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을 등에 업고 나에게 천천히 걸어오는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다. 서서 지켜보기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망치기도 애매한 순간이다. 조금 더 기다려 얼굴을 확인하고야 반갑게 손을 내밀던, 몸을 돌려 전속력으로 도망치던 선택할 수 있다.
구글의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에서 기대로 기대에서 긴장으로 긴장에서 공포로 변한 듯하다. 한쪽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시킬 획기적인 생산성의 도구로서 환영한다. 산업혁명과 기계혁명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했듯이, 인공지능이 새로운 생산성의 시대로 인도하면서 인간이 좀 더 인간다운 일들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반면에 반감을 갖는 쪽에서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을 잉여적 존재, 모든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하여 기계에 의해 통제 받는 세상, 즉 디스토피아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이런 상반된 태도는 기술이 주도하는 산업 혁신의 과도기에는 늘 존재했다.
19세기 초 산업 혁명기에 영국에서 발생한 러다이트 운동이 대표적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의 의해 일터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의 단순한 반기계 운동이 아니었다. 그 이면에 기계를 소유하는 자본계급과 소유의 불평등에서 발생한 구조적 계급차별에 대한 저항운동이었다. 이후, 기계는 인류 삶의 필수 생산재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고, 인류는 기계와의 공존 방법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그리고 서비스업으로 산업의 축이 옮겨지기 시작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 교육과 복지의 확대, 소득의 증대로 인한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 있어 이전 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혁명은 지난 과거의 산업 혁명과는 그 충격이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 있다. 제리 카플란 스탠포드대 교수는 ‘인간은 필요없다 (Humans Need Not Apply)’라는 저서에서, 현재 상당부분의 일자리(운송업, 단순사무직, 서비스업 등)*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은 자명하다고 말한다. 근본적 문제는 직장을 잃은 이들이 새로운 직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은 학습을 통해 더 정교하고 정확한 솔루션을 찾을 것이며, 인간의 능력으로 기계의 학습력과 계산을 따라갈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의 능력으로 컴퓨터의 학습 방법을 이해할 수 없는 특이점(Singularity)을 지나면 인간보다는 인공지능이 더 신뢰를 받는 기계중심의 신뢰 사회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지능정보사회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현재까지 어떠한 전문가도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카플란 역시 지적했듯이 이러한 기술적흐름이 선악을 판별해야할 대상이 아닌 피할 수 없는(evitable) 현상이라는 적시할 필요가 있다. 저마다 유토피아의 모습을 말할 순 있겠으나 결국 미래의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대응과 그 시행착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무엇인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고, 얼굴이 드러날 때 쯤 도망칠 곳은 마땅이 없다. 도망쳐봐야 따라잡히는 게 시간문제라는 것도 안다면, 현실적 방법은 미리 뛰는 것이다.
모든 것에 지능을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증기기관과 전기 에너지처럼, SW가 앞으로 모든 산업의 범용 생산 요소로 자리매김 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구글, IBM 등의 첨단 SW 기업은 이미 인공 지능 기술을 범용 기술로 확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첫 번째 타겟으로 모든 인류의 꿈인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 분야를 지목했다. 머지않아 Dr.Watson, Dr.AlphaGo에게 진찰을 받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 인공지능 기술들은 지금도 수 십만 건의 논문과 의학 자료, 그리고 영상 정보를 읽고 학습함으로써 인간 의사를 넘어서는 정확한 판단을 하게끔 훈련받고 있다. 2014년 한 보고에 따르면 IBM의 왓슨은 이미 대장암의 98%, 직장암 96%, 자궁경부암 100%로 인간 의사와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다(사이언스타임즈, 2016. 3).
한발 나아가 지난 3월 Microsoft의 CEO 사타니 나델라는 ‘앱의 시대는 가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왔다며 ‘모든 것에 지능을 불어 넣겠다’고 천명했다 (매일경제, ‘16.3). IT왕국의 권좌를 Google과 Facebook에 내어준 Microsoft가 새로운 전략적 목표로 지능기술을 선택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무게가 다르다.
모든 서비스가 지능화 되는 현상은 앞으로 미디어, 금융, 제조, 법률, 교육, 심지어 가장 창의적이라 여겨지는 예술 분야를 포함해 전 산업을 망라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이제 단순 오프라인 작업을 디지털로 옮겨놓는 소극적 의미의 디지털 전환으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데이터에 지능을 불어 넣고 그 안에서 부가 가치 있는 지식을 발견하고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서비스 사업으로 확장이 필요하다.
244년 전통의 브리태니커가 위키피디아에 자리를 내준 것은 지식의 깊이가 아닌 방대한 양의 지식을 빠르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 SW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Newsweek에 이어, 영국의 일간지 Independent지도 지난 달 종이 신문 발행 중단을 선언했다. 오늘날의 뉴욕타임즈는 전문 블로거들이 중심이 되어 기사를 만드는 허핑턴포스터보다 덜 읽힌다. 미국인 1/3은 페이스북으로 대부분의 기사를 읽고 있는 요즘, 전통 미디어 매체들은 ‘편집권’이 소셜 미디어 업체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금융분야에서도 인공지능 확산이 이미 진행중이다. 뉴욕타임즈는 2월 27일자 신문에 ‘로봇이 월가를 침공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켄쇼’라는 프로그램 매매 SW가 50만달러 연봉을 받는 전문 애널리스트가 40시간에 걸쳐하는 일을 수분 내에 처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골드만삭스에 자동 주식거래 프로그램이 도입된 후 주식거래인 10명의 몫을 프로그래머 1명이 해내고 있다고 추정했다(한국일보).
제조분야에서는 독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자동화가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기술은 부품의 주문부터, 조립, 생산, 유통까지 완전 자동화를 목표로 추진된다*(조선일보, ‘15.3). 미래의 제조기업이라 불리는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자동화율은 50% 수준이다. 최근 2017년 말 출시 예정인 보급형 전기자동차 Model3를 36시간 만에 23만 대 이상 선주문을 받았다. 현재 160개 이상의 자동화 로봇이 생산에 투입되고 있으며 자동화율을 더 높여 생산량을 연간 50만 대까지 늘려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법률 시장에서는 각종 법률을 검색하는 것부터, 질의를 분석해 관련성 높은 법률 근거들을 정리하여 제시하며 결과를 예측까지 한다. IBM의 왓슨은 ROSS라는 이름으로 법률서비스까지 진출하고 있다(세계일보).
교육에 있어서는 이미 개방형 온라인 공개강좌(MOOC)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Coursera, edX 등 MOOC 플랫폼을 통해 최신의 정보를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원하는 때에 들을 수 있다. 입학 시험도 필요 없다. 심지어 등록금도 필요 없다. 내가 들은 강의를 추적하고 이해한 정도를 파악하여 수준에 맞는 관련 과목들을 추천해 준다. 흥미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심리학적 이론 위에 SW알고리즘이 구현된 것이다. 2011년 이후 현재 MOOC에는 전세계 500여 개 이상의 대학, 4200개의 강좌, 35백만 명 이상의 수강하고 있는 교육 플랫폼이 되었다(ClassCentral, 2015).
인간의 가장 고유 능력으로 간주된 예술 창작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작곡 알고리즘을 내장한 인공지능 SW들은 성악곡, 기악곡, 협주곡 전체를 15분 정도에 완성한다. 인공지능 작곡의 장점은 인간은 스트레오 타입을 가질 수 있으나 기계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음계와 악기의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일대의 컴퓨터 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Kulitta라는 프로그램이 만든 100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니 다수가 사람이 만든 곡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구글은 딥마인드에 적용된 뉴럴네트워크의 기술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전시회를 통해 1억 원 이상의 판매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의 화가 헤럴드 코헨은 캔버스 위에 붓과 물감으로 색체를 완성해 나가는 인공 지능 로봇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디지털 전환은 생산, 유통, 소비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고 있다.
특정 소비자에게 유용하고(useful), 재미있고(fun), 새롭고(new), 믿을 만한 정보(trustable)를 얼마나 많이(sufficient) 빠른(fast)속도로 시각적으로(visual) 제공해 줄 것인가가 기업의 혁신과제이면서 동시에 산업의 경쟁력으로 본격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고의 지식의 독점을 위한 기업들이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지식만으로 부족하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지식을 엮어 사업으로 산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능 위에 지혜를
지혜란 무엇인가? 때를 분별하여 적절한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이다. 맥킨지의 보고에 따르면 산업 일선에서 생존과 성장을 위해 고민하는 최고 경영자의 관심은 단순한 개선보다 재창조라고 한다. 문제의 가시화, 최적화, 자동화, 유연화 시킬 수 있는 SW능력 바로 이해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지식서비스의 창출(creating)로 연결하고 전통산업의 재탄생(reinventing)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지능경제사회에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이 게임의 승패에 따라, 승자독식은 더욱 뚜렷해 질 것이며 이에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이 [제2의 기계시대]에서 에릭 브린욜프슨이 일관적으로 제시하는 주장이다. 생산, 유통, 소비에 이르는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지능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업의 생멸 나아가 산업의 재편이 이뤄지고, 국가적 주도권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떠오른 영국의 태양이, 기계 전기 시대에 미국에 머물다 새로운 지능정보사회에서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 해가 조금씩 떠오르면서 저만치 걸어오는 짐승의 어두운 실루엣도 걷힐 것이다. 성큼 다가오는 저 무엇이 인간의 반려견이 될지, 혼돈의 파괴자가 될지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신기술의 본성과 상관 없이 한 가지 믿음이 필요하다. 우마를 길들여 농업혁명을 일궈냈고, 기계와 전기를 조합해 기계혁명을 만들어 내었던 인간의 지혜에 대한 믿음이다.
사회학자 Burt가 주장했듯 혁명기에는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이 있기 마련이며, 그 공백이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낸다(Burt,1992). SW혁명으로 촉발되는 새로운 경제적 공백기와 전환기에서 지능경제의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이득은 취하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민과 정부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참고자료
✽ 이동현 (2016.1), SW중심사회에서의 미래 일자리 연구, SPRI 이슈리포트
- 미국의 47%, 한국은 63% 컴퓨터 대체 가능성이 큰 직군으로 분석되고 있다.
✽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류 맥아피 (2014), 제2의 기계시대, 청림출판
-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을, 에릭 브린욜프슨은 그 보다 10년 앞선 35년을 이 시점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