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조달청과 함께 공공 소프트웨어(SW) 분할발주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 늦었지만 아주 잘한 일이다. 그렇게도 염원하던 SW 제값 받기의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SW 제값 받기는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SW 업계에서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SW 산업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고들 한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200여개의 SW 관련 법률·규정·가이드라인을 제·개정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지만 SW 제값 받기 문제는 변한 게 없다. 해묵은 잘못된 SW 사업 수·발주 관행이 병이 돼 골수까지 차 들어 환자는 죽어가고 있는데 오늘도 예산, 인력부족, 시기상조, 한국적 현실 등 이유를 내세우면서 치료에는 손을 놓았다. 모든 문제는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SW 제값 받기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는 SW가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채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정의해야 제값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해답이 있다.
거래 대상 SW를 발주자와 개발자가 상호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시화하고 계량화해야 한다. SW는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는 기술이나 능력이 없는 것이다. 건축에서처럼 SW 시스템이 미래 청사진이나 모델하우스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에서 통용되는 SW 가시화와 정량화 기법을 도입, 활용해야 한다. 사업범위를 가시화, 정량화할수 없으면 돈이 얼마나 들고 기간이 얼마나 필요한 사업인지 가늠할 수 없다. 지금까지 사업범위를 ‘발주자가 그만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로 하는 이해할 수 없는 SW 사업관리를 해 왔다. SW 개발자를 피눈물 나게 만든 원인이다.
피눈물을 닦아주고 SW 산업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해 SW 사업을 지금까지 애매한 요구사항을 통째로 발주했던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설계(요구 정의·기본설계)와 개발(상세설계·코딩·테스트)로 분할해 발주해야 한다.
행정소요일수가 다소 늘어날 수도 있지만 가시화, 계량화된 요구사항이 나오면 개발 일정은 대폭 단축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소요일수는 줄어든다. SW 사업에 대기업, 중소기업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설계는 건축사와 같은 전문(소프트웨어) 국가자격을 가진 기술사에게 맡기고 개발은 개발 전문가가 담당하면 소프트웨어 기술자도 살고 시스템통합(SI)기업도 산다.
설계에 나오는 요구정의서나 외부설계서에 기술사가 확인(서명)하지 않으면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설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책임을 지게 한다. 이렇게 하면 고급인력이 SW 산업으로 몰려든다. 대학의 SW 관련 학과에 우수한 학생이 몰려올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에 대응하기 위해 하루 빨리 글로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SW 전문가가 연봉과 직업 만족도에서 최상위에 랭크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SW 산업도 좁은 한국 시장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에서 진정한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해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선진국의 우수한 점을 인식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환경에선 건전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없다. 오늘부터 당장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SW 산업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이 똑바로 선 양심 있는 전문가가 대우받고 존경받는 살만한 나라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