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미국 인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의 제목으로 선거 전략 프레임 이론을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코끼리(미국 공화당 상징)를 떠올리며, 무의식적으로 코끼리의 틀에갇히게 된다.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를 얘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의 모순, 구조적 문제점, 일부 영역에서 가혹한 근무 환경 등을 얘기하면서 소위 말하는 ‘닭집 수렴 공식'을 언급한다. 2011년 한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해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쓴 웃음을 주었던 일인데, 이후 이 이야기는 개발자의 처우 개선이나 불확실한 미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모든 개발자의 암울한 저주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미래는 치킨집 사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문제점을 얘기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그 풍자는 우리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자화상을 나타내는 프레임이 되고 말았다. 과연 한국의 소프트웨어 인력에 대한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공대에서 제대로 컴퓨터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받는 처우가 다른 전공자들보다 못하고 3D 업종으로 아이들에게 권할 수 없는 분야일까?
내 생각은 다르다. 많은 전공자가 대학 졸업생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 인터넷 기업, 외국계 소프트웨어 기업에 가며, 창업자들 중에서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은 매우 경쟁력 있는 기술로 국내외 시장에서 눈에 띄는 도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전자 회사 뿐만 아니라 요즘은 자동차, 유통, 금융등에서도 고급 소프트웨어 인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과거 10년 동안 사업을 시작해서 국내 최고 기업의 수준으로 성장한 회사는 대부분 컴퓨터 전공자가 설립한 기술 기업이다. 또 다른 기업은 그런 기업에서 나와 다시 창업한 기업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소프트웨어만 얘기하면 ‘문제점’ ‘정부의 관심과 지원’ ‘사회적 몰이해’를 얘기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자꾸 ‘코끼리’를 떠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느 분야나 문제점 있는 세부 영역, 원하는 만큼 인정 받지 못한 인력, 불투명한 미래, 비합리적 관행 때문에 고민을 토로한다. 그러나 전체 그룹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것 보다는 자기 그룹에 좀 더 좋은 인력이 들어와 전체 경쟁력을 올리게 노력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나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이제 부정적 사고와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태도보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통해 소프트웨어 인력과 산업이 갖고 있는 역할을 돋보이게 하는 이미지 빌딩을 했으면 한다.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 사회 저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며, 미래 산업의 핵심이 왜 소프트웨어가 되는 것인지, 얼마나 좋은 인재들이 이 영역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와 생각이 얼마나 사회의 진보와 생활의 질을 올릴 것인 가를 알려야 할 것이다. 이 분야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해야 좋은 인력이 들어오고, 좋은 인력에 의해 선순환으로 문제들이 사라지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SI 분야의 구조적 문제와 잘못된 관행은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런 얘기만이 우리 산업에서 나오게 되면 SI가 소프트웨어 전 분야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고도의 노력과 창조적 활동이 과소 평가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얘기하는 최고의 검색 서비스 엔진이나 SNS, 모바일 혁명, 그리고 도래하는 사물 인터넷은 SI를 통해서 이루어내는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의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 위원회(PCAST)의 리포트를 보면 이런 소프트웨어 기술이 미국의 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늘 강조하고 있다. 소셜컴퓨팅, 빅데이터, 사이버 물리 시스템, 프라이버시 기술 등 향후 미래 핵심 분야를 제안하면서 각 연구 기관이 이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할 것인 가를 논한다. 반면, 우리 정부의 정책 보고서를 보면 늘 선진국 대비 우리가 부족한 것, 정부가 나서서 도와줄 것, 규제와 문제점 해결 중심이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산업경쟁력이 얼마나 향상될 것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 분야가 무엇인지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지티브 전략이다. 한국의 경쟁력에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프트웨어 핵심 인력이 이런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얼마나 멋진 성공 사례를 만들고 있는지를 우리 사회에게 알리는 캠페인을 관련 협회나 기관, 연구 및 정책 집단에서 했으면 한다. > 현재 한 개발자 중심 잡지에서 보여주는 존경할 만한 개발자 또는 개발 집단을 계속 인터뷰하고 발굴하는 노력이 눈에 띄는 이유가 그것이다. 잡지 표지에 개발자를 내세운다는 것이 바로 인식의 전환인 것이다. 모든 대기업에서 신제품 발표에 더 이상 홍보 인력이나 모델이 아닌 개발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훌륭한 서비스와 솔루션을 개발 책임자가 소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제점과 해소 방안이 아니라 적극적 홍보, 이미지 전환을 위한 노력, 사회의 영웅으로서 소프트웨어 인력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일부 공영 미디어에서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특집 다큐를 보이는데 비해, 협회와 기관에서는 늘 문제점 토의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악순환은 선순환이 주도하는 사회가 되어야 줄어들 수 있다. 더 많은 양질의 사례가 알려지고,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악순환이 전체 분야를 대표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개발자들의 인식과 행동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모여서 힘을 발휘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명예를 얻어야 한다. 더이상 자조적인 목소리로는 사회가 변화할 수 없다. 개발자 그룹이 자긍심을 가져야 다른 그룹이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상황이 이루어진다. ‘코끼리’를 얘기하지 말고 영웅과 신화를 얘기하는 소프트웨어 산업계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