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의 관점에서 본 디지털 뉴딜 성공의 조건

  • 유호석산업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날짜2020.06.26
조회수12890
글자크기
  • 디지털 뉴딜과 소프트웨어 부문
    • 2020년 6월, 코로나19 극복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위한 디지털 뉴딜 정책이 발표되었다.1 DNA(Data·Network·AI) 생태계 강화와 비대면 인프라 확대가 주요대상이며, 재정규모는 20년 3차 추경 5.1조 원을 포함하여 22년 까지 13.4조 원이다. 기존 공공SW 예산이 연간 5조 원 수준이었는데, 뉴딜 예산에서 SW부문에 얼마나 배정될 지는 이후에 세부계획이 나와봐야 알 것이다. 일단 SW업계에서는 IT서비스 기업을 중심으로 공공SW 예산의 증액을 기대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2
    • 그런데 금번 대책을 들여다 보면 공공SW 사업 관점에 매몰 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대책 중 14만 개 공공데이터 개방과 AI학습용 데이터 700종 구축계획은 SW산업을 넘어서 SW를 도구로 삼는 全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료로 기대된다. 데이터에 대한 분석·설계·가공·처리는 IT서비스 기업이 전문성을 가진 분야이며, AI로 기술이 바뀌어도 이러한 全산업과 융합하는 업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에 공공SW 영역 밖에서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있다. 디지털 뉴딜의 또 하나의 축인 비대면 인프라 투자는 초중고·대학·직업훈련 원격교육 인프라 확대, 중소기업 대상 원격근무 인프라 지원계획이므로 이 역시 SW기업의 먹거리임은 분명하다. 이제 SW 없는 네트워크, 하드웨어 투자만으로는 비대면 디지털 전환 시대의 IT수요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대면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는 공공행정 효율화가 중심인 공공SW 예산으로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SW기업들은 공공SW 추경예산의 수주경쟁을 넘어 공공부문의 디지털 전환 수요 증가에 준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 뉴딜의 유효수요 창출과 소프트웨어 공급능력
    • 경제학자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에 근거하여 1930년대 미국이 시행했던 뉴딜정책은 민간투자의 감소를 정부의 재정지출로 보완하는 정책이었다. 유효수요란 잠재수요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단순한 구매의사를 넘어 실질적인 구매력까지 뒷받침 되는 수요다. 따라서, 최근처럼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가계와 기업의 수요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구매(유효수요)를 확대하여 국민의 소득수준을 올리는 정책이다. 케인즈의 경제학은 수요가 공급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경제학과 달랐다.3
    • 그런데 유효수요를 한없이 증가시킨다고 해서 국민소득이 계속 증가할 수는 없다. 총수요를 증가시켜도 단기적으로는 총공급이 증가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4 미국의 뉴딜은 테네시강 유역의 댐 건설 등 건설투자가 중심이었다. 건설투자의 일자리는 수요증가에 따라 공급이 탄력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뉴딜정책에 필요한 데이터·AI 분야의 고급 소프트웨어 인력은 지금도 부족한데다 공급을 단기간5에 늘리기도 어려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 우려된다.
    • 이러한 상황에서는 최소인력으로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패키지SW와 SaaS를 구매하는 것이 첫번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초중등 원격교육의 애로사항으로 교사·학생이 사용할 SW라이센스 부족이 꼽히고 있다.6 학교 원격수업과 중소기업 원격근무에 필요한 각종 패키지SW와 SaaS를 조속히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추경예산을 우선 할당할 필요가 있다. SW라이센스 구매는 단기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어 뉴딜정책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외산 SW라이센스의 시장점유율만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우리 SW기업의 내생적 성장에 디지털 뉴딜이 도움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SW기업을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되, 예산투입은 단기에 마무리할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해야 한다.
  • 뉴딜의 효과 논란과 민간SW 투자 유도
    •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 뉴딜정책으로 극복되었다는 평가에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 대공황을 종식시킨 것은 뉴딜이 아니라 전쟁 이후 무역이 재개되고 민간투자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라고 하며,7 민간부문의 기대심리 회복8이 더 중요하다고도 한다.9 어쨌든 정부투자는 결국 민간투자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 민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인력을 축적하고 있는 대기업의 참여가 요구된다. 따라서 우선 추경예산으로 신사업을 창출하고 사회적·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공공 프로젝트를 만들고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두 번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적인 프로젝트 초기의 실험단계에서는 사업규모와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의 참여를 허용했다가, 프로젝트를 확장(Scale-Up)하는 과정에서는 민간이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 이렇게 민간이 공공SW 서비스에 투자하고 수수료 등 수익을 배분하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개정된 SW진흥법이 지난 5월 통과된 상태다. 다만 단기에 수요를 끌어올려야 하는 뉴딜정책의 성격상 조기에 재정이 집행될 수 있도록 코로나19 국난 극복기간 동안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디지털 뉴딜 효과를 반감시키는 대면중심 제도의 개선
    • 마지막으로 디지털 뉴딜의 한 축인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를 방해하는 제도를 살펴보아야 한다. 당장 비대면 서비스가 가장 많이 필요한 원격근무 분야에서 대면중심의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중소기업에게 재택·원격근무 인프라 구축비의 50% 범위에서 2,000만 원까지 지원하나, 소정 근로시간 준수하고 연장근로를 점검하기 위해 전자방식의 근태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선결조건이 존재한다.10 이메일 또는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를 활용한 근무 시작 및 종료시간 보고자료(캡처 등) 허용하는 것으로 간소화하였으나, 보고 자체가 대면보고 문화의 연장선이다. 이를 사업장 밖에서 일하는 재택·원격근무에 적합하도록 관련 지원사업과 제도 정비를 통해 비대면 문화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 원격교육에서도 대면중심의 제도는 마찬가지이다. 각급 학교의 원격수업 기준상 40분·45분·50분11 단위 수업시간을 준수해야 하고, 출석을 실시간 확인(LMS, 메시지, 통화) 또는 사후확인(학습 보고서, 학부모 확인서)하는 자료를 일정 기간 내에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12 이를 원격수업에 맞게 단위 수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온라인 수업에서는 출석확인이 필요없는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출석 자동인식 등 AI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교육심리학 관점의 성공사례 발굴, 평가체계의 변화 등 교육의 디지털 전환과정에서 예산이 필요한 곳에 추경예산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 뉴딜정책의 원조로 앞에서 여러 번 다룬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을 인용하며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
    • "장기는 현재 문제에 대한 잘못된 안내자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다 죽는다. 태풍이 오는데, 태풍이 지나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바다는 다시 평온해진다는 말만 들려 준다면 경제학자들은 너무 안이하고 쓸모 없는 일만 하는 것이다."
    • SW 공급능력의 제약을 고려하고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신속한 재정집행과 재정투입을 뒷받침하는 제도의 개선, 이것이 SW관점에서 본 디지털 뉴딜의 성공조건이다.
    • 1 대통령 주재 6차 비상경제회의(2020.6.1.),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 2 머니투데이(2020.5.11.), “디지털뉴딜에 미래있다…쌍수든 IT업계”
    • 3 케인즈 이전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이 주류였다. 케인즈의 경제학은 수요가 공급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경제학과 달랐다.
    • 4 정운찬, 김영식(2015). 『거시경제론』. 율곡출판사, p.93
    • 5 금번 디지털 뉴딜 계획에 ‘AI·SW핵심인재 10만 명 양성’이 포함되어 있으나, 뉴딜이 요구하는 단기수요 증가에 충족한다기 보다는 장기적인 인력양성 계획으로 해석할 수 있다.
    • 6 유호석, 정순원, 송지환(2020), “초중등 학교 원격교육을 위한 IT·제도 인프라 개선 방안”, SPRi이슈리포트
    • 7 조경업(2017), “뉴딜정책의 교훈”, 한국경제연구원
    • 8 이코노미 조선(2017.11.17.), “총수요보다 중요한 기대심리”, 도쿄대 심승규 교수
    • 9 케인즈도 이러한 심리적 요소를 간파하여 ‘야성적 충동’이라고 불렀다.
    • 10 이데일리(2020.3.17.), “재택기업 전체 3%.... 정부지원책 있지만 공염불”
    • 11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
    • 12 교육부 보도자료(2020.3.17.), “코로나19 대응 2020학년도 초중등특수학교 원격수업 운영 기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