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른바 메이커의 시대도 열렸다. 메이커(Maker)란,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 또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창의적인 만들기 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그룹을 지어 함께 만드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며, 자신이 만든 결과물과 지식 그리고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전문가들이 비싼 장비와 높은 난이도의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하여 제품을 개발하였으나, 현재는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제품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두이노와 같은 오픈소스 기반의 하드웨어가 등장하면서, 시제품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된 것이다. 기술과 DIY(1)가 접목되면서 이른바 제조 패러다임 변화의 한 축으로 새로운 생태계가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메이커 또는 메이커 운동(2)이라는 용어는 메이크 매거진(3)을 통해 처음 언급되었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메이커를, “우리는 모두 만드는 사람”, “제품 제작 및 판매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사람”, “기업, 물리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초래하는 모든 사람”, “손쉬워진 제작기술을 응용해서 폭넓은 만들기 활동을 하는 대중”(4) 과 같이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결국 표현은 다르지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혁신하는 부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메이커들은 비교적 대중화된 도구를 사용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한 공유와 협업을 통해 제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메이커 페어(Maker Faire)를 통해 직접 데모와 전시를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선보인다. 메이커 페어는 메이커들의 대표적인 행사이자 지식 공유의 전시장으로 20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열렸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약 78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수십 개국에서 개최되는 문화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2년을 시작으로 서울에서 개최되어 올 10월 5회째 개최를 맞이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를 즐기기도 하는 이들은 어찌 보면 만화에 등장할 것 같은 괴짜 과학자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기존의 체계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모델을 찾아내기도 하며, 전문가에게 기술을 배웠거나 또는 스스로 터득해가며 익힌 기술을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혼자서 작업하며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영역별로 많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공동의 작업공간(5)에서 만나 토론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한다.
이러한 메이커 운동은 어떤 점이, 왜 중요한 것일까? 메이커가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되고 4차 산업혁명의 비중 있는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는, 변화된 환경에 필요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창의성과 도전정신, 그리고 이 지식을 ‘공유’ 함으로 인해 더욱 발전하도록 하는 ‘혁신’에 있다. 메이커들의 필요에 의한 창조활동과 문제해결능력도 혁신이지만, 이를 널리 공유하여 서로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보완하는 협력의 공동체 활동도 혁신이다.
공유와 혁신은 메이커 무브먼트 같은 인류 문화의 큰 축을 새로 만들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개방된 참여와 공유를 통해 초보적인 수준의 아이디어는 점점 다듬어지고 결국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혁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공유의 대표적인 예시였던 오픈소스의 개념은 이제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 분야까지 확장되고 있다.
메이커들이 보여주는 창의적 문제해결과 공유로 이어지는 혁신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올 초 알파고 돌풍을 일으킨 구글은 왜 작년 말 인공지능 알고리즘 텐서플로우(Tensor Flow)를 공개했을까?
이에 질세라 페이스북, MS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도 왜 개발한 알고리즘들을 공개했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는 부족한 이러한 자세는 반드시 본받을 필요가 있다. 남이 볼까 두려워 꽁꽁 숨겨두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시대가 왔다.
세계를 리드하는 글로벌 IT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일찌감치 오바마 정부에서 메이커 운동을 국가적 아젠다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각 주의 공립 도서관과 학교 150여 군데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어 놓고 과학과 기술, 수학 등의 교육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며 메이커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에겐 이미 메이커 활동이 취미를 넘어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테크숍, 해커 스페이스, 팹랩, 팹까페와 같은 공동 작업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킥스타터, 인디고고와 같은 크라우드펀딩(6) 서비스를 통해 사업 기금을 마련할 수도 있다. 미국내에서 메이커 운동을 후원하는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약 135만 명의 성인이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고, 이에 관련된 산업은 22억 달러 규모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미국내 8개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는 테크숍 CEO(7)는 공간과 플랫폼을 공유해 사용함으로써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98%까지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메이커가 90일 이내 회사를 세우고 제품을 론칭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기초를 배우기 위해 같이 수업을 듣고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출시하는 일을 한 공간에서 함께하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진짜 혁신임을 강조했다.
중국 역시 선전(심천)시에 자신들만의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대규모의 공장과 전자회로 설계를 할 수 있는 수백 개의 디자인 하우스를 갖추고 있다. 또한 지난 2015년 6월 메이커 페어를 통해 도시내 소프트웨어 산업단지를 선포하고 청년 스타트업 기업들을 위한 창업지구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도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 방편으로, 2014년 7월 메이커 인재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메이커운동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발점이 되길 바라는 정부의 노력에 비해 아직 우리에게 메이커는 소수의 매니아층만 즐기는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손재주가 좋은 나라였고, 지금은 IT 강국의 반열에 올라있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서 더 늦기 전에 메이커 문화가 좀 더 대중적으로 자리 잡도록 효과적인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산업계 전반에도 인식 전환을 통해 공유와 혁신 이라는 요소가 깊이 스며들게 하여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글로벌 리더 그룹에 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DIY : Do It Yourself의 약자, 가정용품의 제작·수리·장식을 직접 하는 것
(2) 메이커운동 : 메이커 무브먼트(Maker Movement)라고도 하며, 메이커들이 창의적인 제조활동을 하고 이를 공유하려는 경향을 말함
(3) 메이크매거진 : Make Magazine, 미국 오라일리 미디어가 2005년 창간, 기술과 DIY를 접목한 잡지
(4) 언급한 순서대로; Dale Dougherty(메이크미디어 설립자), Chri Anderson(Makers 저자), David Lang(Zero to maker의 저자), Mark Hatch(테크샵 설립자)
(5) 메이커스페이스(Maker Space) : 메이커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 대표적으로 테크숍(Tech Shop), 해커스페이스(HakerSpace), 팹랩(Fab Lab) 등이 있음
(6) 크라우드펀딩 : Crowd Funding,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하여 자금을 모으는 투자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