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고등학생 자녀가 교실에서 자고 있을 확률이 3분의 2가 넘는다. 어느 교실이던지 무작위로 선택하여 확인해 봐라. 앞자리에 모인 몇 명 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엎어져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한다. 교사가 자는 학생을 깨우면 ‘왜 방해하냐’며 오히려 화를 낸다. 이미 교사는 교실의 통제를 포기했다. 권위와 함께 교사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졌다. 수업이란 것이 엎어져 있는 학생 머리 위로 교과서를 읽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작년에 방영된 TV방송을 보고 놀라서 서울 근교의 학교를 방문하여 직접 확인한 것이다. 학교 교실이 완전히 붕괴됐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니 대학교육은 제대로 되겠는가? 대한민국 장래가 암담하다.
학생들은 왜 수업에 관심이 없을까? 상당 수의 학생들은 ‘포기족’이다. 학업에 관심 없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다. 아직 포기 안 한 학생에게도 수업 내용이 학원에서 배워서 다 아는 것이다. 설사 모른다 해도 곧 학원에서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원이 더 효율적으로 시험에 나올 핵심만을 꼭 찍어서 알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열반 편성이 금지되고, 선행학습은 안되고, 수행평가가 무시된다. 기말 시험 한방이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실수 안 하기 경쟁인 수학능력시험 체제에서 잘 배우고, 더 배울 필요가 없다. 이게 입시 위주의 우리 교육 현장의 모습이다.
교육부에서는 내신을 강화하는 것이 교육 혁신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신을 기반으로 수시 선발을 하도록 대학에 권하고 있다. 실제로 2017학년도에 대학정원의 69.9%, 24만 8천 명을 수시로 선발했다.
대학입시가 일회성 수능 성적이나 시험 중심의 내신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자 입학사정관제라고 알려진 학생부종합전형 제도를 도입했다. 학생부와 자기소개서가 입학을 결정한다. 2017년 총 정원의 20.4%가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맞는 방향이다. 다양한 교과목에서의 역량과 특기, 생활 태도 등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진 대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KAIST도 30년전부터, 이런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고교의 학생부가 부실하여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이 크다. 자기소개서에는 외부 수상 경력을 일절 기록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더구나 자기소개서를 써주는 학원도 있다고 한다. 이러니 ‘근거 없는 주관’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강요 받는 것 아니냐는 대학의 불평에 수긍이 간다. 공교육도 살려야 하고 동시에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 이도 저도 못하는 판국이다.
다행히도 일부 뜻 있는 교사들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섰다. 수행평가를 규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제대로 한다는 것이다. 수행평가란 학생이 직접 행하는 것을 측정하는 평가방법이고 현행 규정은 내신에서 수행평가를 70%까지 반영할 수 있다. 교사가 수행평가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 교육계에서는 해야 하는 것을 했다는 것이 이야기 거리가 된다. 수행평가가 교육정상화에 미치는 효과는 매우 크다.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 만으로 평가하라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숙제를 내주면 학원 갈 시간 없다고 학부모가 항의한다. 그러나 뜻있는 교사들은 숙제를 주고 학생들이 팀으로 탐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한다.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탐구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포트폴리오 쌓는 것을 도와준다.
이런 교사들은 밤을 세워 가며 학생 개개인의 성과를 평가한다. 이 과정 중에 학생의 탤런트를 발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수행평가서에 기록한다. 학생 개개인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넘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 있게 주관적으로 학생을 평가하여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학생을 추천한다.
이런 교사들의 제자들은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 탐구 프로젝트에 몰입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입학사정관의 어떠한 질문에도 깊이 있는 대답을 할 수가 있다. 이런 운동에 참여한 지방의 한 생물교사는 KAIST 등에 20명의 제자를 진학시켰다고 자랑한다. 수행평가는 대학입시를 ‘근거 있는 주관’이 작동하게 하는 뇌관이다. 교사의 성의 있는 평가가 교육 혁신 선순환의 시작이다.
그러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고 교실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암기위주의 학교 교육,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인터넷상에서 검색하면 되는데 왜 시시콜콜한 것을 외워야 하는가? 600년 전의 방식으로 100년 전에나 필요한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우리의 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교육기본법에 의하면 우리의 교육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교육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면서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교육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교육의 목표는 더 구체화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서 혁신이 있었으면 한다.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소통(Communication), 협동(Collaboration) 능력을 갖추고 창의력(Creativity)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으로 4C교육을 목표를 제안하고 싶다.
교육 내용은 새 시대에 필요한 것으로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학기술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기술이 넘쳐나니 옛 것은 축약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시간을 할당해야 한다. 교과목과 그 내용을 교육 소비자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개선 하여야 할 것이다.
교육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참여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양한 스마트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행스럽게도 교육 현장에서 혁신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거꾸로 교실’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공영방송에서의 ‘거꾸로교실’ 현장 보도를 보면 감동적이다. 교사들이 자발적 노력으로 교육의 방법을 바꿈으로써 교실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학습 방법은 교실에서 처음 배우고 집에서 복습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거꾸로교실이란 이 것을 뒤집은 것이다. 교사가 제공한 동영상으로 미리 과업 내용을 학습한 후에, 학교 수업에서는 질문과 토론, 탐구 프로젝트, 또는 미션을 수행한다. 일방적으로 지식 전달만 받던 학생들이 이제는 스스로 참여하고 협동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발견하며, 그 과정에서 창의력을 키운다. ‘가르침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이다.
교실은 그룹 별로 대화와 토론으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책임감, 경청, 배려 등 협동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교육은 경쟁이 아니다’라며 먼저 터득한 학생이 팀원들을 지도하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한 교실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수준의 활동이 벌어진다.
학생들이 너무나 즐거워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부모들도 좋아한다. 전통적인 평가에서도 거꾸로교실의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시험 성적도 오른다는 것이다. 거꾸로교실을 운영해 본 교사들은 교실의 변화에 흥분한다. 주입식강의에서 뒤쳐졌던 학생들의 숨겨졌던 능력을 발견하곤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먼저 경험한 교사들은 스스로 동료들에게 거꾸로교실을 권하는 전도사가 된다.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하고 있는 자유학기제도 기대해 볼만하다.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 운영을 개선하니 학생들이 재미있어 하며 꿈과 끼를 맘껏 발휘한다고 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 중등교육은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다양한 진로의 탐색 활동이 가능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학기제가 학교 현장에 잘 정착되기 위하여는 기업, 전문가, 학교, 정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중에서 인터넷을 지식의 창고로 적극 이용하게 된다. 또 과제물을 제작하기 위하여 동영상 제작 등 멀티미디어 활용 능력을 스스로 깨쳐 배운다. 교사와 학생들이 교실 내외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적극 활용한다. 교실 환경에 맞춘 SNS는 교자재의 배포, 학생간의 소통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도 원활하게 한다.
수업에 사용할 디딤돌 동영상은 수업을 담당한 교사가 공급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에 많은 자료가 있지만 교사가 가르칠 내용을 동영상으로 미리 제작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젊은 교사들이 열정으로 도전하고 있다. 교육 당국에서는 이 작업을 도와야 한다.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자유로이 교육 자료가 공유되는 인터넷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거꾸로교실의 전제 조건은 수업 중에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이다. 모든 교실에서 인터넷 검색은 물론 디딤돌 동영상을 학생 전체가 원활히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들에서의 무선인터넷 구축상황을 보면 WIFI가 되어 있다고는 하나 특별 교실에서만, 그것도 소수의 동시 시용자만이 허용된다. 하루속히 모든 교실에서 무선인터넷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를 촉구한다.
다행히 무선 외장하드디스크를 사용하면 통신사 망을 거치지 않고도 교사가 교실단위 WIFI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인터넷 검색은 안되지만 교사가 만들어 온 디딤돌 동영상을 학생들이 시청할 수 있다. 가격도 저럼하고 사용법도 간단하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거꾸로교실 운영을 위하여 임시적으로 사용할만하다.
그런데 당국에서는 학교 전체가 보안 지역이라는 이유로 무선 외장하드디스크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당국이 교사들의 열정에 찬물을 껴 얻는 것이다. 교무실의 학사행정 자료는 당연히 강하게 보안되어야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교실이 보안지역일 필요가 있을까? 보안을 잘하기 위하여는 보안해야 할 것과 보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 당국의 섬세한 정책을 촉구한다.
교육혁신은 학생 참여형 수업이 해답이다. 재미있는 거꾸로교실, 여기에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