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칭자리(Libra)는 초여름 무렵부터 볼 수 있는 별자리다. 황도12궁의 7번째 별자리로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가지고 다니던 저울로 알려져 있다. 아스트라이아는 분쟁이 일어나면 그 당사자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옳고 그름을 쟀다고 한다. 지난 초여름이 시작되던 6월에 페이스북이 발표했던 리브라(Libra) 프로젝트는 바로 이 천칭자리를 뜻한다. 리브라는 계획 발표 직후부터 미국 정부와 의회의 부정적인 견해를 마주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브라 암호화폐에 대한 우려를 트위터를 통해 공공연히 표명하기도 했다. 아스트라이아의 손에서 분쟁해결을 담당하던 천칭은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사실 저울은 균형의 측면에서 더욱 많이 등장한다. 권력(權力)이란 단어에서 ‘권(權)’은 저울추를 말한다. 저울추의 목적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권력은 ‘힘의 균형’ 내지 ‘힘의 평형’을 맞추는 것이 본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힘을 적절하게 나누어 가져 균형을 이루는 것은 거버넌스(통치) 체계와 직결된다.
블록체인 거버넌스는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라는 대의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합의 알고리즘’을 통해 움직인다.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의사결정권은 소수에게 집중될수록 효율적이며 집행은 다수에게 분산될 때 더욱 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투명성을 위해 분산화된 의사결정을 선택한 블록체인 비즈니스는 기존 시스템에 비해 비효율적인 측면을 단점으로 가진다. 모든 고려해야 하는 가치들을 항상 만족시키는 최적화된 해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거버넌스 주요요소를 파악하여 상쇄되는 부분을 최소화하며 더 중요한 비즈니스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 성공요인이 된다.
유럽 블록체인 센터 의장이자 ISO 블록체인 표준그룹에서 거버넌스 분과에서도 활동 중인 로만 벡(Roman Beck) 교수는 결정권, 책임과 보상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거버넌스를 바라보았다. 첫째, 결정권(Decision Right)은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며 결정관리(제안, 실행) 및 결정제어(비준, 감시)권으로 다시 세분된다. 중앙화와 탈중앙화의 정도도 결정권과 연계되어 있다. 둘째, 책임(Accountability)은 기술적 시스템이나 법제적인 부분에 의한 규율을 뜻한다. 이러한 책임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개인인증(Identification)이나 평판(Reputation) 연계 등의 방법이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분쟁에 대한 해결이나 처벌의 방안도 고려된다. 마지막으로 보상(Incentives)은 생태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가는 유인이 된다. 여기에는 금전/비금전적 보상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블록체인 거버넌스의 3가지 차원
※ 자료 : Roman Beck(2018)
리브라 프로젝트도 거버넌스를 갖추기 위해 ‘리브라 어소시에이션(Libra Association)’을 설립하였다. 이 컨소시엄은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독립적인 비영리 조직이며 주요 정책 및 기술적 사항을 포함하여 기본적인 틀을 결정한다.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은 의회(Council)와 이사회(Board)로 구성되고 칼리브라(Calibra)라는 별도의 운영회사를 둠으로써 세밀하게 권력의 균형을 도모하였다. 그럼에도 리브라는 중앙화와 거대플랫폼, 글로벌 단일화폐의 탄생이라는 이슈에 대해 결정권의 분리 및 책임 측면을 증명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이다. 리브라가 백서를 통해 밝혔던 향후 ‘비허가형(Permisionless) 블록체인’이 되겠다는 내용도 구체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미 청문회는 자금세탁방지, 신원확인(KYC, Know Your Customer) 등 규제 사항 처리에 리브라 협회가 계속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들며 결국 현재와 동일한 거버넌스가 유지될 것으로 보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좋은 거버넌스란 해당 시스템 혹은 생태계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게 각 요소(Dimension)들이 적절한 균형을 가지는 것이다. 무결성, 투명성을 기술적 특성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블록체인 비즈니스에서 거버넌스가 잘 구현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무조건적인 완전 분산화된 의사결정체계나 인센티브 위주의 구성은 바람직하지 않다. 블록체인의 킬러 서비스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필요하다면 좋은 거버넌스의 구성요소와 그 구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봄에 돋아난 새싹들은 여름을 지나면서 녹음이 짙어지고 더욱 성장해간다. 블록체인에도 리브라의 등장에 자극받은 제2, 제3의 리브라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이다. 자체 시스템(온체인)뿐 아니라 제도 적인 균형(오프체인)을 이루는 거버넌스들은 먼저 자리 잡을 수 있다. 기업 지원과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거버넌스도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풍성한 블록체인의 가을을 수놓을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균형 잡힌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밝게 빛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