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예도(銳刀) 둔도(鈍刀) 이야기

  • 이중엽산업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날짜2018.11.27
조회수1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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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우자 사몬지(宗三左文字)
    두자 여섯 치(약 80센티미터)의 명도(名刀)
    • 일본의 전국시대가 한창이던 1560년 6월 12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25,000 대군이 오다 노부나가의 영토를 침공한다. 열세에 놓인 노부나가 군은 단 2천의 병력으로 야간 기습을 가해 적장을 베는 대역전을 보인다. 이것이 일본 3대 기습 중 하나로 불리는‘오케하자마 전투’이다. 그리고 이 시점을 계기로 노부나가는 세력을 급격히 불리며 일본 전국시대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다. 소우자 사몬지는 이 전투에서 적장이던 요시모토가 지니던 것으로 이미 훌륭한 명도(名刀)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이 칼을 둔도(鈍刀)라고 칭하며 손에 넣자마자 4치 5푼(약 14센티미터)을 잘라버린다. 아무리 좋은 재료의 명도라 해도 사용하는 사람에 맞지 못할 때는 둔도가 되고 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주인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명도가 아니라 형편없는 둔도지. 둔도와 예도의 차이는 잘 만들어졌는지 어떤지 뿐만 아니라 지니는 사람에 따라서도 결정되는 거야.’
    •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혁명을 이끄는 주요 기술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분리하여 개발하거나 진흥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이런 논란 중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기대와 관련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IDC는 전체 블록체인 관련 글로벌 시장이 2022년까지 연평균 73%(2017년 약 7.5억 달러)로 빠르게 성장하여 약 107억 달러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보았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과 같은 개인간 암호화폐 기반의 지불 시스템 외에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이더리움 등 2세대 블록체인은 단순 지불 및 검증 기능을 구현한 이전 모델에 비해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과 분산앱(Decentralized Application)을 통해 실제 적용이 가능한 다양한 구현 형태를 제시한다. 이더리움 플랫폼만 봤을 때도 현재 1,800여 개 분산앱이 선을 보이고 있으며 게임, 미디어, 보안, 자산관리, 소셜 및 분산화 거래소 등 다방면으로 서비스가 구축되고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전국에 알려진 명도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분명 주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예도로 만들어내느냐 둔도로 썩히느냐는 사용하는 사람에 달려있다. 가치를 알고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이 제시하는 가치(Value Proposition)에 다시 주목해보자. 우선 상기해야 하는 점은‘탈중개성’에 있다. 비트코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블록체인은 기존 거래를 중개하던 기관 없이도 거래를 진행할 수 있는 기술을 제안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블록체인 시스템이 결국 중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공급자수요자와 같은 참여자들을 연결하는 양면시장형 플랫폼 비즈니스가 한 축을 이루게 된다. 다음 가치로는‘신뢰성’에 있다.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데이터는 투명성, 무결성의 특징을 가진다. 데이터의 비가역적인 성격과 무결성은 결국 해당 데이터에 대한 검증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필요시에 상호 확인 및 검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결국 참여자 간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조직내는 물론 조직 간 혁신 도구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측면에서도 이는 검증비용 등 기존에 소요되던 거래비용의 감축을 가져올 수 있다. 결국‘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협업의 확대, 비용 절감 및 프로세스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가치를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토큰 경제’라는 부분이 추가된다.
    • 토큰 경제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성공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양면(혹은 다면)형 플랫폼 비즈니스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보상체계를 구현할 수 있으며 향후 비즈니스관리 측면과 연계하여 B2B 영역으로도 적용 분야를 늘려나갈 수 있다. 특히 초기 성장이 중요한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다른 기업이 활용하고 있는 보상 전략을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경쟁에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 경제에서 벤처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해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s)가 존재하는 것처럼 블록체인 사업에서도 코인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s)가 필요하다. 다만 이슈가 되는 부분은 ICO 자체보다 진행 절차와 투자자에 대한 보호와 같은 구성의 적절성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지속되고 있는 ICO 해외탈출과 사기 방지를 위해 제도 정비를 통한 양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겠다. 토큰경제를 정교하게 구성하는 것은 비즈니스 아이디어에 수익 창출 계획과 생태계 구축 및 유지 방안까지도 포함하여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더구나 일반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경우라면 백서의 구성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기업입장에서도 구상하는 서비스 모델에 토큰 경제와 암호화폐의 필요성과 활용 여부를 잘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토큰경제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설명 등과 같은 백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주요 항목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작년에 급성장했던 ICO가 묻지마 투자나 사기로 인해 역효과가 많았던 형편없는 둔도라면 과감하게 새로 벼려내어 예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둔도를 잘 벼려 예도를 만드는 차원에 대한 고민이 아닌 둔도 착용 금지를 한다거나 대충 벼려진 칼을 들고 전쟁에 나간다면 정상적인 경쟁이 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 기반 기술일수록 구체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파급력은 크다. 향후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은 앞서 살펴보았던 양면(혹은 다면)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징과 함께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을 포함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지속 발전할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디지털 탈바꿈(Digital Transformation)을 가져오는 서비스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설계된 토큰 경제는 참여자들이 각자의 이익 추구를 위해 움직이지만 전체 서비스를 지속·구현할 수 있도록 균형을 유지한다. 또한, 참여자 증가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네트워크 효과는 후발주자에게 진입장벽으로 다가올 것이다. 노부나가는 명도를 자신에게 맞추어 다시 벼려냄으로써 예도를 만들었다. 이런 파격과 실용주의는 휘하 장수이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통해 일본 전국시대의 종식과 개혁이라는 물결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선과 명나라에게도 경종을 울렸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전세계 GDP의 10%가 블록체인에 기록될 것이란 티핑포인트가 또각또각 다가오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나 기업의 성공사례나 혁신적인 서비스를 보게 될 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 될 것이다. 지금 바로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 활성화와 건전한 발전을 위해 블록체인을 예도로 벼려낼 수 있도록 토큰 경제의 적용과 확대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에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