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스트 제외와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의 대응방안
※ 이 글은 한국인터넷진흥원 이정현 박사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국내 영향
일본 정부가 2019년 7월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8월 2일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 각의(우리나라 국무회의에 해당한다) 결정에 따라 8월7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내용을 담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공포되었으며, 8월 28일 본격 시행에 들어가게 되었다.
많은 언론보도로 주지하겠지만, 일본은 수출의 효율성을 위해 우방국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로 지정해 리스트 규제를 받도록 우대하고 있다. 따라서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 되었다는 것은 민감한 물품을 수출하기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 27개 화이트리스트국가에 포함되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화이트리스트국가에 포함됐던 우리나라는 더 이상 수출심사 우대국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심지어 일본 측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허가 기간을 지연하거나 추가 서류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자 하는 물품의 국내 반입이 불허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산업측면에서 볼 때, 전략물자관리원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정밀기계부품 제작장비에 사용되는 수치제어(CNC) 소프트웨어의 전체 수입량 중 91%를 일본에서 수입하므로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따라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소프트웨어 분야 한일 경쟁력 비교
가트너(Gartner)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일본의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는 819억 달러로 우리나라 127억 달러의 7배 이상이라고 한다. 또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kr)의 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을 비교하여 볼 때 2019년 기준으로 일본은 108만 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9만 명이 종사하고 있어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프트웨어 기업 수는 일본이 3만5천 여 개이지만 우리나라 2만 여 개로 1,7배 차이가 나 우리나라가 일본에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일본에 비해 더 나은 분야도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조사한 ‘ICT발전지수’에서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ICT접근성, ICT이용도, ICT활용력 부문에서 최상위 2위인 반면, 일본은 10위에 랭크돼 있다. 또한 SW개발 및 업무능력, 조직성숙도 등을 측정, 평가하는 ‘CMMI(Capability Maturity Model Integration)모델’ 인증 결과 우리나라 7위, 일본 9위로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소프트웨어분야 경쟁력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스마트홈, 이동통신 등에서 우위에 있고, 사물인터넷에서는 양 국가가 대등한 수준인 반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은 일본에 비해 90%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일본에 비해 열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 소프트웨어 산업 분야 화이트리스트 제외 극복을 위한 우리의 대처방안
현재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사항을 한순간에 번복할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대상으로 반도체산업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전 산업으로 그 여파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며, 한일 교역 급랭 속에 양국 산업 모두가 타격을 입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주로 소재부품 등을 수입하여 자체 생산한 물품과 결합하여 완제품화하여 수출하거나 내수로 사용하여 왔다.
앞에 언급하였듯이, 자동차나 선박 등에 필요한 기계 부품을 만드는 정밀 장비인 공작기계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가 주로 일본제품이다. 또한 미래 주력산업인 우리나라 ICT산업에 대해 일본이 다음 목표로 무역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산업분야에서의 대처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때다. 이에 다음의 4가지 대처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선택과 집중을 통한 미션기반 혁신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타격을 입는 소프트웨어의 국산화를 조속히 서둘러야 한다. 우리의 기술력은 일본에 뒤처져 있지 않다. 다만, 그간의 산업 구조상 우리가 국산화하여 생산하기보다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여 부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여 왔을 뿐이다. 그것이 무역이나 경제논리로도 이로웠고 새로운 응용분야 개척에도 신속하고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분야가 무역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상황에 온 이상 관련 분야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단한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여야 한다. 우리의 인력과 자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소수정예,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시스템통합(SI) 이외에 응용소프트웨어나 앞으로 미래 산업으로 지목되고 있는 클라우드 산업, 인공지능 등에 예산과 정책 등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연구개발(R&D)과 시장성의 연계를 위한 산학연 협력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성과는 OECD국 평균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ISTEP의 자료를 참고해 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4.55%로 세계 1위다. 정부와 민간을 합친 R&D 비용 총액은 79조원으로 세계 5위, 인구 1만 명당 연구원 수도 세계 3위권이다. 이 정도면 연구개발의 질적 성과도 훌륭해야 할 텐데 부끄럽게도 하위권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연구원 1인당 논문 인용 수는 1편당 5.84로 35위, R&D 투자 대비 기술수출액 비중은 17.8%로 세계 30위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관료주도형 연구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긴 시간을 두고 연구 하여야 하고 단시간 내에는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기초연구는 홀대받는다. 정량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연구 성과를 평가하며, 단기에 성과를 낼 수 있고 관 주도의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연구과제만이 채택되고 풀기 쉬운 R&D연구만이 살아남는다.
더구나 산업보다는 기술에 치중하기 때문에 시장성이나 상품화와는 거리가 먼 R&D과제만이 연구되어 이런 과제를 발주한 정부 출연연구소의 기술 개발은 보고서단계에서 머무르고 서랍 속에 갇힌다. 현실 적용의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고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계기로 우리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정부, 산업계, 학계의 공고한 네트워크 체계 구축 및 시장에서의 활용성을 강조하는 R&D 연구과제의 채택이 절실한 시점이다.
셋째, 가치사슬 기반 대중소기업 협력체계 공고화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협력보다는 시장의 세분화를 통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다면, 이제는 상생을 통한 총력전을 추진할 프로젝트 발굴이 필요하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사태를 맞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아무리 국산 부품이 좋더라도 수 십년 간 일본산 제품을 문제없이 사용하다보니 국내 제품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에서 개발한 제품이 등장하면 저가 공세나 보증 등으로 그 싹을 잘라버렸다. 대기업은 국산 제품을 채택하여 위험을 부담하기 보다는 오랫동안 써오면서 이미 검증된 일본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한데다 비용도 더 적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 구조체계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좋은 기술로 제품을 개발했지만 판로가 없어 사세를 확장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중소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빼앗아가는 대기업도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구태를 벗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체계를 공고히 하여 대형 완제품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나 관련 기술이 내장된 부품은 중소기업이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치사슬을 만들어가야 한다.
넷째,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기술개발을 하는 사람, R&D를 하는 주체는 관련분야 인재일 수밖에 없다.
고급 인력의 유입 매력도를 나타내는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해외고급인력유인지수에 의하면 2005년 5.14p.(27위)에서 2018년 4.00p.(43위)로 감소세를 나타냈다(0에 가까울수록 해외고급인력이 국내에서 활동하기를 꺼려함을 의미한다). 또한 국내의 연구자인 경우 국내 연구 환경에 대해서 연구자에 대한 처우 및 지원 불만족, 단기성과 중심의 실적 평가 등의 이유로 국내보다는 해외 취업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트리스트 사태를 기화로 우리나라의 국내외 연구자들을 육성하고 처우를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 등으로 무장한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재를 찾고 육성하여야 한다.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이 절실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