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로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비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코로나19는 개인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측면에서의 부정적 신호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XR(eXtended Reality: Virtual + Augmented + Mixed Reality)이 제공하는 확장 경험에서의 몰입감과 거리의 제약없이 사용자들을 연결해주는 공존감은 사회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높은 몰입감은 지속적인 치료 동기를 부여하고 편안한 가상환경 가운데 심리 치료의 효과를 높여준다. 공존감은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하고, 깊은 연결성을 제공한다. 해외에서도 고령층 생활 지원, 의료, 소셜VR 측면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회복에 XR을 활용하기 위한 조직적·제도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치유를 위한 확장 경험, XR
사회적 고립과 이로 인한 외로움은 육체·정신적 측면에서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치매 등 심각한 질환의 위험도를 50% 높이고 이는 흡연, 비만, 신체 활동 부족 등에 필적하는 위험이라고 평가되고 있다.1 이러한 위험은 코로나19로 인해 연령과 병력에 관계없이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통계청에 따르면 10% 미만이었던 우울증 환자 비율이 팬데믹 이후에 20%로 약 2배 증가했으며2 국내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을 의미하는 코로나블루를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이 71.6%로 나타났다.3
사회심리학자 졸란다 제텐(Jolanda Jetten)은 본인의 저서 ‘사회적 치유(Social Cure)’에서 사회적 연결이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해준다고 말한다. 고령자나 심각한 질병 치료 환자와 같이 거동이 어렵거나 사회적 격리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연결망이 필요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공존감과 긴밀함으로 제공하는 XR(eXtended Reality)4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XR은 몰입감과 공존감을 통해 사용자에게 확장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회복과 치유의 효과를 향상 시킨다. 가상환경에서 사용자에게 목표 의식과 함께 치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반복적 재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한다.5 사용자의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구성해 몰입감 높은 명상과 정신적 치유를 경험하게 한다. 시선맞춤과 자연스러운 표정 및 손동작,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다는 공존감은 물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사용자들 간에 깊은 연결성을 제공한다.
[그림 1] XR을 활용한 회복·치료 효과
※ 출처 : (좌) gameChange6 공식 홈페이지, (우) SPRi 구성
※ 주석 : (좌) XR 기반 심리치료 모습, (우) XR을 통한 치유 효과 분류
가상경험을 통한 몰입감 기반의 치료에 대한 연구는 과거부터 진행되어 왔다. 맥스 노스(Max M. North)는 1996년 본인의 저서7에 가상현실치료(Virtual Reality Therapy)를 소개했고, 2002년 다니엘 탈만(Daniel Thalmann)은 물리치료와 인지적 중재를 위한 가상재활(Virtual Rehabilitation)을 제시했다. 최근 XR은 네트워크와의 결합을 통해 거리의 제약없는 연결성을 제공하였고 이는 원격 진료, 그룹 치료, 사회적 연결 형태로 활용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사회적 치유를 위해 XR을 활용한 해외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나아가야할 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령층의 확장 경험을 통한 회복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과의 잦은 만남이나 장거리 해외여행은 쉽지 않기에 XR을 통한 경험의 확장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미국은퇴자협회)8는 세계 최대 비영리 시니어 단체로 혁신 연구소(AARP Innovation Labs)의 벤쳐육성 프로그램 해처리(Hatchery)에서 신기술을 통해 고령층의 사회적 지원방안을 찾고자 하였다. 렌데버(Rendever)9는 해처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VR 플랫폼 개발 전문기업으로, AARP는 렌데버와의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이동이 불편한 고령층이 원거리의 가족들을 가상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VR 플랫폼 알코브(Alcove)10를 세상에 선보였다.
알코브는 안락한 가정의 공간을 가상현실에 구현함으로써 가족 간의 연결성에 중심을 둔 VR 플랫폼이다. 시니어를 주요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화려함보다는 편안함을 주고자 노력했다. 벽면에는 고전적인 액자가 꽉 차 있고 게임용으로 체스판이 배치되어 있으며 가상여행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지구본을 돌려 행선지를 선택한다. 가족들은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 접속을 하면 이 공간에서 만나 가족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체스 게임을 할 수 있으며 함께 가상여행을 떠날 수 있다. 토끼와 같은 가상 애완동물을 알코브 공간에서 기를 수 있고 요가와 같은 건강관리부터 클래식 음악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일상에 가까운 생활의 경험이 가능하다. AARP 혁신 연구소 부사장 리차드 로빈슨(Richard Robinson)은 50세 이상의 사람들이 아바타를 통해 자녀나 손자, 손녀와 교류하고 있으며 알코브에서 이를 경험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11
은퇴자 주택지구에서도 고령층의 외로움 및 우울증 관련 신체 질환으로부터의 회복을 XR 경험에서 찾고자 하고 있다. 오팔(Opal)12은 호주의 고령자 주택지구 관리 회사로 건물 관리뿐만 아니라 거주자가 두려움, 불안감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고품질의 의료와 함께 사회적 오락 프로그램, 커뮤니티 모임 등을 제공한다. 그중의 일환으로 입주자의 방에 AR 기반 프로젝션 시스템 롬파(ROMPA)를 설치하고 있다.13 연못의 물고기가 바닥 또는 테이블에 투영되면 입주자는 손으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감각을 자극하고 옛 추억을 떠올린다. 오팔의 총지배인 알리(Arlie)는 이를 통해 입주민의 감각적 자극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극과 신체 건강까지 지원한다고 말했다. 비바비타(Viva Vita)14는 은퇴한 고령자들의 정신적 건강과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은퇴자 주택지구를 대상으로 VR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면 VR 헤드셋과 함께 전문가가 방문해 기기 이용에 대한 어려움 없이 이용자들이 VR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300명 이상의 시니어 이용자들에게 파리, 런던, 가이아나 등 가상여행과 수중 및 비행 체험을 통해 약물, 상담, 생활 습관 조정이 아닌 새로운 우울증 치료법을 제공하였다.15 베란다 은퇴자 주택지구(Verandah Retirement Community)16는 주민들의 기억력 향상과 육체적 건강을 위해 코로나 이전부터 VR 헤드셋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7 기억치료실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 가족과 함께 즐겼던 휴가 등 옛 추억과 심해 다이빙을 체험함으로써 사용자들이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전무 이사 카트리나 던(Katrina Dunn)은 기억치료실을 이용하는 30명 중 2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또는 그 이상의 VR을 경험하며 격리감에서 벗어나 행복함을 느낀다고 설명하였다.
[그림 2] 고령층 생활지원에서의 XR 활용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주석 : (좌) 알코브에서 가상 여행지를 고르는 모습, (중) 오팔 입주민의 AR 프로젝션 체험 모습, (우) 비바비타 입주민의 VR 체험 모습
의료 분야의 효과적 치료
의학적 치료에서는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환자의 치료 동기가 중요하다.18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의 재활 동기를 강화하고 정신적 통증이나 불안을 낮춤으로써 치료의 효과를 높이고자 XR이 활용되고 있다.
마인드모션프로(MindMotion PRO)19는 마인드메이즈(MindMaze)20에서 개발한 VR 기반 재활치료기기이다. 신경계 손상으로 거동이 어려운 환자의 재활 운동에 게임성을 부여해 집중력과 재활 효과를 높인다. 환자의 손을 인식하고 가상공간에 시각화된 가상의 손으로 물건을 옮기게 함으로써 재활에 필요한 손동작을 유도한다. 마인드모션프로는 FDA(미국 식품의약처)의 승인을 받은 의료기기로 활용되고 있으며, 환자의 높은 집중도와 적극적인 장시간 반복 운동을 통해 재활 기간을 단축시킨다.
어플라이드VR(AppliedVR)21은 통증 관리를 위한 치료용 VR 개발회사로 진통제 오피오이드(Opioid)를 VR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약물 없는 치료를 위해 어플라이드VR은 40개 이상의 실감콘텐츠를 통해 사용자가 휴식과 쉼을 느끼고 스트레스, 통증,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다. 약물 보완용 솔루션은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고 현재는 퇴역군인, 진료소 환자의 심리치료 등을 위한 웰니스용이 시판되고 있다.
XR헬스(XRHealth)22는 원격 기반의 의료용 VR 플랫폼 개발회사로 재활 운동, 정신 치료, 그룹 상담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이용자는 서비스에 가입하고 전문가 상담을 통해 개인 처방 맞춤형 VR 헤드셋을 배송받아 정기적인 치료를 받는다. 헤드셋을 통해 가이드를 따라서 또는 게임을 통해 운동함으로써 등, 어깨, 목, 팔 등을 이완시켜주고 근력을 강화한다. 편안한 자연환경의 가상공간에서 호흡조절과 명상을 유도함으로써 업무 또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낮춰주고 손동작을 통한 간단한 게임으로 기억력 감퇴를 막아준다. 이용 데이터는 축적되어 스스로의 관리를 유도하고 전문가 상담의 자료로도 활용되어 보다 정확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한다. 고령으로 인한 이동의 어려움 또는 코로나19의 사회적 격리는 우울증과 심리적 불안을 초래하고 있으며 XR헬스는 VR을 통한 원격 그룹 치료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아바타를 통한 가상 만남은 익명성으로 인해 사용자들이 더욱 편안한 상태로 솔직한 경험을 공유하는 효과도 보여준다.
[그림 3] XR 기반의 디지털 치료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주석 : (좌상) 마인드모션프로를 통한 재활, (우상) 어플라이드VR 체험, (하) XR헬스를 활용한 재활 및 그룹 치료
소셜VR을 통한 사회 연결
코로나19로 서로 간의 만남과 이동이 제약되는 환경은 사회적 연결을 끊어 개인들에게 심리적 고립을 안기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SNS와 영상통화에 의지해 사회적 욕구를 채우고자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23 소셜VR은 시선맞춤을 통한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공감과 유대를 느끼게 해주는 공존감으로 더 깊은 관계를 연결한다.
알트스페이스VR(AltspaceVR)24은 이벤트 기반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소셜VR 플랫폼으로 2017년에 MS(Microsoft)에서 인수하였다. 채널을 등록하고 이벤트를 구독함으로써 지속적인 콘텐츠 소비 생태계를 구축하고 친구 관리를 통해 사회망을 연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사회적 연결에 대한 요구가 증가한 최근에 더욱 크게 이루어졌다. 코로나19로 세계적인 봉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수의 국제 행사들이 개최 장소를 가상환경으로 옮기고자 알트스페이스VR에 요청을 했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유효한 사용자에게만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는 티케티드 이벤트(ticketed events), 개인 미팅, 컨퍼런스 기능을 시스템적으로 추가했다.25 그 결과 VR 교육자 써밋(Educators in VR summit)의 개최 장소로 알트스페이스VR을 이용26하였고 SIGGRAPH 2020의 일부 세션에서 참석자들 간의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27하였으며 설치예술 축제 버닝맨(Burning Man)은 장소를 가상공간으로 옮기는 채널로 사용28하였다. 최근 업데이트에서 이용자는 액세서리, 체형, 피부색 등을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아바타를 더욱 섬세하게 구성할 수 있으며 아바타는 발언자에게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입이 움직이는 등 더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되었다.29 이를 통해 개인의 주체성 표현과 집단 문화 형성이 이루어졌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과 시선맞춤을 통해 깊은 연결성이 강화되었다. 연예인이 진행하는 토크쇼, 지식인의 유명 강좌, 일반 사람들의 사적인 만남 등이 공간의 제약없이 알트스페이스VR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페이스북으로 전 세계를 연결하였고 2014년 오큘러스 인수를 통해 이를 VR로 확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커넥트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사용자가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직원의 50%가 원격으로 근무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30 이는 어느 곳에 있더라도 VR 헤드셋만 착용하면 업무가 가능하다는 무한 오피스(infinite office) 영상31에 표현되어 있다. 페이스북은 이를 위해 HW에서는 오큘러스퀘스트2(Oculus Quest 2)를 SW에서는 호라이즌(Horizon)을 선보였다. 독립형 VR 헤드셋인 오큘러스퀘스트2는 이전 모델과 비교해 향상된 성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소비자의 기기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다. 호라이즌은 페이스북에서 개발 중인 소셜VR 플랫폼으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친구들과 함께 구축한 가상세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32 현재는 초대를 통한 일부 사용자에게만 공개되어 있다. 초기 베타 호라이즌 콘텐츠 제작자 나바 버그(Navah Berg)는 지금의 소셜미디어에서 이야기와 콘텐츠 공유를 통해 관계를 구축하듯이 호라이즌에서는 같은 공유 공간에서 함께 만드는 방식으로 의미있는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하였다.33
[그림 4] 소셜VR에서의 사회 연결
※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주석 : (좌) 알트스페이스VR, (우) 호라이즌
시사점
몰입감에 기반한 재활 및 심리 치료, 약물 없는 치료 등에 활용되던 XR 기술이 네트워크와 결합되어 사용자 간의 공존감을 제공해 사회적 연결성을 높이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에 대한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 이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이 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환자의 내원 빈도를 줄이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부산대병원이 KT, 테크빌리지와 함께 VR 기반 원격 재활 훈련 프로그램을 공동개발하고 있다34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는 이를 다소 미흡한 고령층 생활 지원과 공공 심리 치료 분야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첫째, 고령층 생활 지원 측면에서 장기적·지속적인 지원을 시니어 맞춤형으로 제공해야 한다. 단기적이고 체험적인 과제가 아닌 지속 가능한 형태의 서비스 플랫폼 구축이 요구되고 이를 위한 거버넌스와 제도적 측면에서의 고려도 수반되어야 한다. 기기 이용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둘째, 치료 효과 측면에서 입증된 만큼 공공에서도 심리 치료 목적으로 XR 활용을 적극적 검토해야 한다.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심리 치료에 활용하여 효과성과 함께 인력 측면에서의 운영 효율성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의왕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에서도 VR프로그램 개설을 통해 시설 이용자들의 사회적응 훈련과 심리 안정에 XR 기술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35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수명의 연장과 함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치유도 필요한 시점이다.
1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2020), “Social Isolation and Loneliness in Older Adults:Opportunities for the Health Care System”
2 BBC(2020.8.18.), “Depression doulbes during coronavirus pandemic”
3 파이낸셜뉴스(2020.9.21.), “코로나 블루 공화국.. 10명 중 7명은 ‘우울’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