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미국 시장에 새롭게 선보인 ‘애플 II’ 컴퓨터를 본 사람들은 ‘이런 걸 쓸 사람이 있을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장난감으로만 여겼던 애플사의 제품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면서 컴퓨터 시장의 절반을 잠식해 나갔다. 슈어소프트테크 배현섭 대표가 SW 검증 자동화 도구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접했던 반응은 “이런 게 필요합니까?”였다. 2009년 도요타 리콜 사태 이후 SW 결함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에 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그전까지 국내에서 SW 품질 이슈는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SW를 검증하고 결함을 잡아내는 슈어소프트테크의 독보적 기술력이 국내외적으로 사업성을 인정받기까지는 3년 여의 개발기간에 못지않은 시간이 걸렸다. 작년 매출액 110억 원을 훌쩍 넘긴 회사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콩나물에 물 주기
개발기간 동안 월급이 연체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어서 힘들지 않았다. 이것만 만들면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우리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제품을 만들어서 국내 여러 고객사의 문을 두드렸는데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일찌감치 해외 시장 진출에 나선 계기가 되었다. 유럽 수출 성과가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한국과 유럽의 ICT기업 매칭 행사에 참여하여 스페인과 독일, 스웨덴을 차례대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임베디드 시스템 컨설팅 전문업체인 아마조코(Amazoco)사를 만나게 되었다. 이 업체가 재판매업체를 소개해주었고, 재판매업체는 다시 묶음판매 파트너가 될 개발 업체를 소개해주었는데 여기에만 2~3년이 소요되었다. 만약 행사가 끝나자마자 계약 성사 여부만으로 우리를 판단했다면 우리 회사의 실적은 ‘0’이었다. 정부가 했던 일은 ‘콩나물에 물 주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제품은 물을 주고 들여다보면 자라는 게 보이진 않지만, 물을 주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쑥쑥 자라는 콩나물에 비유할 수 있다.
유럽 시장 피드백으로 서비스 날을 세우다
유럽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며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하여 미국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피드백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우리가 개발한 SW 검증 자동화 도구와 다른 도구들 간의 연동이다. 개발자들이 쓰는 도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독자적인 도구보다는 개발, 형상관리, 시험검증, 이슈관리 등의 여러 도구가 모두 연동될 수 있을 때 제품의 가치가 있었다. 둘째,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고민이었다. 개발자가 특별히 교육받지 않아도 제공한 도구 안의 기능들을 알아서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쓰기도 쉽고, 더 많은 사용자를 유인할 수 있다. 우리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해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았다기보다는 “왜 이런 거 안돼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용자가 어떤 기능이 없다며 질문하면 우리는 그 기능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러면 사용자는 “그 기능을 거기다가 놓지 말고 여기다가 놓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었다. 이처럼 사용자 의견들을 주고 받으며 제품을 개선해 나갔다.
SW 품질 전문 기업으로 도약
현재 슈어소프트테크의 사업 분야별 매출은 자동차 분야 50%, 원자력 분야 20%, 국방·항공 분야 20%와 마지막으로 금융 분야가 10%를 차지하고 있다. SW 검증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 중, 우리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 경험과 검증 역량을 갖춘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SW 구조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테스팅을 해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최근 회사의 사업 범위도 ‘SW 검증 전문 기업’에서 ‘SW 생명주기 전 과정에서의 품질혁신 기업’으로 확대하였다. 앞으로 통합된 도구 사슬 제공으로 해외시장 매출을 30%까지 끌어올리고, 창립 15주년이 되는 2017년에 매출액 300억 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이다.
소프트웨어 정책에 대한 조언
가만히 살펴보면 유럽은 유럽만의 방식이 있다. 가방, 칼, 접시, 와인 등의 놀라울 것도 없는 제품에 이야기를 입히고 명품이라고 하여 비싸게 파는 방식이 존재한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싸게, 빨리,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 성공하였다.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 방식이 무엇인가? 바로 SW 융합이다. 융합에 있어 제일 필요한 건 ‘열린 마음’이다. 슈어소프트테크는 모든 기술을 처음부터 다 알고 있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자동차, 원자력, 국방, 심지어 금융 분야까지 점차 그 범위를 넓혀 사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컴퓨터공학 전공자인 우리가 전통 산업 분야 종사자가 하는 말의 10%도 못 알아들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서 사업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2년이 걸렸는데, 나는 그게 현재 우리나라의 ‘융합 속도’라고 생각한다. 열린 마음가짐으로 자기 분야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이 속도가 더욱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가 모든 분야에 걸쳐 융합을 촉진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국방, 철도 등과 같이 정부 주도산업에서의 융합형 프로젝트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나설 수 있다. 보통 그런 산업은 가장 보수적이라서 새로운 분야와의 융합을 꺼리는 편이다. 사고가 나면 안되는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싸게, 빨리, 많이 만드는 방식에 머물러서는 미래에 더 나은 위치로 갈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이제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가야 한다.
현재 국내 대학에선 SW개발 교육 강좌는 있어도 SW검증 교육 강좌는 전무한 상황이다. ‘10만 개발자 양성’이라는 구호는 들어봤어도 ‘SW검증 인력 양성’이라는 말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슈어소프트테크는 외부 교수를 초빙하여 SW검증 및 국제표준에 따른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창업에 관해서도 배현섭 대표는 창업 마인드만 활성화하는 추세를 경계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그는 “뛰어난 제품만 만들면 사람들이 틀림없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 창업하면 십중팔구 벽에 부딪힌다. 사업은 좋은 제품과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재무회계, 인사관리, 주식배분 등 다양한 경영 지식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정부와 대학의 역할을 주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