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완벽했다. 친한 동생들 3명과 3박 4일로 중국 북경을 여행하기로 했다. 여행 계획과 현지 가이드는 당연히 내 몫이었다. 내가 얼마 전까지 중국 대련에서 약 5년간 주재원으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업무적으로는 많이 서툴지만, 먹는 거, 자는 거, 이동하는 거 등등 생존을 위한 중국어는 자신 있었다. 2년 전에도 지인들과 함께하는 중국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인기를 한 몸에 누렸다.
중국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나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금성, 이화원 등 문화유적을 멋지게 설명해주기 위해 여행 책 2권을 챙겼다. 맛 집과 핫 플레이스는 인터넷 검색과 현지 지인의 추천을 통해 엄선했다. 볼 때마다 놀라는 변검 공연과 금면왕조 공연도 예약해 두었다. 마지막 날 시 외곽에 위치한 만리장성 투어에 대비해서는 기사 딸린 승합차 한 대를 배정해 두어 편안한 여행으로 대미를 장식할 계획이었다.
여행 첫 날, 출발은 순조로웠다. 멋진 변검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택시도 안 잡히고 길을 잘못 찾아 2시간 가량 녹초가 되도록 헤매었지만 그래도 형 아니었으면 북경 미아가 되었을 거라면서 다들 고마워했다. 다음 날, 자금성 구경을 하고 나와서 전철역까지 이동하는 데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자금성과 경산공원 사이의 도로는 택시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불법자가용(헤이츠어, 黑車) 운전사들이 큰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줄이 너무 길어 내가 나서서 헤이츠어 기사와 흥정을 하고 있던 중에 동생 한 명이 말했다.
“형님, 우버(Uber) 한 번 써보죠.”
‘그게 중국에서도 되나?’부터 시작해서, ‘언제 올지, 어떤 기사가 올지, 엄청 비싸지 않을지’ 등등 불안하니까 ‘그냥 나에게 맡기자’는 얘기들이 나왔지만, 이미 그 동생은 우버를 호출한 뒤였다.
호출에 기사가 응답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기사 도착 예정시간은 7분이라고 했으나 길이 너무 막혀 실제 도착까지는 10분 정도 걸렸다. 기사님 얼굴과 차량번호가 표시되고, 실시간으로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불안하지 않았다. 도착한 차는 깨끗하게 세차된 혼다였고, 운전기사는 깔끔한 옷차림에 영어도 잘해서 굳이 내가 통역할 필요도 없었다. 목적지까지 거리는 짧았지만 길이 많이 막혀 20분 정도를 갔다. 요금은 미리 입력되어 있는 신용카드로 자동 계산되기 때문에 돈을 꺼낼 필요도 없이 기사와 짜이찌엔(再?)했다. 나중에 핸드폰에 찍힌 요금은 8RMB. 북경 택시 기본요금은 13RMB이고, 우버를 부르기 전에 불법자가용 기사와 내가 흥정하던 금액은 50RMB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갈아타지 않고 전철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지역도 모두 우버를 이용했다. 왕징 숙소에서 이화원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42RMB가 결재되었다.[그림 참조] 헤이츠어를 타고 갔다면 대략 200RMB 정도가 소요되었을 장소였다. 여행하는 이틀 동안 우버를 아홉 번 정도 이용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평생 타봤던 외제차보다 더 많은 종류의 차들을 타 봤다. 폭스바겐 제타, 아우디 A6, 벤츠 S클래스 등등
사실 나는 우버를 비롯한 공유경제라 불리는 서비스들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바일 앱 하나 달랑 만들어 놓고 기존 산업 질서에 무임승차하려는 뻔뻔한 침략자 정도로 치부했다. 말이 좋아 공유경제이지 기존 산업들과 사업의 본질은 똑같고 더군다나 서비스로 얻은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도 내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사용자의 편의를 조금 올려줄 수 있다는 미명 하에 기존 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수익과 어쩌면 생존까지를 위협한다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혁신이 일어나는 곳에 으레 생기기 마련인 저항, 관습적인 규범(norm)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우버가 창출해 내는 사용자 편의·경험의 가치와 사회적 비용의 감소는 결코 작지 않았다.
여행 노선을 계획하고 지도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점검하며 다녔던 나의 노력은 내 5년간의 중국 주재원 경력과 함께 우버에게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우버 측의 프로모션이 있긴 했지만 기존 교통수단에 비해 엄청나게 싼 요금은 입을 쩍 벌어지게 했다. 택시미터기, 택시콜 단말기, 카드 결제기, 그리고 내비게이션까지 우버 앱 하나로 다 필요 없게 되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불법자가용 기사들과 비용 흥정하다가 시비 붙을 걱정도 없다. 친절한 기사와 다양한 차들을 타볼 수 있는 경험은 덤으로 얻어지는 서비스다.
미국 주요 지역에서는 우버 서비스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합승의 개념을 도입한 우버풀, 정해진 노선을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우버홉, 음식을 배달해주는 우버EATS, 이 외에도 우버러시, 우버이벤트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우버 CEO 트래비스 칼라닉의 비전은 더욱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버로 버스와 지하철을 대체하고, 결국 에는 미국 시내 주차장을 녹지로 만들겠단다(많은 차가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벼락 스타가 된 CEO의 당찬 헛소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버 서비스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는 우버 블랙을 제외한 우버 서비스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작년 서울시에서는 우버 퇴출을 위해 우버 신고 포상제까지 실시했다. 누구를 위한 결정이었을까? 기존 사업자와 조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의 경험 기회를 봉쇄하고, 시민의 세금까지 신고 포상으로 사용하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기존의 택시 사업자들 위주로 택시관리시스템을 개선하여 택시 사용 만족도를 제고하겠다고 계획하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의 도입을 마다하고 기존 권리자들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선이 얼마나 혁신적일지 모르겠다.
물론 나의 단편적인 우버 경험과 생각이 혁신의 이면을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을 만큼 균형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버는 전 세계 곳곳에서 기존 산업들과 여전히 투쟁 중이고, 불공정 거래 이슈, 우버 기사들의 집단 소송, 저렴한 요금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혁신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진통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어제, 중국 여행 마지막 날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내가 특별히 한국에서부터 예약해 놓은 1,000RMB짜리 승합차로 만리장성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우버로 인해 나를 제치고 이번 여행의 공로자로 군림한 동생이 내게 물었다.
‘형, 이 렌트카 비용 얼마 들었어요?’ ‘아... 이거?... 1,000RMB 들었는데... 이건 마지막 날이라서 우리 여행 가방도 있고…해서…’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뒤에서 동생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에이씨, 우버 불렀으면 200RMB에 갈 수 있었는데 괜히 형 때문에...’ 나에게 만약 중국 여행 가이드를 할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진다면 여행 책과 지도, 중국 지하철 앱 따위는 모두 버리고 가겠다. 대신 우버를 깔고.
* 어제 여행을 마치고 출근한 오늘 저녁, 마침 연구소에서 [교통서비스 분야에서의 혁신동향-택시산업과 공유경제]를 주제로 포럼이 있었습니다. 본문 말미에 우버 관련 미국의 새로운 서비스들, 우버 관련 분쟁과 택시산업의 개선방향 등과 관련한 내용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님과 저희 연구소 이현승 변호사님의 발제를 경청하고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