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는 빠르면 내년 즈음 출시될 전망이다.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는 초당 100경 번 연산(1엑사플롭스)을 할 수 있는 컴퓨터로, 슈퍼컴퓨터 분야의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의 개발은 그 과정에 많은 암초가 있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성장세가 둔화된 연산처리장치다. 연산처리장치는 “매 18개월마다 연산처리장치의 성능은 2배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아래 급격하게 성능이 향상됐다.
이러한 연산처리장치의 급격한 성능 향상을 토대로 슈퍼컴퓨터는 지난 수십 년 간 큰 어려움 없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최근 5년 간 연산처리장치의 성능이 2배가 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점차 길어졌다. 이것은 바로 트랜지스터 공정에서 발생하는 양자터널링 때문이다. 양자터널링은 트랜지스터 공정이 특정 수준 이하로 진행될 경우 전자가 통과할 수 있다는 문제다. 이를 극복하거나 우회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새로운 연산처리장치 개발을 늦추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연산처리장치의 멀티코어, 매니코어화는 효율적인 병렬처리에 대한 SW 기술을 요구한다. 현재 Top 5001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슈퍼컴퓨터의 연산처리코어 수는 백만 개를 훌쩍 넘어선다. 특히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는 수 천만 개의 코어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어, 병렬처리 기술이 매우 중요한 도전 과제로 부상했다. 수치적으로 코어의 수는 수십 배 증가하지만, 복잡도는 수백 배 이상으로 증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래 최초의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개발은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중요성을 갖는다. 국가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보유한다는 것은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의 과학기술력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는 세계 최고를 향한 주도권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 중 하나다. 도전적인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향후 슈퍼컴퓨터 산업과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를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를 향한 국가 간 경쟁은 미국과 중국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일본과 유럽이 그 뒤를 쫓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슈퍼컴퓨터 분야에서도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풍부한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슈퍼컴퓨터 분야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10년간 중국의 거센 추격에 밀려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여러 지표에서 정상자리를 내줬다. Top 500 목록에서의 슈퍼컴퓨터 보유 수, 생산 기업,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 등 항목에서 정상을 차지한 중국은 이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슈퍼컴퓨터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발돋움 했다. 중국은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의 상용화 시점 역시 미국에 앞서 있다. 중국은 2020년까지를 목표로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개발 로드맵을 제시한 데 비해 미국은 이보다 1년 늦은 2021년을 목표로 한다.
미국은 지난 2019년 3월 미국의 첫 번째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가 될 아르곤 국립 연구소의 Aurora를 공개했다. Aurora는 세계 최대의 연산처리장치 생산 기업인 인텔에 의해 구축될 예정이며, 인텔의 3세대 10nm 가속기인 코드명 나이츠밀(Knight Mill)이 탑재될 예정이다. Aurora의 성능은 1엑사플롭스이며, 2021년을 목표로 구축될 예정이다. Aurora는 특히 딥러닝을 비롯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한다. 미국은 또한 지난 5월 Aurora에 이어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인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의 Frontier를 공개했다. Frontier는 연산처리장치 생산 기업인 AMD가 개발하며 1.5엑사플롭스의 성능을 목표로 한다. Frontier는 Aurora와 마찬가지로 2021년 데뷔를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로렌츠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가 또 다른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인 El Capitan을 2022년까지 구축한다고 밝혀 미국은 총 3대의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구축 계획을 공개했다.
한편, 중국은 텐허-3(Tianhe-3, 天河三号)으로 명명된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를 2020년까지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세 기관에 R&D 과제를 지원하여, 세 가지 프로토 타입이 경쟁하는 구도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의 국가병렬컴퓨터연구센터가 개발했고, 지난 2016년 세계 정상을 차지한 슈퍼컴퓨터인 중국의 선웨이타이후라이트의 CPU인 SW26010을 활용했다. 두 번째 프로토타입은 중국의 슈퍼컴퓨터 전문기업인 슈곤(Sugon)이 제작했는데 AMD의 클론 CPU인 Hygon과 가속기인 DCU를 혼합한 구조다. 마지막으로 중국국방과학대학은 CPU와 Matrix-3000이라고 명명된 DSP(Digital Signal Processor)를 활용한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이 프로토타입은 8개의 CPU와 8개의 DSP가 하나의 노드에 탑재되어 노드당 96테라플롭스의 이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미중의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의 구축 경쟁은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의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 될 것이다. 만약 중국이 예정대로 2020년에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개발에 성공한다면 중국의 과학기술력을 전 세계에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도 2022년까지 3대의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를 보유할 예정이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이 갖는 무게는 무시할 수 없다.
지난 6년간 중국의 슈퍼컴퓨터 텐허-2와 선웨이타이후라이트가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로 1위를 독점해 왔다. 또한 중국은 다양한 슈퍼컴퓨터 항목에서 중국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은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 종주국 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중국의 추격에 의해 글로벌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 2~3년 내에 드러날 차세대 슈퍼컴퓨터 경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1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를 1위부터 500위까지 공개하는 비영리단체로, 매년 6월과 11월에 리스트를 공개하며, 측정은 배정밀도(Double-Precision)를 활용한 HPL(High Performance Linpack)의 성능을 기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