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미군의 철수 결정으로 기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순식간에 붕괴되고 이슬람 근본 세력인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수도 카불에 사는 10대 소녀는 SNS를 통해 탈레반의 여성탄압정책에 대한 공포를 실시간으로 알려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세계적 아이돌그룹 BTS가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FORTNITE)라는 게임플랫폼에 최초 공개했다. 가상세계 속 무대는 실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으며 이용자들은 스크린에서 나오는 뮤직비디오에 맞춰 자신의 부캐(캐릭터)로 안무를 따라 췄다. 바야흐로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로치 감독의 영화 는 아날로그 시대의 맥가이버 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가 디지털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되고 자존감을 상실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키오스크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 코로나19 백신 예약을 포기한 독거노인 등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수많은 다니엘 블레이크가 있다.
국내 빅테크의 간판으로 꼽히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독점문제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두 기업은 전 국민이 이용자라는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과도한 광고비를 요구하는 등 중소사업자의 절대군주로 군림하고 있다. 배달의민족 역시 편리하지만, 배달비가 상승하면서 자영 업자와 소비자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 쿠팡은 거대 플랫폼을 앞세워 대기업에도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만큼 큰 힘을 휘두르고 있다. 빅테크가 주는 편의가 커짐과 동시에, 독점의 폐해 또한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은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일상생활의 면들이다. 한쪽은 디지털 문명을 제대로 향유하고 있고, 한쪽은 인간을 돕는 기술로 인해 오히려 소외되고 피해를 받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 디지털이 스며들고, 우리 주변에는 무인화 기기들이 들어오고 있다. 과거 접근성 격차의 우려가 있었던 기술들은 점차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편의성을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은 디지털 불평등 문제를 안고 있다. 빠르게 디지털화하는 사회, 단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조작할 수 있는 수준의 접근성 격차가 아니라, 디지털화된 정보를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용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정보 접근과 활용에서의 차이는 결국 경제, 사회, 문화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교육과 직업의 기회에 대한 차별로도 연결된다. 이런 디지털 불평등 문제는 특정 개인, 하나의 계층, 한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여주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디지털 사회는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 즉 누구나 원하는 만큼 혜택을 누리고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는가? 디지털 기술의 진보가 모든 사람, 모든 일자리에 좀 더 중립적일 수는 없는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불평등 현상의 심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나갈 것인가? 보다 나은 디지토피아(Digitopia)를 만들어 나가기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기술진보와 불평등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의 저서『21세기 자본』(2013)이 출간되고 빈곤과 복지, 소득불평등의 문제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를 많이 수행한 앵거스 디턴(Angus Stewart Deaton) 교수가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후, 소득불평등에 관한 대중의 관심과 걱정이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론 많은 신흥시장국에서 최근들어 소득격차가 빠르게 확대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득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혁명 이후 소득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크게 기술(Technology), 세계화(Openness), 정책(Policy, 또는 제도)을 든다. 영어 앞 글자를 따서 TOP이라고 부르는 이 세 가지 요인은 서로 연관성을 맺으며 변화해 왔다.
우선 근로 및 자산세제, 자본집중도나 노동과 자본의 소득배분 비율, 최저임금제와 실업 보험 등 고용 관련 제도,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정책 등 제도적인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이러한 제도적 요인들이 특정 국가나 특정 시기의 소득불평등 변화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편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는 그의 저서『엘리트 세습(The Meritocracy Trap)』(2020)에서 불평등의 주요 원인을 능력주의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내 능력만큼의 보상’이라는 능력주의는 겉으로는 정당해 보여서 우리 시대의 기본 상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대 미국 사회에서는 고학력 엘리트의 노동생산력 독점이 빈부격차의 핵심 요인이다. 엘리트 부모들은 자녀 1인당 교육비용으로 1,0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최고 수준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며 자녀들을 고도의 능력을 보유한 초고도 엘리트층으로 키워낸다. 그리고 인공지능 등 기술혁신을 통해 중간숙련 노동자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직업구조를 양극화한다. 그 결과 중산층의 일자리는 없어지고 고학력 엘리트가 업무를 독점해 엄청난 고임금을 받게 되는 구조가 된다.
거꾸로 가는 능력주의 혁명으로 억압·박탈·착취 없이도 부모의 경제력과 학벌이 인간자본으로 세습됨에 따라, 신분과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현대판 신분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마코비츠의 진단이다. 자수성가의 비중이 높은 미국 사회를 분석한 내용이지만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적인 소득불평등 확대의 최대 요인으로 기술진보와 세계화를 제시하고 있다. 기술진보와 세계화가 특정 국가나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소득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는 기술진보가 소득불평등의 주범으로 지적받고 있다. IMF(2014)는 선진국의 소득불평등이 커지는 이유를 기술진보가 50%, 세계화가 25%, 나머지가 25%로 추정한 바 있다.
기술이 어떤 일자리 또는 업무에 중립적 위치를 가지는가는 오랜 논란거리였다. 우선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기술진보가 모든 노동자에게 똑같이 이롭지는 않기 때문에 혜택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 1차 산업혁명 기간 중 영국에서의 기술진보는 비숙련 편향적이었다. 밀려드는 기계에 일자리를 위협받은 대상은 숙련노동자였다. 반면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기술진보는 숙련 편향적이었다. 컴퓨터를 다루고 생산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고학력 전문인력의 수요를 훨씬 크게 늘렸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범용기술이 인터넷, 인공지능·빅데이터로 변화함에 따라 노동시장을 ‘일자리 관점’이 아닌 ‘특정 업무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있었다. 어떤 일자리든 업무종사자들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인간의 교육 수준(숙련 수준)보다는 특정 업무가 루틴 업무인지 여부가 기술진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모라벡의 역설’1이 적용되는 저숙련 노동자의 비정형 육체노동과 고숙련 노동자의 인지노동은 증가한 반면, 중간숙련 노동자의 정형화되고 집약적인 노동은 급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디지털 사회 불평등의 특징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발표한「2020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장애인·농어민·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2020년 일반국민대비 정보화 수준은 72.7%로 전년(69.9%) 대비 2.8%p 개선되어 디지털 정보격차가 꾸준히 완화되는 추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은 단순한 정보격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 접근과 활용에서의 차이가 초래하는 후폭풍에 더욱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드러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직업·가정·소비까지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격차 현상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상위계층과 중산층은하나로 통합된 사회에서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 부유층과 나머지 사람들은 직장, 교육, 결혼, 소비 그리고 문화생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분리되어가고 있다. 형식적으로만 교류하면서 서로에게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영위한다. 고숙련 근로자와 미숙련 근로자가 일하는 기업이 분리되어 있다. 소매업은 미숙련 일자리를, 금융업은 고숙련 직업을 상징한다. 엘리트들은 끼리끼리 결혼하고 자녀교육에 한층 더 능숙하고 그들만의 소비·문화생활을 영위한다.
둘째, 신카스트제도의 전조현상이다. 오늘날 청년세대의 불평등 문제는 단순히 그들의 삶이 평등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고 계층의 재생산이라는 사실에 있다. 20대가 취업과 함께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어떤 일자리를 얻느냐는 미래소득, 자산, 결혼 여부, 사회적·문화적 경험 등 생애주기 전반을 결정한다. 그 첫 번째 관문이 명문대 진학이다.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자녀의 중학교 성적에서부터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좋은 대학이라는 지위가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교육과 일자리를 연계고리로 해서 이제 ‘정상가족’은 하나의 특권이 되었으며 정상가족의 형성에는 번듯한 일자리와 부모의 지원이 필수가 되고 있다.
셋째, 절대 빈곤보다는 부의 집중이 강조되는 상위 불평등 시대이다. 인류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불평등 문제는 중산층과 빈곤층의 격차와 관련된 하위 불평등(절대 결핍)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부유층과 중산층의 격차와 관련된 상위 불평등(부의 집중)이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동력이다. 물론 절대빈곤은 남아 있고 빈곤 완화는 도덕적인 우선과제로 남아 있지만, 이제 저소득층의 비참함보다는 중산층의 좌절이 부각되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아래 그림의 브랑크 밀라노비치의 코끼리곡선이다.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전세계 소득수준별 1인당 실질가계소득의 상대적 증가율을 보면, 세계화와 디지털 혁신의 수혜자인 글로벌 신흥 중산층(A)과 최상위 1%(C)의 실질소득은 크게 증가한 반면, 주요 선진국들의 중하위층(B)은 가장 낮은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넷째, 인공지능 시대 미국과 중국의 양극화 현상이다. 인공지능은 일반 범용기술(GPI)로 디지털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서 모든 인류의 미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공개 생태계로 간주하지만 사실상 소수의 인공지능족에게 빠르게 힘이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미래는 미국과 중국에 의해 설계되고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미래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휴머니티와는 거리가 먼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미국 몇 개 주요 대학 출신의 소수 백인 남성 인공지능족들에 의해 인공지능의 미래가 그려지고 있으며 이들은 윤리보다 기술에 치우쳐진 교육을 받고 있다(이는 구글의 여성과 흑인에 대한 폄하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미 정부는 인공지능이나 우리들의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 전략이 부재하고 G-Mafia(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IBM)로 통칭되는 관련 기업들은 단기적 상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BAT는 정부의 의지에 굴종하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은 인공지능을 중국 굴기의 수단으로 모든 정보의 통제를 통한 전제적 통치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기술독재주의는 인공지능 혁명이 민주주의와 독재 간의 상대적 효율관계까지 변화시켜 20세기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반문을 제기하고 과학기술의 윤리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명사적인 우려를 유발하고 있다.
디지토피아를 향한 염원
미래 디지털 사회가 번영의 디지토피아가 될 것인가, 혼돈의 아마겟돈이 될 것인가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능력과 사회조절능력의 조화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 측면에서 디지토피아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루소가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이야기했듯이 자연상태가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회에서 평등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평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평등 자체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해서라기보다는 그런 노력이 타인에 대한 존중, 공정성 등 다른 가치의 확산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디지토피아를 향한 여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는 2020년 6월 이후 ‘소외 없는 디지털 세상’을 비전으로 설정하고「디지털포용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전 국민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우리나라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을 조성하는 등 디지털 환경 전반을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디지털 격차해소 정책을 추진하여 디지털 대전환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평등 심화를 예방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취약계층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의 불평등 현상이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교육과 일자리 측면의 근본적인 개혁작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 능력 배양의 기회가 보다 골고루 보장될 수 있도록 공공보육이나 공교육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고숙련 근로 계층에 집중되는 부가가치 활동이 중간숙련의 중산층에게 분산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려는 개인 각자의 자조적인 노력도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우리 청년세대가 미래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디지털 혁신역량을 스스로 키워나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시니어들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 디지털 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인생 후반기의 삶이 더 풍성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은퇴커뮤니티에서 고해상도 가상현실 헤드셋을 사용해 노인들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방문하는 등 가상여행을 즐기는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디지토피아를 위해서는 부유한 엘리트 계층의 겸손과 사회적 책임의식(Richesse Oblige)도 중요하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거버그는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 아기에게 공개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서 저거버그는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다음 세대 모든 어린이의 평등을 촉진하는 일’에 페이스북으로 얻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최고 부유층 사회에서 그의 이런 기부행위는 특이하거나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근자 우리나라의 부유층에서도 이런 사례가 속출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노력에 우리 사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AMY WEBB은 그녀의 저서『The Big Nine』(2019)에서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용기와 책임의식이 중요하며 큰 행동보다는 자그마한 행동이 연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디지털 사회의 미래 주인공은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가 미래사회의 생활방식은 물론 사고방식까지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청년세대들도 남이 만들어 놓은 제품을 사서 잘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디지토피아를 만들어 나간다는 패기와 열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1 기계가 틀에 박힌 업무를 손쉽게 수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게 어렵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에게 쉽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