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 IoT) 관련 플랫폼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얼마 전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박람회인 CES(2016)에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과 LG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IoT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삼성의 기조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올해 삼성은 IoT플랫폼의 파트너를 마이크로소프트(MS)로 결정하였다. 삼성 모바일 기기가 과거 안드로이드 기반의 구글과 지속적으로 협력한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가 작년 CES(2015)에서 “IoT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려면 서로 다른 기기와 플랫폼 간의 장벽이 없어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IoT 플랫폼의 개방을 강조하였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구글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안드로이드 플랫폼보다는 새로운 플랫폼을 형성하려 하는 삼성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와는 반대로, LG는 구글을 주요 파트너로 발표하며 구글의 IoT 플랫폼인 ‘브릴로’ 사용 계획을 공식화하였다. 특히 LG는 폭스바겐 등 다양한 산업의 주요 기업들과 협력을 꾀하면서 IoT 플랫폼의 확산 및 개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IoT 플랫폼 환경 조성을 위한 스마트홈 허브기기인 ‘스마트씽큐 허브’의 가격을 소비자 부담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발표 하였다. 결국, LG는 IoT플랫폼 자체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플랫폼 간의 개방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과거 가장 유명한 플랫폼 전쟁은 컴퓨터 운영체제인 MS의 윈도우와 애플의 OS 전쟁이었다. MS의 경우, 윈도우에 사용되는 어플리케이션 개발도구를 무료로 공개하며, 전형적인 개방형 플랫폼 전략을 펼쳤다. 반면 애플은 어플리케이션 개발도구를 상당한 비용으로 판매하여 폐쇄형 플랫폼 전략을 펼쳤었다. 결과는 윈도우의 압승이었다. 무료 개발 도구 배포로 인해 낮아진 진입장벽은 많은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이끌어 냈고, 이렇게 확보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으로 인해 사용자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MS는 한 쪽의 사용자들(어플리케이션개발자)이 증가하면 다른 쪽의 사용자들(윈도우 소비자)도 따라서 증가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효과를 훌륭히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굳이 복잡한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어플리케이션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애플 OS에 비해 압도적인 어플리케이션 수로 무장한 윈도우가 소비자의 선택을 더 받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MS와 애플의 케이스처럼, 플랫폼 전략에서 필수적인 것은 네트워크 효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네트워크효과는 가격 전략에서 결정된다. 어느 쪽의 사용자들에게 보조금(subsidy)를 제공하여 네트효과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유인된 다른 쪽의 사용자들에게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플랫폼 전략의 핵심이다.
이번 CES(2016)에서 삼성과 LG의 행보를 보면 삼성보다는 LG가 이러한 플랫폼 전략의 기본에 더욱 충실했다는 것이 극명히 드러난다. 또한, 이제는 가전, 자동차 등 전통적인 산업간 경계가 무의미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고 IT전문가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는 시대이다. ‘스마트씽큐 허브’의 가격을 낮추어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다양한 사업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IoT플랫폼을 확산하려는 LG의 전략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한국 기업인 LG가 폭스바겐과 협력하여 산업 간의 경계를 넘어 IoT 플랫폼을 확산하려는 전략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가 된다.
반면, 삼성과 구글 간의 때늦은 플랫폼 주도권 싸움은 작년 CES의 삼성의 전략과 상충되어서 조금 의아하다. 삼성이 가전 및 스마트폰 등 전통적인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것에 반해, 소프트웨어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어가는 현실과 저임금 중심의 중국 시장 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여 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짧은 준비 기간 안에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따라잡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로 보인다. 삼성이 과거 타이젠의 실패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일 플랫폼의 주도권 쟁탈보다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고 플랫폼 간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이제는 개방과 공유가 새로운 먹거리를 가져다주는 시대이다.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플랫폼 간의 경계도 무의미해졌다. 제조업에 기반을 두어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은 더 이상 IT기업의 혁신을 대변하는 원칙이 아니다. 더욱이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을 단행한 기업만이 살아남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주름잡던 기업 야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검색 기업인 구글은 2009년부터 무인자동차를 시험하고 있다. 어제의 인터넷 최고 결제 서비스(Paypal) CEO가 오늘은 자
동차의 혁신을 선도하는 전기 자동차회사(Tesla)를 설립하고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하기도 하였다. 삼성과 LG가 ‘주도권’보다는 ‘개방’과 ‘혁신’으로 무장하여 세계 IoT 플랫폼의 강자로 떠오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