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조업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정보통신기기 수출이 17.8%, 자동차 수출이 18.8% 감소하는 등 제조업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5% 감소했다. 철강, 조선, 정유 산업은 이미 몇 년째 적자다. 사업을 해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3분의 1에 이르고, 이 상태가 3년 연속인 기업이 15%에 이른다.
중국 기업이 경쟁자로 바뀌면서 생산 과잉으로 인한 저가 공세가 큰 원인이다. 이에 더해 엔화·위안화 절하, 중국 경기 둔화와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치니 빠른 시간에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지지부진하니 제조업을 포함한 우리 경제 전반이 저성장에 고착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선진국 제조업의 혁신
선진국들은 제조업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그 경쟁력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시부터 ‘미국을 다시 만들자(Remaking America)’는 구호 아래 제조업을 강조했다. 그 결과 미국의 제조업은 부활했다. 싼 인건비를 좇아서 중국, 멕시코로 떠났던 제조 기업이 생산지 인건비 상승 등으로 다시 회귀하고 있다. 세일가스 채굴로 낮아진 에너지 가격, 낮은 물류비, 그리고 정부의 親기업적인 무역·금융·조세제도가 회귀를 가속시키고 있다.
굴뚝산업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3D프린터 등 첨단기술로 스마트 산업이 되고 있다. 이에 더해 구글, 테슬라 등 혁신 기업들은 산업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새로운 도전과 탐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0년이면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제조업 경쟁력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변신이 대표적이다. 발전기, 엔진 등의 대형 기계류 제조가 주력인 GE는 “2020년까지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선언했다. 자신과 고객들의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소프트웨어에 주목한 것이다. ‘산업인터넷’으로 기기들을 연결하여 데이터를 모으고 운영의 최적화를 도모한다. 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부품 고장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GE가 기기와 함께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판매하여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GE의 소프트웨어는 경쟁력이 있다.
독일은 원래 전통 제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나라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여 그 경쟁력을 더욱 제고하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전략은 단순히 기기에 소프트웨어를 내장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하여 생산공정, 조달·물류, 서비스까지 통합 관리하여 생산 효율성을 30% 이상 끌어올리는 스마트 공장을 목표로 한다.
우리 신발 산업의 귀환
값싼 인건비를 좇아 생산기지를 국외로 이전한 우리 제조기업이 현지의 인건비 상승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소진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제조업은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까? 제조업의 경쟁력은 결국 지속적인 기술혁신 능력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떠올린다. 이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더욱 심해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의 적극적 활용을 통한 신속한 디지털 변환(Digital Transformation)이 필수다.
디지털 변환으로 다시 살아나는 우리 산업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신발 산업이다. 선진국에 비해 저임금이던 1980년대까지 신발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세계 신발의 3분의 2를 생산하는 중국이 세계 신발 사업을 이끌었다. 1977년에 우리 수출에서 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5%였으나 2000년에는 0.1%로 감소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신발 제조기업은 일반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 실적을 보이고 있다. 주요 신발 제조기업들은 연 100% 이상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있다. 2014년 우리 신발 수출은 5000억 원 규모이며, 이는 연 7%씩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대 신발 제조기업은 최근 5년 동안 연 20%씩 성장하여 2015년에는 1조 3,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신발 산업이 디지털 변환으로 첨단산업화 됐기 때문이다.
신발은 내구성을 중시하는 대량생산 제품이었지만 요즘은 다양한 디자인과 다기능 패션화로 진화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제품으로 바뀌었다.
신발 산업의 디지털 변환
예전에는 신발의 재단, 재봉, 제조를 각각 다른 공장에서 처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화된 한 라인에서 처리한다. 신발 전용 3D CAD/CAM 소프트웨어로 발 모양 틀(LAST라고 함), 윗 갑피, 바닥판을 통합해 설계한다. 패턴 배열 최적화 알고리즘으로 갑피 자재를 절감한다. 3D프린터를 사용하여 30~50일 걸리던 시제품 제작 소요시간을 1~2일로 단축했고, 투입 인력도 12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
제품 생산에서도 컴퓨터 재단·재봉, 센서·로봇을 활용해 33단계의 조립 공정을 14단계로, 16단계의 재봉 공정을 3단계로 각각 단축했다. 자재의 적기 공급과 관리를 위해 첨단 ERP과 SCM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한 국내 기업에서는 최신 소프트웨어를 도입하여, 23일 걸리던 생산 공정을 12일로 단축했다.
신발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디지털 변환이 신발 생산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서 신발 생산원가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해졌다. 이제 경쟁력은 디자인과 브랜드 파워, 그리고 현장에서 쌓은 암묵지를 신발 설계와 생산 공정, 그리고 마케팅에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브랜드와 디자인 역량이 글로벌 신발 시장을 석권하는 핵심 요소이다. 우리 기업도 혁신적 디자인 역량을 갖추어야 하고 독립된 브랜드로 글로벌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쉬운 OEM방식 생산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소프트웨어 기업과 협업하여 다품종 소량생산의 특성에 맞는 신속한 디자인 능력과 탄력적인 유통시스템을 개척해서 단기간에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했던 일본 의류기업 유니클로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신발 산업에 종사하며 얻은 암묵지는 경쟁 차별 요소다. 제품을 세련되고 편하게 만들기 위해 ‘복숭아뼈 안과 밖 재질의 두께를 몇 mm로 해야 한다’는 등의 암묵지는 숙달된 신발 장인만의 것이다. 이러한 암묵지를 설계와 관리 소프트웨어로 담아내는 능력이 승부의 관건이다.
이제 신발은 첨단기술의 경연장이다.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글로벌 신발 강자들이 첨단 신발의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요즘 놀랍도록 가벼운 신발을 신어보셨을 것이다. 신발의 재료로 다양한 첨단 신소재를 활용하여 내구성과 착용감을 높이고 있다. 보행으로 전기를 발생하고 환기장치, 조명장치, 스피커 장착은 기본이다.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모으고 인터넷과 연결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신발이 ‘건강관리 센터’로 발전하고 있다. 지능화된 신발산업은 이제 IT산업, 의료산업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산업하고도 협업하고 있는 추세다.
디지털 변환의 추세는 모든 산업에서
이제 디지털 변환의 추세는 신발 산업, 섬유 산업은 물론 자동차와 조선과 같은 중후장대형 제조 산업에까 거세게 불고 있다. 선진 기업들은 경쟁력의 원천을 제조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제품을 이용한 서비스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기술 혁신을 소재나 제조 공정 혁신뿐 아니라 센서와 무선 네트워크 기반의 IoT, 그리고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에서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