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녘 Shim, Dongnyok / 건국대학교 조교수 Assistant Professor Konkuk University / sk4me@konkuk.ac.kr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전 세계로 학산 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씨름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엄청난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만 구하기 힘든 줄 알았던 마스크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에서는 개당 2만 원을 넘어설 정도로 금값이 되었고, 연일 주요외신들은 자국의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의 사재기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는 급증하던 확진자 수 증가세가 두 자리 수 대로 떨어지면서 맹위를 떨치던 코로나19가 한풀 꺾이는 모양세다. 2월 말 예상치 못한 특정 종교집단의 대규모 감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기에 코로나 확산의 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의료인들의 희생과 헌신에 더하여 중앙정부의 행정력과 보건 당국의 방역능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행정력 뒤에는 우리정부가 그간 구축한 전자정부시스템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일례로, 코로나 발생 초기국면에서 환자의 해외여행력을 토대로 감염가능성을 확인하고 감염(확진)여부를 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리 의료시스템은 접수단계에서 수진자자격조회시스템(건강보험 자격 확인), 접수·문진 단계에서 ITS(International Traveler Information System, 해외 여행력 정보제공 프로그램), 처방 단계에서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등을 활용하여 해외여행이력을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의료기관은 유증상자 중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조기에 확인하여 감염여부를 검사받도록 조치하였다.
마스크수급에 차질이 생겨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게 되자 약국을 공적 마스크 판매처로 정하여 5부제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구축한 DUR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약사들은 해당 시스템에 접속하여 중복구매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정해진 지침에 따라 판매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재난상황에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정부의 정보시스템을 활용하고 경험하고 있어 그 효능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로 이와 같은 정보기술을 국가사무 전반에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UN전자정부평가 3회 연속 1위에 빛나는 국가 정보화시스템이 국가재난 상황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정부시스템이 방역을 위한 정부 행정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이 민간에서는 정보기술을 활용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서비스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공적 마스크 판매 초기에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하여 큰 혼란이 야기될 뻔 하였으나, 30여 개 이상의 공적 마스크 판매정보 제공 앱·웹서비스가 만들어지면서 시민들은 재고여부도 모른 채 긴 줄을 서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확산상황 및 감염병 대응정보를 제공과정에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기반으로 코로나19 관련 종합 상황 지도서비스를 제공하였고, SW기업 와이즈넛은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예방 및 올바른 대처 방안을 알려주기 위한 공익 챗봇 서비스를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는 자사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를 활용하여 코로나19 능동 감시자에게 하루 2번씩(오전 9시, 오후 3시) 자동으로 전화를 걸어 발열, 호흡기 증상 등을 확인하는 AI기반 음성봇 “AI 케어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19 시국에서 빅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이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은 확산상황 및 대응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상술한 AI기반 챗봇과 감염병 대응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서비스들은 전염병 그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하지만 시민들이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현 시국을 대처할 수 있게끔 하는 유용한 수단들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종식으로 가기 위한 필수 관문, 즉 환자진단·식별의 의료시스템 개선 및 백신·치료제 등 신약개발과정에서도 AI와 빅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기업 중 하나인 씨젠은 진단 키트 개발 과정에서 AI를 활용함으로써 개발 시간을 2주 내외로 대폭 단축하였고 이를 통해 국내 사용승인 및 유럽 인증도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었다. 의료분야 영상판독업체인 뷰노는 폐질환으로 진행된 환자의 X-ray 영상을 수 초 내에 판독하여 중증 환자를 신속하게 분류할 수 있는 AI솔루션을 개발하였고 현재 의료현장에서 활용 중이다.
불과 몇 달 후 발생 할 신종 전염병의 전세계적 확산을 예견해서 였을까? 공교롭게도 올해 1월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7대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선의를 위한 기술(Tech for Goods)”이었다. 정보통신 신기술이 복잡다단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인간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정책과 거버넌스 시스템이 필요하다는데 전 세계 주요국의 정계, 관계, 재계 유력인사와 언론인, 그리고 경제학자가 의견을 함께한 것이다.
국제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재난·재해, 환경오염, 기후변화, 자원고갈, 도시화, 질병·안전 등 국민의 삶의 질과 연관된 다양한 사회문제가 글로벌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급속한 사회변화와 함께 다양한 집단·계층 사이 이해관계의 충돌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국가사회의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경제발전과 함께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교육, 주거, 건강, 환경, 안전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결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히 최근 다양한 사회문제의 진단과 이를 기초로 한 정책수립에 있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시도들이 성과를 얻고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 Farhadloo와 연구진(2018)은 SNS소셜데이터를 활용하여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미국 시민의 태도와 행동을 분석한 바 있으며, 덴마크에서 Buch와 그의 연구진(2018)은 시민들이 무인자동차 도입에 부정적인 이유를 신문기사와 트위터 자료를 분석하여 주요요인을 도출한 바 있다. 그 결과 해킹, 안전문제, 법적책임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등장했는데 놀랍게도 무인자동차의 급속한 확산이 자신 또는 타인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고용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부정적 태도를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드러났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덴마크 정부가 무인자동차 도입과 함께 노동정책을 함께 검토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렇듯 빅데이터 분석은 보건, 교통 등 주요 사회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객관적인 근거를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분석하여 제공함으로써 한정된 표본, 높은 비용 등 기존 조사방법이 지니는 한계점들을 성공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 SW신기술의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이제 어떻게?의 문제가 남는다. 어떻게 ICT신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우리사회가 떠안고 있는 주요 현안을 해결하고 사회혁신의 발을 내딜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전(全)지구적 또는 국가적인데 반해 다수의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는 기업과 기업가에게 있기에 간극이 발생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현안은 정부와 정치권 국민이 마주하고 있는데, 실마리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 공포가 엄습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 미스매치(Mismatch)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은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언급한 30여 개 이상의 공적 마스크 판매정보 제공 앱은 개발자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보 통신부가 공공데이터(공공기관이 생성·관리하는 자료)를 취합하여 ‘공적 마스크 판매 데이터’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체적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판매처·입고시간·판매 정보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약국 주소와 결합해 제공하였고 민간기업들이 앱을 개발해 마켓에서 제공한 것이다. 그간 관리감독과 통제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온 정부행정이 민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면서 시민 불편을 크게 해소하였다. 민관협업이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보기술을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방식과 절차에 있어 민관협업에 대한 강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번 사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참신하다. 우선 정부의 역할이다. 마스크 판매정보 제공 앱 개발과 관련하여 정부가 프로젝트의 발주자로서 혹은 갑(甲)으로서 세부 기술 수준과 기능을 상세히 규정하지 않았다. 소위 시방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작성하는 등 과제발주-수주에 의한 계약관계로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았다. 정부는 그저 필요한 공공데이터를 적시에 충분히 제공하여 국가 정보화 자산의 활용을 극대화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서비스는 공개된 자료를 활용하여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개발하였다. 시민들한테 전달되는 것은 서비스이지 기술이 아니다. 정부가 사회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사업을 기획한다 하여도 기존의 관성대로 사업을 설계하고, 세부내용을 명시화하다 보면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은 기술개발 중심의 관성 때문에 시민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완성된 수준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소홀할 수 밖에 없다.
둘째, 기업의 역할이다. 세상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않고도 장기적으로 생존하거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마스크 공적판매 초기에 다양한 마스크 정보제공 앱들이 개발되었지만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스템 편의성이 떨어지는 앱들은 일찌감치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이윤창출 동기를 지니고 있는 기업은 정부가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보서비스를 고도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며 그 과정에서 기술과 경험이 축적된다. 결국, 정부가 모든 시스템을 소유해서 운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번 사례는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 비용효과적이면서 신기술을 적시에 활용할 수 있는 사용중심의 서비스 방식을 적절히 활용한 선례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확산 국면에서 경험했듯 사회문제의 강도와 복잡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다행히도 보건·복지를 비롯하여 환경, 교통, 주거 등 다양한 국가사회 현안을 둘러 싼 정책의 의제도출과 정책기획에 있어 빅데이터 등 최신 정보기술의 활용이 다양한 시범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그 기술적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하여 다양한 정부현안에 대하여 한정된 정부 정보화예산으로 대응하는 서비스를 모두 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사회문제 해결은 타이밍이다. 정부와 기업은 협업하되 각자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때문에 서비스의 적시제공과 기술혁신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인 민관협업 모델이 추진되어야 한다. 대규모 투자비가 소요되어 재정사업으로 단기간에 구축·운영이 어려운 정보화사업의 경우 민간재원을 활용하여 서비스 조기 구축 및 적시제공이 가능하다. 민간은 자본투자를 하는 대신, 자기책임 하에서 정보화사업의 설계, 구축, 운영까지 전체 사업생애주기 관점에서 통합 관리함으로써 효율성을 도모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이 경우 단발성 구축프로젝트 중심의 관행을 탈피하여 민간이 서비스를 제안하고 운영까지 도맡아 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비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디지털자산이 축적되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의 최적화도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도 좋고 사회문제 해결도 좋고 빅데이터 등 신기술도 좋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SW기술을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을 속도감 있게 수행하려면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어떻게?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다행히 기업이 주도하는 민간투자형 공공정보서비스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개정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전부개정법률안에 담겨 있다. 본 법안 39조는 국가기관 등의 장이 민간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하여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협력하는 소프트웨어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명시함으로써 민간이 주도하는 공공정보서비스 사업의 길을 열어주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들에게는 정보화 부문에서 BTO, BTL 등 다양한 민간투자방식을 통해 지속적 수익확보 기회가 열리는 동시에 시민들은 고품질의 정보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나아가 소프트웨어와 시설투자 등 복잡한 사업의 기획, 관리, 추진에 있어 상대적으로 역량이 높은 대기업과 전문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들의 협력 또한 가능하다. 법안통과 시 정부-대기업-중견·중소기업의 협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문제해결형 정보서비스들이 개발될 수 있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느냐 다 놓치느냐의 문제이다. 산업과 사회는 공진화(Co-Evolution)한다. 정부는 산업혁신과 사회혁신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고, 디지털전환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저비용 고품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주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산업경쟁력 또한 제고할 수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전면개정안이 이제 막 상임위를 통과했다. 20대 국회 임기종료 전에 가결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