 따라하는 능력은 있으나 의지를 갖고 목표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충실한 하인이 글자를 깨쳐서 더욱 똑똑해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아의식이 있고, 사랑이나 증오 등의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의지를 불태우는 인공지능은 지금으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 소프트웨어, 특히 인공지능은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는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깊고 광범위할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돼 창조적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 풍요롭고, 해결책이 풍부해진다. 또한 많은 사회 기능이 소프트웨어에 의존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소프트웨어 능력이 개인, 기업,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알파고의 승리는 우리가 이미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회에 와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주었다.
    • 인공지능이 확산되면 사람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지금 일자리의 63%가 없어지거나 직업의 내용이 바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이다.
    • 지금과 같은 교육 내용과 방법으로는 미래세대를 육성할 수 없다. 이제는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살린다. 지금 세계는 인재전쟁이고 교육전쟁 중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초·중·고 정규교육에 소프트웨어를 포함하기로 했다. 알파고 승리를 보면서 이 정책 결정이 참 잘된 것이었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 육체노동만이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자동화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향상된 생산성으로 전 인류가 풍요를 같이 누릴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생존하기 위하여 일했다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일은 안 해도 된다. 일은 기계에 시키고 인간은 더욱 많은 시간을 인간답게 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문화예술이 크게 신장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능력을 인류가 공통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 이를 위해서는 생산성만큼의 기본적 복지를 보장하되, 창조적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역동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자본보다는 지식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 지식은 공개, 공유, 협동으로 가치를 더할 수 있다. 알파고를 학습시킨 소프트웨어가 공개 소프트웨어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기술 발전에 동참하면서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알파고와의 대국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 진입을 알리는 팡파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교육이, 정치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