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말, 중소벤처기업부가 ‘제2벤처붐’이 도래했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제1벤처붐인 ’00년 당시 신설법인 수 6만개에서 ’20년 12만개, 벤처투자액은 연간 2조 원에서 4.3조 원으로 늘어나는 등 주요 지표가 2배으로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발표의 골자이다.
[그림] ’98~’20 창업생태계 주요 지표 변화
출처 : 중소기업벤처부 ’21.4.26, ‘한국 창업 생태계의 변화 분석’
이러한 제2벤처붐은 소프트웨어 창업 덕분이다. 디지털 전환의 영향으로, ’17년 이후 AI·빅데이터, 가상융합현실(XR),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등 SW기술 창업의 비중이 확대1되고, 공유경제 활성화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 경제 가속화로 ‘서비스플랫폼-서비스·상품 중개’2 창업이 증가한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림] 참고 : 주요 유망 사업화 모델의 변천
출처 : 중소기업벤처부 ’21.4.26, ‘한국 창업 생태계의 변화 분석’
소프트웨어 창업 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오히려 더 두각을 보였다. 기술창업3으로 분류되는 제조업, 보건복지, 창작·예술·여가 분야 창업은 ’20년에 –4% ~ –10% 가량 감소한 반면, 정보통신 창업은 36,760개로 +21.2%, 전문·과학기술 분야 창업은 54,411개로 +17.2% 증가했다4. 이들 정보통신 분야에서 창업한 36,760개 기업 중 26,322개가 소프트웨어 기업5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문·과학기술 분야에서 창업한 기업도 소프트웨어 기업과 통계 상으로는 별도로 분류되지만 소프트웨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기업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창업 붐 때문인지 업계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개발자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의 제2 벤처붐은 버블 수준인가?
이제 시계를 버블 수준이었던 제1벤처붐 당시로 돌려 보자. 넘치는 투자자금, 말쑥한 안내데스크를 통해 입장하는 양탄자 깔린 사무실, 넘치는 포장마차와 주점이 IT버블 당시의 테헤란밸리 모습이다. 당시에 테헤란밸리가 있었다면 지금은 판교테크노밸리가 대표 선수다.
’00년 버블당시와 현재가 다른 점 첫 번째는 기업의 실적이다. 닷컴 버블 시기에는 뚜렷한 매출이 없었던 기업들도 첨단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기대감으로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위워크6처럼 적자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전보다 창업기업에게 충분한 검증 과정 없이 엄청난 자금을 투자 받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업력과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평가받고 투자하는 추세다. SPRi(2020)7도 ’17년~’19년에 이미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의 민간매출의 성장세가 뚜렷함을 분석한 바 있다.
두 번째는 차이점은 사업모델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한국 창업 생태계의 변화 분석’에 따르면 ’16년까지는 일반소프트웨어와 모바일 앱이 창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17년 이후로는 인공지능·빅데이터 창업 비중이 이들 낡은 모델을 일부 대체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8 버블 당시의 ‘묻지마 투자’ 시대를 넘어, 어느 정도 옥석이 가려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차이점은 소프트웨어 인력의 임금상승이다. 버블 당시에는 벤처투자금을 기업에 유보하거나 운영적자를 감당하는데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현재의 벤처붐에서는 추가성장을 위한 우수 인력의 확보와 유지에 투자금이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매년 SW인력 평균 임금을 공표하고 있는데, ’19~’21년 동안의 평균적인 상승률이 10%에 달하며, 판교 소재 일부기업의 대규모 채용과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한 일괄 연봉인상이 연일 IT분야 톱뉴스로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뒷받침 한다.
제2 벤처붐이 악몽이 되지 않으려면
버블 당시 막대한 인력수요가 있던 시대에 취업하여 현재의 소프트웨어 기업의 중추로 성장한 리더급 개발자 들은 당시의 버블이 지금과 같은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추억하고 있다. 하지만 리더급 개발자를 잇는 허리계층 중간세대 인력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 난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버블 때 처럼 초급인력을 단기 학원에서 양성하여 저렴한 임금으로 산업현장에 대거 투입시키는 방식은 이번 벤처붐을 악몽으로 바꾸는 가장 손쉬운 길이다. 당시에는 기업의 종이 홍보물을 홈페이지로만 바꿀 수 있어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면, 지금 필요한 인력은 AI, VR 등 고급 응용 소프트웨어와 우수한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인력이다. 소수의 고숙련 인력과 단기 양성된 다수의 저숙련 인력이 동시에 시장에 공급되어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된다면 소프트웨어 업종은 바로 다시 3D 업종으로 돌아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소프트웨어 인력을 컴퓨팅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으로 무장한 고급인력 위주로 양성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의 벤처 붐을 악몽으로 바꾸는 또 다른 길은 늘어난 창업기업이 SI기업화 되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2020년에 SI 창업은 1.6%가 감소한 반면, 정보서비스업이 17%, 응용 소프트웨어 창업이 64%9증가하는 등 지표상으로는 바람직하게 나타나고 있다. 높아지는 인건비, 낮아지는 수익성. SI에 의존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의 초대학장인 이민석 교수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SI 영역의 문제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적·창의적 활동으로 보지 않고 노동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활동으로 본다는 것이다.... 노동이 아닌 기술(솔루션)을 파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10
기술을 판다는 것은 지식재산권을 소유하여 동일 또는 유사 SW를 재판매 함으로써 SI방식의 병폐인 과업변경으로 인한 수익성 저하 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SI인력투입 방식이 대신 소프트웨어 구독 방식을 도입하면 발주, 사업관리, 검수로 이어지는 별도의 프로젝트 없이도 고품질·신기술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도입하고 업데이트 받을 수 있게 하므로 수요기업에게 좋거니와 파견근무와 초과근무 압력에 노출되는 개발자의 근로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
다시 돌아온 제2의 벤처붐을 저숙련 노동과 SI의존을 탈피하여 산업구조를 질적으로 고도화하는 기회로 삼자. 단기 교육 대신 초중등 때부터 소프트웨어에 열정있는 학생들을 천천히 기르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합당한 대우를 해주자. 창업 후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SI기업으로는 전환하지 않도록, 전문적인 SaaS 또는 고급 패키지소프트웨어의 수요를 확 늘려 놓자. 그렇게 된다면 만약에 하나, 지금이 혹시 버블일 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는 악몽이 아닌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