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전환과 공유 경제의 확산,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노동 시장에 가세하면서 프리랜서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프리랜서 유니온은 2016년 기준 미국 노동자의 34%에 해당하는 5,730만 명이, 2027년에는 50%가 넘는 8,650만 명이 프리랜서로 일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역시 프리랜서 인구가 1,100만 명이 넘는데 이는 전체 상용 근로자 6명 중 1명에 해당한다. 최근 일본의 인력난으로 인해 프리랜서 인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 프리랜서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경제활동인구 약 2,000만 명의 10%정도가 소위 파견, 용역, 일일근로, 재택근무자를 포함하는 비전형 근로자라고 하니 어림잡아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노동연구원도 올 3월에 특수고용노동자 규모를 비전형 근로자 수와 비슷한 220만 명으로 발표했다. 소위 ‘특고’라 불리는 이들에는 자영업자이면서 근로자처럼 일하는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배달대행, 돌봄서비스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포함된다.
프리랜서 증가와 함께 업워크(Upwork), 프리랜서닷컴(Freelance.com), 이랜서(eLancer), 위시켓(Wishket), 크몽(Kmong), 숨고(Soomgo) 등의 온라인 일거리 중개 플랫폼 업체들도 성황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프리랜서들의 70% 이상이 온라인을 통해 일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에 등록된 일감의 절반 이상은 IT 프로그래밍 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관련 업무다. 향후 산업 곳곳의 디지털 전환에 따라 IT프로젝트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SW프리랜서 수요도 함께 커질 것이다. 일한 만큼 버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의 소득에 관한 공식적 통계는 없으나 전 세계 개발자 약 1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스택오버플로우(Stackoverflow)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개발자들의 평균 소득은 약 7만 달러이며 미국은 평균 12만 달러가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프리랜서는 정규직보다 시간당 단가가 좀 더 높다.
국내 SW 기술직군 상용근로자는 24~3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3~5만 명 수준으로 추정 된다.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말 IMF 위기 때부터다. 이 시기 전산 인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던 금융권의 구조조정과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한 IT 아웃소싱 붐이 일면서 상당수 개발 인력들이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이들은 전자정부 프로젝트 같은 국가 정보화 사업에도 투입되어 우리나라가 전자정부 선진국이 되는데 기여했다. 이후 2013년 공공 SW사업에 대기업 참여 제한 규제가 생기며 대형 SI기업들이 공공사업에서 철수하였고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대규모 인력들이 구조 조정되면서 하청업체로 창업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향하게 된다.
한편, 시스템 구축(SI) 사업이 중심이 된 국내 SW산업에서 개발인력은 그들이 생산해 내는 가치로 평가되기보다는 비용으로 인식되었다. 투입인력의 인건비를 기반으로 SW사업비를 산정하는 이른바 헤드카운팅(工數산정) 방식 때문이었다. 발주자는 예산을 줄이고자 하고 수주 기업들은 이윤을 높이고자 하는 과정에서 투입 인력의 개발 대가 즉 인건비를 줄이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SW 개발은 3D업종으로 인식되고 유능한 인력들이 SW 업계를 더욱 기피하게 되었다. 작년 3월 고시 개정을 통해 헤드카운팅을 금지하도록 했지만 잘못된 관행은 여전하고 악순환 구조는 쉽사리 깨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SW프리랜서들의 실태는 어떠할까? 2018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서 국내 SW프리랜서 약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소득, 근로 시간, 계약형태, 불공정경험 등 근로 환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의 평균 연 소득은 3,600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프리랜서들의 60% 이상이 고객사에 상주하면서 마치 직원처럼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객사의 정규직 근로자와는 다르게 절반이 넘는 프리랜서들은 법정 휴일과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야근 비중은 80%가 넘었다. 이들의 절반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있으며 75% 정도는 임금 체불 이나 과도한 업무 변경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작년 IT하청업체 소속 프리랜서가 금융권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고객사 화장실에서 사망한 사건과 올해 초 카드사 차세대 프로젝트에 투입된 하청업체 임원이 자살한 사건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와 주목을 받았다. 또, 20대 프리랜서 여성 웹 개발자가 재계약을 빌미로 한 상급 업체 임원의 성폭행을 피하려다 사망한 사건도 이슈가 되었다. 이 사건들은 구조적으로 계약 과정의 최말단에 위치한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겪고 있는 열악하고 부당한 근무 환경을 드러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업계 경험이 부족하고, 업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저년차, 저숙련 프리랜서들에게서 더 나타난다. ‘나쁜’ 하청업체들은 단기 교육만을 받은 경력 없는 신입도 이력서를 부풀려 단가를 높여 프로젝트에 투입시킨다. 프리랜서가 받아야 할 대가의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업무 중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한다. 프리랜서가 업체를 고소하고 민사 소송을 진행하지 않는 한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개발자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프리랜서들은 문제가 생겨도 대부분 무대응이다. 대응 방법을 모르거나 소송에 쓸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나쁜 업체들은 프리랜서들의 이러한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노동권 내지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SW프리랜서 개발자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첫째는 제값 받기다. 제값은 업체와 프리랜서 간의 계약에 근거한 대가를 제대로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계약서가 작성되어야 한다.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절반 정도만 프로젝트 참가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머지는 가끔 하거나 아예 작성하지 않는다. 설사 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구체적인 과업 내용은 적시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분쟁 소지를 남기고 있다. 뉴욕시가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프리랜서 보호 조례에서는 표준계약서 양식을 만들어 보급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양식에 맞춰 구체적인 과업 내용과 대금 지급 방법 등을 반드시 작성하게 되어있다. 하청업체와 프리랜서 개발자간의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 표준계약서는 용역계약서 또는 근로계약서 형태로 만들어져야 하며 IT서비스와 같이 고객사 직원들과 동일 근로를 하는 형태라면 근로계약서, 하도급으로 수행하면 용역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용역계약서는 프리랜서의 근로 장소, 근로 시간, 업체의 일상적 업무 지시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최소한의 사회 보장이다. 프리랜서는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용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프리랜서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현행 노동법은 사용자의 장소에서 사용자의 업무 지시를 받으며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으면 근로자로 본다. IT서비스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원청업체나 하청업체로 출퇴근을 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의 업무 지시를 받아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신분상 프리랜서일 뿐 정규 직원과 다름없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서는 사회보험의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 실제로 예술인들은 예술인복지법에 근거해 산재보험, 고용보험,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들도 산재보험법에 근거해 산재보험 가입을 할 수 있다. 건설업의 일용직 근로자들자도 건설근로자법에 따라 퇴직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리랜서와 정규 직원의 노동 형태에 큰 차이가 없는 IT 서비스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을 위한 사회 안정 망이 필요하다.
셋째, 경력 개발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 제공이다. 개발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IT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우선이다. 저년차에게는 IT관련 자격증이나 취업 연계형 기술 교육 과정을 제공함으로써 기초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도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SW 신기술 기초 교육이나 유망 기술들에 대한 심화 교육을 제공할 수 도 있을 것이다. SW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비학위 교육 과정인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와 같은 저숙련 SW프리랜서들을 위한 비학위 과정의 추가 개발도 검토해 볼 만하다. 예술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제공하는 것처럼 개발 초년생들에게 개발장려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 프리랜서들은 보통 1년에 2달 정도 휴식기간이 있으므로 이 기간을 교육 훈련에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세법 교육, 계약서 작성법, 기초 노동 관련 법률 교육, 분쟁 해결 방법 등의 교육도 필요하다. 기업체에서는 프리랜서의 부족한 협업 능력과 의사소통 역량을 지적하기도 하므로 소프트 스킬 강화를 위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SW프리랜서 개발자들은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며 충분한 소득을 올리는 이상적인 프리랜서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정규직 일자리를 포기하고 나온 프리랜서들도 기회가 되면 다시 정규직으로 가고 싶어 한다. 물론 프리랜서로 버는 것보다 급여 수준이 높고 안정적이며 발전 가능성이 있는 업체를 찾는다. 이들은 프리랜서는 ‘갑‘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핵심 업무를 리드하는 프로젝트 관리자나 아키텍처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실태조사 결과 정규직 전환 의향이 있는 프리랜서들이 70% 이상이며 60%는 꾸준히 정규직 자리를 찾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SW프리랜서 개발자들은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들의 잠재된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려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하며 안전한 근로 환경 마련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인력 쥐어짜기를 통한 아슬아슬한 주먹구구식 개발 관행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제 SW 개발과 유지보수 패러다임은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지능화된 플랫폼 기반 방식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그리고 플랫폼 경제 시대에는 프리랜서 개발자들이 SW신기술을 경제적·사회적 가치로 전환시키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다양한 산업을 넘나들며 혁신의 전도사로 활약할 때 우리나라도 SW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