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중앙화와 익명의 개인간 거래를 선언한 블록체인이 도입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블록체인의 개념과 기술이 생소한 것 같다. 암호화폐와의 관계 역시 아직 명확하게 분리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이 소개된 것이 비트코인에 의한 것이었고, 따라서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에서 이중 지불(Double Spending)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로 블록체인을 도입한 것일 뿐 모든 암호화폐에 블록체인을 도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혼란이 왜 생기는지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암호화폐 관련 사회적 저항이 생기자 암호화폐를 다루던 사람들이 모두 블록체인을 한다고 입장을 바꾸는 것에는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소셜 방송 미디어에서 금융전문가와 디지털 자산 기술 전문가와의 끝장 토론이 있었다. 그 토론은 암호화폐 토론이었는데, 그 토론에서조차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토론이 진행되지 않아 안타까움을 가지고 지켜본 기억이 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Private Blockchain)과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을 사적 화폐, 공적 화폐 개념으로 연결시키는 듯한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혼란은 암호화폐=블록체인으로 오해하여 발생하는 일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직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혼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적용되어 일반적인 사용이 가능해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블록체인 기술 역시 우리 사회에 적응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기술 자체의 이해를 기반으로 금융 거래에 정상적인 활용이 되는 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기술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기존 사회 시스템과의 충돌을 빚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얼마전 ‘타다’ 사건으로 부각된 기존 택시 운송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 간의 충돌이 그러한 경우이다. 또한 플랫폼 사업을 표명하며 만들어지 많은 IT관련 사업이 초창기에는 각광을 받다가 기존 사회 시스템과 융화를 실행하다 쇠퇴하는 사업들도 있다. 에어비엔비와 같은 숙박 공유 시스템이 각종 범죄와 엮이면서 사업자체가 주춤하는 일이 있었으며 중국의 오포(ofo)와 같은 자전거 공유 플랫폼의 파산도 있었다. 이러한 예들은 새로운 기술과 기존 사회의 융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 준다.
지난 몇 년 간 블록체인 관련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사업이 추진되었고 상당 수의 블록체인 적용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들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 앞서 사업 경험에서 얻은 지식 중 하나는 “이렇게할 거면 블록체인을 왜 쓰나”라는 푸념 섞인 하소연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 목적 개념사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쉽게 일어나는데, 기존 기득권자들을 고려하여 블록체인을 도입하다 보니 블록체인 도입의 원래 목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IT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우리 나라는 이미 많은 정보시스템이 안정화되어 이해 당사자 간의 충돌이나 정보 불일치로 인한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도입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며, 기존 솔루션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 블록체인 도입으로 얻어지는 이점이 크지 않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경우 중간자를 배제시키는 블록체인의 특질을 이용하여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업무 개선을 하여야 블록체인이 주는 장점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중간자의 배제는 기득권자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예들 들어 중고차 거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고 자동차의 이력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여 정보의 신뢰를 주는 경우 중고차 직거래가 가능해지는데, 이는 중고차 중간 거래상들의 역할이 시스템 상에서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어 거래의 신뢰를 보장해 주던 사람들의 생존권을 건드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경우 중간 거래 기득권자들의 큰 반발을 맞이하게 되고 그 결과 원래 사업의 목적과 다른 기존 형태로 돌아가게 되어 “이렇게 할 거면 블록체인을 왜 쓰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블록체인 사업 성과가 다른 사업에 비하여 다소 적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 기인할 것이다.
2. 국내 블록체인 기술 적용 방향과 미래
현재 우리나라의 블록체인 산업 현황 리포트를 보면 디지털 화폐 응용을 거쳐 다양한 유/무형 자산이 공유/유통/거래 플랫폼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외의 경우 블록체인의 주요 응용이 “기록과 확인”으로 보는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우리나라의 경우 블록체인 도입 분야가 주로 금융 관련으로, 핀테크 기술로써의 블록체인이 이용되고 있다.
표1 블록체인의 주요 사용 예 (Primary Use Case for Blockchain)
블록체인의 주요 사용율에 대한 표
기록과 내용 확인 (Records and Verification)
47.3%
지불과 송금 (Payments and Money Transfers
13.6%
플랫폼과 거래 시스템 (Platforms and Market places)
26.4%
운송/배송 관리 (Supply Chain Managements
10.9%
스마트 컨트랙트 (Smart Contracting)
1.8%
출처: Stanford Business,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대표적인 국내 블록체인 사업으로 부산 블록체인 규제 자유 특구 사업이 있다. 여기의 블록체인 서비스 내용을 살펴보아도 1차 4개 사업에, 관광객 숙박 렌트카 등 관광상품 구매를 다루는 사업과 디지털 원장 기반 지역경제 활성화 서비스 사업 2개가 들어 있어 금융 관련이 50%를 차지하고 있고 2차 사업에는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집합투자 및 수익배분 서비스”와 “블록체인 기반 의료 마이데이터 비대면 플랫폼 서비스”가 있는데, 두 사업 모두가 투자 배분/정보 거래를 다루는 금융관련 사업이다. 그만큼 국내 블록체인기술이 금융과 밀접하게 진행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사회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 되기 위해서는 중간자를 배제시켜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업무 개선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블록체인 금융 적용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현재를 살펴보면 그 중간자가 곧잘 기존 금융시스템이 된다.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융시스템은 단순히 중간자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의 신용 시스템과 관계가 있으며 금융시스템(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포함하는)을 이용한 국가 경제 통제의 기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일반 투자자의 보호라는 사회적 요구에서 잘 들어난다.
암호화폐 투자자는 탈 중앙화 개념에 환호하며 개인대 개인(Peer to Peer)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탈 중앙화는 통제 없는 거래를 의미하므로 개념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유에 구속없이 암호화폐를 사용하기를 원한다면 그 화폐 사용으로 벌어지는 투자의 손실에 대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피해 보상을 원하고 법적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 즉, 기존 금융 시스템과 정보 시스템의 개념을 혼용하면서 모순이 발생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탈 중앙화는 정보 시스템 속의 탈 중앙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국한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금융 거래 시스템 속의 금융 소비자 보호가 가능해질 것이며 무분별한 탈 중앙화의 개념 확대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3. 디지털 신뢰 감독의 필요성
블록체인 기술을 설명할 때 가장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일관된(consistence) 자료를 발생 시간순(chronological)으로 분산(Distributed) 중복(Replicated) 저장하여 빠른 원본 확인(Verification)과 신뢰(Trusted)를 제공하는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블록체인의 응용 중에 하나인 암호화폐는 이중 지불 문제를 해결(?)한 금융 정보 거래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정보 토큰(eCash)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정보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을 분리하고 블록체인의 일관된 자료 전달의 결과인 정보 신뢰 활용만을 고려하면 정보 시스템과 금융 시스템의 경계가 확실해진다. 우리 사회가 완전히 디지털화된 금융시스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존 시스템과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디지털 신뢰 시스템을 활용하는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정보 신뢰는 모든 블록체인 응용 시스템이 제공해야 할 기본 사항이며 이는 안정적인 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에서 얻어질 수 있다. 이미 다수의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볼 수 있듯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운영은 사적 조직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더리움의 하드포크 사건으로 블록체인 네트워크 역시 사람들이 운영하는 정보망이며 이들의 결정에 따라 정보의 일관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디지털 정보 신뢰를 활용하게 될 여러 시스템을 위해서 블록체인 네트워크 운영 감독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즉,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감독할 수 있는 기관 또는 조직이 필요하다. 디지털 정보 신뢰를 다룰 수 있는 현재의 가장 유사한 조직은 금융감독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있다.
먼저 금융감독원을 살펴보면,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등의 수행을 통하여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소비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1.금융회사가 보유한 자산의 건전성 확립
2.공정한 금융시장 질서 확립
3.금융소비자의 보호
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금융 정보를 디지털 신뢰정보로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금융 감독원의 기능에 디지털 정보 신뢰를 다룰 수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 신뢰를 다루기 위해서는 정보 시스템을 다루어야 하는데 이는 금융 전문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 바람직한 제안이 되기 어렵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설립의 목적은 “정보통신망의 고도화와 안전한 이용촉진 및 방송 통신과 관련한 국제협력, 국외 진출 지원의 효율적 추진”이라 되어 있으며 이를 정리해 보면(Wikipedia 참조)
1.사이버침해사고 대응 예방 및 민관 협력체계 운영
2.미래 인터넷 정보보호 산업의 성장기반 조성
3.국제협력 및 정보 보호 산업 해외 진출 지원
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미래 인터넷기술로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생각해보면, 정보 보호와 사이버 침해사고 대응 등 필요한 기술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적합해 보이지만 디지털 신뢰를 감독하기 위한 각종 정보 분석과 거래 이상 탐지 등의 기능을 수행해서 블록체인 네트워크 건전성 확립과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정보 소비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부여하기에는 현재의 역할과 다소 거리가 있다. 따라서 디지털 정보 신뢰를 다루는 전문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 신뢰 전문 기관은 정보 신뢰를 감독하는 기관으로 정보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감독하여야 한다. 감독한 정보가 금융 정보라면 금융감독원에 통보를 하여 금융 건전성 감독을 받아야 하며 사이버 침해 관련 정보라면 한국 인터넷 진흥원과 협조하여 진흥원의 정보 보호를 받게 되어야한다. 디지털 신뢰 감독 기관의 주요 기능은
1.블록체인 노드 감독
2.디지털 신뢰 정보 거래 감독
3.디지털 정보 부정 사용 대응
등을 가져야한다. 특히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이 공공 인프라로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시범운영을 개인 사기업에서 맡게 되어, 앞으로 CBDC와 같은 공공 사업 운영을 사기업이 맡게 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공공 인프라의 사유화 가능성으로 인한, 디지털 정보 신뢰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디지털 정보 신뢰 감독 기관에서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노드만 관리하여도 거래 내역 분석과 이상 상황 검출이 가능하므로, 공공 정보 거래 내역만 모니터링하고 의심 상황에 대한 통보와 원인 보고를 받는 것으로도 상당한 신뢰를 보장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단 기초가 잡히면 그 활용성은 매우 높다.
4. 공공 신뢰 인프라의 활용
금융 응용 외에도 물류 유통 분야는 공공 디지털 신뢰 인프라의 필요성을 강하게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니지만 이번 코로나 백신의 콜드 체인 유지 정보 공개에서도 정보 신뢰 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공공 인프라로서의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사회 신뢰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가 알아야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공재의 유통과 활용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하여 보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분야만을 보아도 개발자 중복 참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사업 수주 시, 투입 인력 정보를(물론 익명화 기술이 적용되어 사용 가능하다) 공공 신뢰 인프라를 활용하여 공유하면 다른 사업에 중복 투입되는 지가 확인 가능하며 개발자 등급 확인까지도 가능하다. 공공 신뢰 인프라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와 불공정성 문제 모두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신뢰는 책임질 수 있는 기관의 철저한 감독을 통해 보호될 것이다. 감독은 개입과는 다른 것이다. 감독으로 인한 자율성과 독립성 제한 문제는 오랜 논의가 있어왔다. 공공 신뢰 인프라를 이용한다면 사회적 이득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정보 신뢰 감독 기관의 가치는 우리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는 미래 과제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