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시장이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 ‘씨앗’을 심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목’이 되다
고급 개발 인력 부족과
소프트웨어 가격 책정 문제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 이슈
“훌륭한 경영자는 본능적으로 미래를 의식한다. 그리고 그 미래는 사람에 있다는 것에 다다른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그는 국내 벤처기업 1호 ‘비트컴퓨터’로 시작해 지난 33년간 치열한 사업가의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살아있는 벤처 신화의 이면에는 한 가지 주목할만한 특징이 있다. 1990년 소프트웨어 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비트스쿨을 설립하고, 2000년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기 프로젝트’로 장학생을 지원하는 조현정재단을 설립하였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으로서 활동하는 ‘슈퍼커넥터’라는 점이다. 산업과 세대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이미 그 자체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을 먼저 보고 제품을 만들다.

대학교 3학년 때인 1983년도에 국내 최초의 소프트웨어 패키지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에는 ‘벤처’, ‘소프트웨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던 때였다. 사람들은 하드웨어를 파는 회사에다가 어떤 업무 처리를 위해 컴퓨터를 산다고 하면서 특정 기능을 주문하면서도 눈에 안 보이는 소프트웨어에는 돈을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자동차와 운전기사에 비유해 설득했다. “자동차(하드웨어)를 샀으니, 직접 운전(프로그래밍)하거나 운전기사(소프트웨어)를 고용하라.”라고 말이다. 이걸 가장 쉽게 설득할 수 있는 대상이 결국 엘리트층이더라. 그리고 구매력이 있어야 했다. 의사는 엘리트층이면서도 구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의사들에게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 조사한 후 의료보험청구 프로그램을 출시하였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팔렸다. 출시한 해에 5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성공을 거두고, 다음 해에는 1억 7,000만 원,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23억여 원의 수익을 올렸다. 우리 프로그램을 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의료보험 환자들의 한 달 치 검사내용과 처방전을 합산하여 청구하려면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모여 매일 하루 3시간 이상씩 이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의사 혼자서 3~4일 만에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하루 진료를 마친 후에도 친구를 만나러 가지 못하던 의료진 입장에서는 달가운 프로그램이었다. 대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부침이 심하다.”고 하는데, 나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 IMF 외환위기 시절에도 비트컴퓨터의 매출은 신장되었고, 현재의 회사 빌딩도 그때 매입했다. 요즘도 불경기라지만 올해 상반기 비트컴퓨터의 성장률은 20.1%를 기록했다.

국내 ‘C 언어’ 대중화를 이끈 비트스쿨, 학생들의 인생을 바꾼 조현정재단

처음부터 돈을 잘 버니 그다음 생각은 자연스럽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닿았다. 다른 기업들의 사례처럼 ‘연말에 수익의 10% 혹은 매출의 1%를 기부해볼까?’, ‘연탄 배달을 해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더 멋지고 의미있는 공헌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절실한 게 뭘까?’ 고민한 끝에 고급 개발자를 키워줘야겠다고 결심했다. 1989년 당시에 정부 교육기관과 프로그래밍 학원은 전부 ‘코볼(COBOL)’을 가르치고 있었다. ‘C 언어’로 개발할 줄 아는 사람은 전국에 100명도 되지 않았다. 나는 C 언어를 대중화해야 국내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몇 단계 올라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절대평가 방식으로 깐깐하게 교육생을 선발하고 그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했다. 교육생들이 수행한 프로그래밍 과제는 매달 ‘비트 프로젝트’라는 책으로 발간하면서 프로그래밍 기법과 소스 코드까지 공개하였다. 그리고 지난달에 가르친 건 이번 달에 가르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내가 기대한 건 창조와 창의적 인재였다. 현재 8,700명의 비트스쿨 출신이 사회 곳곳에서 역량을 펼치고 있다. 비트컴퓨터가 코스닥에 상장된 후에는 20억 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조현정재단을 만들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전국의 학생들을 선발하여 지원한다. 현재까지 17기 총 250명의 장학생을 배출하면서 단순히 장학금을 수여하고 마는 게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도 멘토링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를 위해 만든 재단이므로 전 기수의 장학생이 매년 열리는 전체 모임에 참석하게끔 한다. 장학생들 간의 네트워크는 실제로 학생들의 인생을 바꾸고 있다. 부산시 기장 어촌 마을에서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던 한 학생이 있었다.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재단 모임에 참석한 한 선배를 만난 후 외국어 학원도 없던 마을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더니 토익 만점을 받더라.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어학연수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차례대로 합격하였고, 마침내 OECD 대표부에 1년간 인턴으로 근무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작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석사 학위를 받으러 프랑스로 떠났다. 만일 그 학생이 조현정재단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시야를 넓혀준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헬스케어산업, 틈새 모색이 중요한 시기

헬스케어산업과 관련해서는 ‘데이터 주권’ 이야기 등 여러 이슈가 있다. 국내에서는 병원 데이터를 외부로 가지고 나오지 못하게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데이터의 효용성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로우 데이터가 많아야 하는데 특정 대학이나 병원만의 데이터를 내부적으로 공유한들 소용이 없다. 의료 데이터만 주권을 주장할 수 없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해서도 다른 대안들이 있으므로 이 규제는 클라우드 형식이든 뭐든 간에 언젠가는 개방될 거라고 본다. 그리고 이게 풀리는 순간 해외 분석기법과 툴이 들어와서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초기에는 로우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에 거금을 쓸 테니 병원들도 외국계 기업에 데이터를 줄 거라고 본다. 그 데이터 비즈니스에 비트컴퓨터가 뛰어들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 중이다. 과연 데이터 분석에 있어 이미 사업화할 만큼 경험을 쌓은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지금으로써는 그들과의 정면대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폐쇄적인 상태에서 연습도 못 하고 있는 반면, 5년 후에 해외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규모상으로 그들이 노릴 수 없는 분야,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할 수 있는 사업모델로 틈새를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기이다.

소프트웨어 정책 조언

소프트웨어 기업 전체 매출 43조 3천억 원, 상장 기업 65개. 이런 통계를 보면 우리 소프트웨어 업계가 가야 할 길이 멀다. 다만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규모에 비해서 인력이 많다는 이야기는 동의할 수 없다. 저급 인력이 많은 건 맞지만 결국 고급 인력이 모자라는 문제, 제값을 받지 못하는 소프트웨어 가격 책정 문제가 핵심이다. 우선 ‘소프트웨어 인력 30만 양병론’을 이야기 해 온지가 10년이 넘었다. 참고로 30만이라고 함은 5년 내 30만을 일컫는다. 우리가 소프트웨어 직을 소위 ‘3D’, ‘4D’ 직업이라며 스스로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어렵고, 힘들고, 보수가 적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실제로 개발자의 보수는 의사와 금융인 다음으로 높다. 성공하면 거부가 되는 것도 소프트웨어 산업 분야에서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일정 궤도에 오르면 어렵지 않다. 학생일 때 일정 실력을 닦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어렵다는 건 일차적으로 실력이 안 돼서 그러는 것이다. 제시간에 업무를 끝내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프트웨어의 가치 평가 방법이 잘못되었다. 해마다 등급별 금액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 있긴 하나, 소프트웨어 가치 평가는 투입원가 기준이 아닌 절대가치 평가로 해야 한다. 나는 이를 ‘사용가치의 대가’라 표현한다. 개발의 대가가 아니라 사용자가 얻을 가치에 대한 대가로 인식되어야 한다. 내가 처음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당시 의사가 가격을 묻길래 속으로 ‘10만 원을 달라고 할까, 20만 원을 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당시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이 50만 원이었으므로 사실 학생 신분이었던 내게는 10만 원도 큰돈이었다. 그런데 내가 쭈뼛거리고 있으니 150만 원이 들어있는 현금 봉투를 주더라. 두 번째 병원에서도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전 거래처에 물어 똑같은 금액을 내더라. 그다음부터는 나 스스로 150만 원이라고 밝혔다. 지금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가격을 책정하듯이 대학생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라는 이유로 가치를 낮게 매겨졌다면 비트컴퓨터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소프트웨어 벤처 기업을 만들 수 없다. 소프트웨어 제값 주기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조현정 회장은 10년 주기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왔다고 한다. 20대 때 ‘내가 몸담고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었고, 30대 때에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목표였다. 그는 특유의 몰입력과 바지런함으로 목표한 바를 이뤘다. 40대 이후부터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만족시키고, 좋은 회사를 만들어서 직원을 만족시키고, 사회공헌 활동으로 상생하겠다는 3가지 초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초심을 잃기 쉬운 게 인지상정이건만 그는 어떻게 흔들림 없이 걸어올 수 있었을까. “사막 속에 혼자 살아남아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밀림 속의 한 그루가 훨씬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철학은 “이타심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속에서 제 역할을 하듯이,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조성이 결국 우리 모두를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인터뷰 : 안경은 객원기자, 공영일 선임연구원

키워드 월간SW중심사회 201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