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R/AR 산업을 위해 필요한 혁신적인 스타트업 정책

※ 이 글은 코믹스브이 양병석 대표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 이제는 친숙한 VR, 그러나 VR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데스밸리에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를 가면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놀이공원에 가지 않아도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보다 실감 나는 귀신 체험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도 VR/AR을 꼽기도 하고 미래 컴퓨팅 기술의 한 축으로도 VR/AR을 뽑고 있다. 정부는 2016년, 10월 3개 부처 합동으로 향후 5년간 4050억 원(정부 2790억 원, 민간 1260억 원)을 투자하는 가상현실 산업 집중 육성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VR/AR의 확산이 가속화되고 꽤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진 것 같지만 정작 VR/AR에 직접 집중하고 있는 스타트업들과 기업들의 상황을 들어 보자면 데스밸리를 운운할 정도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들 한다. 분명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 기술을 접하게 되었고, 이렇게 화려한 공간들도 늘고 있는데 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을까?

 

 

 2. 아직은 작고 보수적인 VR 시장

 

먼저 핵심을 지적하자면, 아직 HMD 보급률은 적어 시장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크다는 게임시장도 모바일 게임 시장에 비하면 기대 수익률이 낮다. 주변에 쉽게 보이는 화려한 VR체험처 사업은 SW산업보다는 공간 사업과 요식업에 가깝다. SW와 콘텐츠는 사람을 모으고 공간 체류시간을 늘리는데 사용되는 것이지, 실제 매출은 공간의 비용을 빼고 나면 개발비를 건지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VR 체험공간이 VR에 대한 인식을 확산한다는 점에서는 환영받을 만하지만, 공간에 제한적인 규모의 사용자 수로는 콘텐츠 사업자들을 유지시키거나 성장시키기에는 아직 무리다. 아직 규모가 작은 한국의 민간 투자사들은, 회수 압박이 심한 정부 자본에 의존이 심해 단기 성과와 매출에 집착하고 보수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높다. 때문에 매출을 확실하게 만들기 어려운 가상현실 기업이 투자를 받는 경우는 정말 보기 힘들다.
그나마 투자가 이루어진 것은 모두 B2B 기업들이었고, 그 규모도 아직 크지 않다. 정부가 4천억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2020년까지는 불과 2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중 얼마 만 큼이 VR/AR을 주 업으로 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투자가 되었는지 의문이며, VR로 투자를 받으려면 VR이 주 업이면 안 되는 게 산업계의 현실이다.

 

 

 3. 기회와 집중이 시작되려는 VR 시장

 

그나마 2018년부터는 조금씩 시장 상황이 꿈틀거리고 있다. VR 기기가 PC나 별도의 기기 없이 독립된 기기로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VR 체험공간은 대부분 HTC-Vive와 같이 룸 스케일 형태의 공간을 차지하는 기기였다. 이는 고성능에 VR 다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기기 착용과 실행이 번거로워 시장 보급에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었다.
독립형 기기는 영화 레디 플레이원에 등장했던 들고 다니는 가벼운 가상현실 기기다. 물론 성능은 PC형 기기에 비해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간편함 때문에 확산의 가능성이 높고, 다른 요소에 의존성 없이 VR에 집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기기는 오큘러스고나 피코 같은 기기인데, 소프트웨어 기술은 페이스북과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만들었고, 하드웨어는 모두 중국에서 개발되어 가격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폭 낮아진 것 역시 특징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샤오미 담당자와 한국 VR 기업들과의 작은 미팅에서는 "샤오미의 꿈은 모든 중국인들에게 VR HMD를 한대씩 갖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들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VR 기술을 기존의 스마트폰 생태계의 확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인 발언이어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VR의 유통 플랫폼과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던 것 같지만, 이미 기술 플랫폼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하드웨어 기술 중심으로 풀기에는 이미 녹록지 않은 시장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게임, 드라마, 공연 같은 콘텐츠 기술이 강점인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시장 확장은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또한 각 산업계의 응용에 대한 기회도 무궁 무진하다.

 
 

 4. 불확실한 VR/AR 시장에서는 스타트업이 답이다.

 

2016년 VR에 대한 정책 발표가 나왔을 때는 요즘 흔한 VR 체험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당 사업들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규제 개선 요구들이 있었고, 그 이후 각 VR 체험존에 대한 비즈니스들이 새롭게 돌기 시작했다. 직접 다룰 수 있는 기기도 당시에는 기어 VR 외에, 이른바 VR 3대장이라 불리던, HTC-Vive, 오큘러스, 플레이스테이션이 다였다. 하지만, 요즘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고, 독립형 기기는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기기였다. 요즘은 윈도즈의 VR 기기가 가세했고, 독립형 기기의 등장은 당시에는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 중 하나였고, AR에서는 당시에는 소문만 무성했던 매직 리프가 현실로 등장했다.
이러한 빠른 시장 변화는 장기적인 계획 수립을 어렵게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VR 사업들은 수많은 가정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높은 시장을 헤쳐나가는데 가장 적합한 기업 모델은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의 특징은 집중과, 빠른 실행, 시장 탐색이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빨리 인지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핵심으로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도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신시장을 위해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들이나 한국의 성공한 큰 벤처기업들도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도록 조직혁신을 하고 있다.

 

 

 5. 경직되고 규모가 작은 현재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

 

하지만 대다수의 정부의 VR 정책들은 이러한 스타트업의 모델과는 거리가 먼 형태로, 새로운 VR 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지원 정책들은 스타트업의 미덕인 집중보다는 수많은 서류 작업, 빠른 실행과 시장 탐색보다는 거대한 목표, 매출, 고용 같은 지표에 집중한다. 또한 과제는 처음에 약속한 대로 반드시 지키기를 요구하는데 이것은 스타트업 모델과는 정 반대되는 모델이다.
부적절한 고용은 가벼운 스타트업의 장점을 포기하게 하고, 단기 매출에 대한 압박은 주 업무 외에 다른 쪽을 돌아보게 한다. 수많은 서류작업과 보고 작업도 코딩할 시간마저 모자라게 해서, 결과물의 품질을 하락 시킨다. 규정을 강화하면 혁신성과 무관한 정부과제에 익숙한 기업들이 이득을 보고 혁신성과 평균 품질은 떨어진다.
규모 면에서도 대부분 VR/AR 지원은 스타트업 지원이 아닌 기존 사업에 VR/AR을 덧 입힌 작은 사업들이 많다. 한국 시장이 이렇게 녹록지 않다 보니 VR/AR 스타트업들도 생존을 위해 없는 일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지원 정책은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이러한 부분은 필요악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스타트업에게는 본업을 집중하기 어렵게 하고 속도를 늦추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불확실한 VR/AR 시장에는 스타트업이 답이라고 했는데, 스타트업에게 어려움을 만드는 정책이라면 효과적으로 쓰이는 돈일까? 전문성이 있는 민간 운용사에게 위탁하여 이를 해소하고자 하기도 하지만, 민간 운용사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업 규정상 여전히 경직된 경우가 많다.

 

 

 6. 규모 있고 본업에 집중할 수 있는 혁신적인 VR/AR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바란다.

 VR/AR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신기술 시장의 지원정책은 보다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보다 많은 실패를 용인하며 불필요한 보고를 최소화해야 한다. 보고서 한 줄이 과제 담당자의 책임을 피하게는 해줄 수 있겠지만, 그 보고서 한 줄 작성할 시간에 만들 수 있는 코드 한두 줄은 새로운 오큘러스를 만들지도 모른다.
또한 고용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고용이 악성 부채와 팀의 분열을 만들 수 있는 연약한 스타트업이 하는 게 아니라 서류를 줄여주도록 정부가 혹은 지원 기관이 인력을 고용해서 일을 줄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성장에 목마른 스타트업이 원하는 지원은 돈으로 시간을 사기 위함 이지 돈을 받고 시간을 뺏는 용역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비싼 경력자를 요구하는 것도 사실 속도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생산성은 개인 간 차이가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난다. 스타트업의 덕목은 첫째도 속도고 둘째도 속도다. 이 속도를 맞추고 지원해줄 수 있는 혁신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규모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지 않다. 2014년 실리콘밸리가 시작했던 VR/AR의 투자 랠리는 중국이 그 바통을 이어갔다. 중국의 HMD들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 이유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VR/AR에서 응용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에 아직 한국이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좀 더 공격적이고 규모 있는 투자가 VR/AR 기업에 집중되야 한다.
스타트 업은 인터넷과 모바일 산업에서 그랬듯이 VR/AR과 같은 불확실성이 높은 새로운 SW산업에 가장 적합한 대안이다. VR/AR을 필두로 신기술 스타트업 정책이 보다 강력하고 역동적으로 동작한다면, SW산업이 모든 산업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한국 전체 산업에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병석 대표 / 코믹스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