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혁신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에서 공유경제 기업인 우버, 에어비앤비로 최근에는 아마존으로 그 뜨거움이 옮겨가는 것 같다.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의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나라는 왜 그런 기업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는지, 각종 규제와 기존 참여자와의 갈등, 사회문화적 차이 등 다양한 분석들이 뒤따른다. 마치 기업의 혁신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고, 글로벌 혁신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본받아서 기업이, 정부가, 개인이 혼연일치하여 힘써 나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혁신이라는 거대한 추세에 감히 대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혁신 결과 또는 그 과정 중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수익성과 성장성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는 주주이익 극대화, 사회적 책임 실현 등 여러 논의가 있지만 수익 창출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깨어지지 않을 진리처럼 여겨져 왔다. 이것을 깨트린 기업이 있다. 올 초(2019.1.7.)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기업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창립 이후 24년여 동안 마이너스 또는 제로에 근접한 순이익률을 지속해 왔다. 제프 베조스가 말하는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은 낮은 비용구조와 낮은 가격으로 좋은 고객경험을 제공하면 트래픽이 증가하고 판매자 유입과 고객의 선택으로 이어져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논리이다. 이 모델은 연 단위의 수익을 중시하는 기존 경영방식과 다르게 ‘장기적 전략’이라고도 불리며 그 중심에는 수익성 대신 오직 성장만 존재한다.
[그림 1,2] 그림 1 아마존 매출 / 순이익 추이 , 그림2 아마존 비즈니스 모델
※ 자료 : 티타임즈(2019.3.12.), IT동아(2019.3.23.)
성장성을 중시하는 경향은 미국 IPO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8년 기준 미국의 적자 상장 비율은 80%에 이르러 2000년 IT버블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적자 기업의 증시 상장을 허용하지 않지만 미국은 이를 허용하고 있고 증권 시장에 작년에 상장한 기업 중 80%가 적자기업이라는 의미이다. 올 3월에 상장한 차량 공유 서비스 2위 기업 Lyft는 2018년 적자규모가 약 1조 원 정도로 역대 상장기업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5월 우버도 영업적자가 매년 3~4조 원 정도인 상태에서 적자 상장을 했다. 당장 수익은 나지 않더라도 이들 기업의 미래 성장성과 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표방하거나 장기적 성장의 관점에서 의도된 적자를 내세우며 선 성장, 후 수익의 길을 걸어가는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수익성이 아닌 성장성을 기업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림 3,4] 미국 증시 적자 상장 비율 추이 , 상장기업의 적자규모 순위
※ 자료 : Jay Ritter,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에서 재인용(2019.3.30.)
장기적 관점으로 성장을 계획하고 단기적 수익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이를 위해 수익을 재투자하고 고객을 확충하겠다는 전략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성장성과 수익성은 상호 트레이드오프(Trade Off)가 있고 하나만 취하고 하나는 버리고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단기 수익성을 제쳐두고 성장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면 리스크(위험)가 동시에 상승한다. 자체 수익으로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외부자금 비중을 늘리면서 상승하는 재무적 리스크 외에도, 성장에 대한 과신과 그것에 집착하게 되는 CEO 리스크, 투자자들의 기대수익률 등이 동반상승한다. 이러한 리스크나 위험신호들은 성장이라는 기대 하에 부정되거나 무시되기 일쑤이지만 작은 리스크나 위험에도 기업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주식투자에서 주로 사용되는 베타(β)계수는 개별 기업의 리스크 정도를 나타낸다. 베타가 낮다는 것은 개별 기업이 외부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의미1이고, 반대로 높다면(통상 1보다 큰 경우) 시장 평균보다 변동성이 커서 위험이 높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아마존의 기업가치가 세계 1위로 올라선 2019년 초에 공교롭게 아마존의 체계적 위험을 나타내는 베타계수는 사상 최고치(1.76)를 기록했다.2 미래 성장성 등을 감안하여 기업 가치는 최고로 올라갔지만 그만큼 커진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의 위험수치도 동반 상승한 것이다.
[그림 5] 아마존의 베타계수 추이
※ 자료 : Amazon in risk zone Part 2(Oleh Kombaiev, 2019.3.18.)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참신한 아이디어와 성장성을 앞세워 수십억 달러를 투자받아 단숨에 유니콘 기업으로 떠오르는 기업들이 많고 그만큼 망하는 기업도 많다. 2017년 망한 미국의 10대 스타트업들이 투자 받은 금액은 약 1조 8천억 원에 달한다.3 미국의 생활용품업체 러버메이드는 미국 기업인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 1위로, 3M, 애플, 인텔 등 보다 혁신적인 기업으로 찬사를 받아왔지만 설립 78년째인 1998년에 매각되었다. 매각되기 전 CEO였던 스텐리 골트가 핵심 목표로 삼은 것이 바로 ‘성장’이었다. 성장을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할인(Low Price)을 했다.4 제프 베조스가 주장하는 장기적 성장과 고객확보를 위한 저가 전략이 오버랩 된다.
아마존처럼 저가전략을 추구하던 차량 공유업체들도 저가 서비스에 따른 이용자 규모 확대의 강점을 포기하고 수익 우선 전략으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의 경우 누적적자가 6조 원대에 달하고 있고, 지난 11일부터 베이징 출퇴근 시간대 이용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 미국의 우버나 리프트, 동남아시아의 그랩 역시 요금 인상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5
엄청난 규모의 적자가 지속되어도, 기업의 비전과 미래 성장성을 믿어주는 투자자들이 수익 발생까지 그 적자를 계속 감당해 줄 수 있다면 장기적 성장을 통한 혁신의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믿어준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될 것이고, 리스크로 가득 채워진 풍선은 아주 사소한 바늘로도 터질 수 있다. 장기 성장성은 리스크 관리와 병행해서 추구되어야 하고, 장기적 성장을 위한 단기적 수익 무시는 어떠한 이유를 들어도 위험한 생각이다.
시장 지배력의 과도한 잠식
성공적인 혁신의 과정에서 또는 혁신의 결과로 시장 지배력이 확장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확장된 시장 지배력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고 발생된 이윤은 지속적 혁신과 성장을 위한 재투자로, 낮은 비용구조는 소비자 경험으로 축적되어 시장 지배력은 계속 확대된다. 다만, 그 시장 지배력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확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살펴 볼 부분이 있다.
아마존 되다(To be Amazoned). 아마존이 진출하는 곳은 아마존에 의해 초토화된다는 의미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하여 온라인·오프라인 유통, 물류, 식품, 의류, 헬스케어 등 발을 담그는 분야마다 기존 사업자들의 시장 지배력을 잠식하고 추락시킨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하여 기존 사업자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혁신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소비자 경험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독점의 폐해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6
[그림 6] 분야별 시장 점유율
※ 자료 : 머니투데이(2018.3.29.), 독점의 폐해를 드러내기 시작한 아마존
그러나 이러한 혁신이 일어나는 과정의 이면은 가차 없고, 때론 비열해 보이기도 한다. 수익기여도나 협상력이 낮은 출판사로부터 이익을 착취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7을 운영하거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이후에는 혁신적 경쟁자의 출현을 모니터링하고 대상 후보들을 고사시키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세율이 낮은 룩셈부르크에 법인 설립 후 매출 몰아주기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려다가 유럽 국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8
기업 간 경쟁에서 경쟁우위가 있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퇴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더구나 확대된 시장 지배력을 소비자에게 환원한다는 논리에는 비난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보면 아마존 되어버린 경쟁자들과, 아마존에게 착취당하는 공급자들에 대한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구성원 역시 아마존의 소비자들이 될 수 있으며, 아마존이 장악하고 있는 생태계에서 소비자는 아마존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소비자 경험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통과 같은 O2O 시장에서 샛별배송, 로켓배송 등 물류혁신으로, 최저가 전략으로 업체 간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주문한 제품 배송이 하루를 넘기면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무료 배송 안 해주면 결제버튼을 누르기 아깝다. 싼 가격에 빠르게 받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이게 과연 적당한 가격인 건지, 이렇게 팔아도 안 망하는지 내가 괜한 걱정이 든다. 어묵 하나 배달시켜도 다음 날 새벽에 아이스팩과 스티로폼 박스로 꽁꽁 싸매서 배송해 주는 걸 보면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제 동네에서 정말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구멍가게는 뭘 팔란 말인지.
업체들 간의 이런 경쟁을 지켜보고 있으면 불안하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 경험을 제고시켜 충성 고객을 Lock in하고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낮은 가격이 혁신에서 비롯되지 않고 기업 스스로의 또는 누군가의 출혈로 만들어 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경쟁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말고, 생태계 구성원들이 공존할 수 있는 적절한 가격 구조를 만들고, 건전한 생태계 안에서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고객 경험을 높여 나가는 방향으로 회귀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혁신은 사후적으로 이름 지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유사한 경로로 성장해 나가다가 실패한 기업에게는 비난과 함께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성공한 기업에게는 온갖 찬사와 그 기업이 걸어온 경로 하나하나가 베스트 프랙티스가 되어 혁신의 비법처럼 회자되곤 한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파괴적 혁신’은 자원을 적게 가진 진입 기업이 기존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비즈니스에서 기존 기업들의 존속적 궤적과는 다른 파괴적 궤적의 혁신을 진행하며 시장의 상층부로 올라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9 이 이론은 지난 20년 동안 아주 널리 보급되었음에도 이론이 주장하는 핵심적 논리보다 용어 자체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오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치 혁신에는 파괴가, 희생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파괴하지 않으면 파괴당한다, 혁신의 희생물이 된다는 식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그러한 용어 자체가 남용되는지의 여부보다 파괴적 혁신의 과정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무작정 베스트 프랙티스로 따라가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았다. 성장성과 수익성, 시장 지배력의 과도한 잠식, 각각의 주제들은 필자가 풀어낸 방향과 정 반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상당히 많고, 학술적으로도 논의의 여지가 매우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혁신을 위해 기업들이 추종하는 가치의 편향성과,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지나친 방식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단기 수익성을 챙기지 않고 장기 성장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작은 위기에도 쓰러질 수 있는 리스크가 확대되고,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과도하게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관련된 생태계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무너질 수 있다.
파괴적 혁신을 주창한 하버드대의 크리스텐슨 석좌교수가 작년에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의 번영에 대해 놀랐지만 한국인들이 불행해 보인다라고 했다.10 글로벌 유니콘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 여러 개가 올라갈 만큼 혁신적인 기업과 혁신적 서비스는 늘어나고 있는데 왜 우리 삶은 더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특정가치에 지나치게 편향되고, 과도하고 포괄적인 파괴력으로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태계 구성원들의 희생이 수반되고, 우리 삶에 중요한 가치들이 함몰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혁신은 기업의 지속 생존에 필수적이고,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들의 사례를 적절히 벤치마크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혁신기업의 모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말고 균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혁신은 그 자체로 훌륭한 가치이지만 혁신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지나치면 혁신을 하지 않으니만 못할 수도 있다. 혁신의 과정 중에 과유불급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