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위한 정책 제언
※ 이 글은 Honeypic.com 임동원 CTO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제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3년째입니다. 이전에 일했던 곳도 스타트업이었으니 대략 4년을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해외의 사진작가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연결해주는 일종의 공유경제 모델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혼여행이나 가족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외에 있는 작가를 연결해주는 O2O 사업입니다. 저는 기술파트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분들과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짧지 않은 기간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정부의 스타트업 진흥 정책에 대해 느낀 점을 간략하게 써내려가보려고 합니다.
먼저 정부의 정책 기조와 스타트업과 밀접하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행정기관 및 금융기관들의 방향과 속도에 차이가 큽니다. 몇 년 전 정부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 기반의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정부는 공유경제 모델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회사를 설립하는 데까지도 행정절차를 위해 많은 장애물을 넘어가야만 합니다.
일례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온라인 결제를 하기 위해 온라인 페이 게이트 회사와 계약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공유경제 스타트업이나 O2O 회사들은 보통 형태가 없는 서비스를 중간에서 중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결제대행 회사들은 실물이 없는 거래를 꺼려 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회사들에 대해서는 더 비싼 보증보험을 요구하거나 한 달 내에 찾을 수 있는 결제금액에 제한을 두기도 합니다. 어떤 결제대행사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인 스타트업인 것을 알면서도 매출을 담보해야만 가입을 시켜주겠다고 말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결제대행사에 가입을 하더라도 국내의 결제 시스템 규제 때문에 원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만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stripe와 같은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면 온라인 API를 통해 모든 결제 절차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인인증서 이슈가 있기 때문에 stripe을 사용할 수 없고, 국내의 온라인 결제대행사들은 시스템 개발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사용자에게 더 편리한 결제방법을 생각하더라도 공인인증서 때문에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보증기금 등의 대출 기준을 조정하는 것도 스타트업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은 큰 매출이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 대출의 문턱은 높기만 합니다. 기술보증기금의 대출은 스타트업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습니다. 기보가 대출기업 대표의 연대보증과 같은 나쁜 관행을 없앤 것은 박수쳐줄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대출조건은 더 까다로워지고 스타트업은 또 그만큼 더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대출을 해주는 입장에서 리스크 문제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표의 대출신용도, 회사의 재무 건전성 등을 확인하는데 대표가 어쩔 수 없이 투입한 금액까지 회사의 채무로 잡혀서 초기 기업의 경우 대표가 많은 금액을 회사에 넣을수록 재무건전성이 나빠져서 기보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그만큼 더 까다로워집니다. 사내 부설 연구소를 만들면 대출 점수가 높아지는데,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부설 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러는 이를 악용해서 가짜 부설 연구소를 만들어 고액의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많아진다면 기보 입장에서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키우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보 등의 대출 기준을 스타트업에 맞게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재무건전성도 중요하지만 현재 매출 또는 최근 6개월이나 1년간의 매출 등을 기준으로 잡거나 실제 사용자 수나 사이트 트래픽 등을 기준으로 잡는 방법 등도 필요합니다.
법이나 세무 등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서비스도 꼭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법이나 세무 절차 등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도 흔합니다. 스타트업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먼저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오피스를 임대해 사용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 오피스는 보통 특정 기업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임대기간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은 그 기간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오피스를 찾아 이동하는 일이 잦습니다. 이 때 회사 주소가 변경되면 등기소에서 등기를 다시 해야 하는데 처음 등기했던 관할 등기소를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처음 등록한 등기소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소모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대표나 이사 등의 개인이 이사를 하더라도 등기를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개인 거주지를 이사한 뒤에 일정 기간 동안 등기를 다시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됩니다. 사실상 법에 문외한인 대부분의 스타트업 운영자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이런 문제가 단지 등기와 관련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전자정부로 그 어떤 나라보다 선진행정을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여러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장기 적으로는 행정절차의 문제를 간소화할 필요도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거나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이런 맹점을 미리 알 수 있도록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홍보하는 일도 빼놓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세금 관련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초기에는 적자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금을 안 내거나 적은 세금을 내겠지만 성장하는 단계에서 미리 챙기지 못했던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회사가 어려울 때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개인자금을 회사에 집어넣게 되는데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가지급금에 대한 이자가 발생해서 의도치 않은 세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고, 개인의 이자비용은 전혀 인정되지 않아 나중에 회사가 수익을 내더라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나 은행, VC들은 가지급금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등에서는 변호사나 세무사 등을 멘토로 하는 무료상담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스타트업을 위한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이를 전달하는 채널이 파편화되어 있어 정보를 전달받는 입장에서는 여러 채널을 모두 확인해봐야 하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들은 스타트업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지원 사업의 주체가 각종 정부부처나, 지자체 또는 지역 대학들로 다양하고 각 사업의 지원 대상도 제각각이어서 나에게 맞는 정책만을 쉽게 찾아보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어떤 정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도 기관들이 제 각각이다 보니 실제로 내가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사업별로 소관 및 담당 부서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대상 혜택을 전달하는 채널을 일원화한다면 기업 운영자들이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법이나 세무 관련 이슈들도 같은 채널을 통해 홍보한다면 스타트업에게 좀 더 쉽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들은 정부의 정책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안정을 우선시하는 문화나 실패한 기업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생각하면 개인이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을 쉽게 볼 일이 아니고, 정부 주도형의 스타트업 육성도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서울이 한순간 실리콘밸리로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타트업 운영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점들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현장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꾸준히 개발해나가다 보면 충분히 새로운 모델의 스타트업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동원 / 온라인사진중개플랫폼 스타트업 Honeypic.com 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