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국가별 혁신 전략

미국의 길, 중국의 길 그리고 한국의 재도약 전략
美, 범용기술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 선투자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민간 혁신의 결정체라 불리는 애플의 아이폰은 실은 미국 정부의 장기 투자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DRAM,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인터넷, 음성인식 서비스는 DARPA(1)가 개발했고, 리튬베터리는 DoE(2), 액정 디스플레이는 NIH(3), NSF(4), DoD(5)의 합작품이며, 셀룰러 기술도 DoD(국방부)의 작품이다. 사실 미국 SW혁신을 주도하는 실리콘 밸리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이후 정부가 스탠포드대학을 통해 추진한 국방R&D에 그 시초가 있고, 이것이 훗날 IT와 SW산업 발전의 토대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기술들은 모두 바로 시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기 때문에 기업이 먼저 나서서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는 어려운 분야였다. 즉, 미국의 공식이란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기술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 투자와 벤처캐피탈 자금이 민간 기업의 혁신 성과로 귀결된 것이다.

中, 장기 투자와 배타적 시장보호

최근 중국이 SW분야에서 보여주는 혁신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특히 AI(인공지능)분야가 그렇다. 2015년 국가별 AI특허출원 건수에서 중국은 6,900건으로 미국(9,786건) 다음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16 국제 슈퍼컴퓨터 학술대회’에서는 미국(타이탄)과 일본(K컴퓨터)을 제치고 1위, 2위를 휩쓸었다.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100% 국산화에 성공한 중국 ‘선웨이 타이후 라이트’의 성능이 초당 93페타플롭(PetaFlop/s)으로 3위인 미국 슈퍼컴 ‘타이탄’ 성능의 3배를 웃도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슈퍼컴은 1986년에 추진된 ‘제7차 5개년 경제계획’과 그 해 3월 기초과학기술에 대한 장기 투자를 골자로 한 ‘863 계획’에 그 시초를 두고 있어, 30년간의 장기투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중국 AI의 주력부대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이다. 바이두의 성장에는 시장을 선점했던 야후와 구글에 대한 정부의 검열이 한 몫을 했고, 텐센트의 성장에는 게임 콘텐츠에 대한 정부의 배타적 시장보호가 도움을 주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인터넷+’(2015)와 ‘AI Action Plan’(2016.5.)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이들 기업의 AI혁신이 상용화에 성공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바이두의 자율운행버스는 올 6월부터 지방도시 10곳에서 시범운행을 시작했고, 과학기술부는 AI 플랫폼을 알리바바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요약하면 중국의 성장 공식이란 정부의 장기투자와 국내 기업에 대한 배타적 시장보호가 결합된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韓, 동아시아 경제모델과 성장 동력의 상실

한때 신흥공업국의 모범이라던 우리의 성장은 정부 주도형 산업정책에 기반을 두고 이뤄졌다. 60~70년대는 주로 저가격·저품질 제품으로 수출 시장을 개척하며 성장했고, 80년대 이후에는 정부가 직접 R&D투자를 하거나 세금정책을 통해 민간 R&D투자를 촉진시켰다. 90년대 들어서는 국내 임금이 상승했고 동남아 등 후발국가가 등장하면서 수출 경쟁력이 하락했지만, 민간기업들이 적극적으로 R&D투자를 늘렸고, 생산자동화 로봇을 대거 투입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실제로 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GDP대비 R&D투자가 2000년까지도 1%를 넘지 못했지만 한국은 1990년대 이미 2%를 넘었고, 이중 민간 R&D비율도 80%를 차지했다. 요약하면 한국의 성장 공식은 처음에는 정부 지원으로 역량을 축적했지만, 나중에는 민간 기업들의 R&D투자와 공격적 영역확장이 성과로 연결된 것이다.

현재 우리는 여전히 GDP대비 R&D투자에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우리 기업의 체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IMF이후 국내 기업에 외국인 지분율은 급증해서 과거 5%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인 35%에 달하고 있다. 사실 외국인 지분은 자금의 성격상 장기 투자보다는 단기 투자나 이윤 배당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국내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하락할 때 R&D투자율이
상승했고, 2010~2012년 외국인 지분이 상승할 때 R&D투자율은 감소했다는 연구도 있다.(6) 또한 생산자가 미래 이익을 위해 재고자산 및 고정자산에 투자를 하는 것을 총자본형성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90년대 35%
수준에서 IMF시기 25% 수준으로 하락했고 2010년에도 30%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중국은 90년대 20% 수준에서 2010년 50%를 넘어섰다.(7) 국내 관련 연구들은 과거 국가경제의 버팀목이자 성장의 엔진이었던 국내 기업들이 외국인 지분의 증가로 인해 체질이 변해서 장기 R&D투자나 과감한 영역확장형 전략 구사가 쉽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성 : 생태계 리더쉽의 중요성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경쟁국들은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에 기반한 지능형 생산체계로 빠르게 전환해서 개인화된 극소 수요까지 충족시키고 있다. 과거 HW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이제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고, 나아가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구글과 애플처럼, 산업간 경계도 무너지고 있으며, 지능화된 로봇 생산은 제조업을 다시 선진국으로 회귀시켜 국제분업질서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독일의 아디다스가 좋은 사례인데, 이 회사는 1993년에 문 닫은 독일 내 신발공장을 로봇생산방식으로 다시 가동시켰다. 이 공장은 원래 600명이 생산하던 50만 켤레의 신발을 단 10명만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존 생산효율성을 높이는 공정혁신 정도로는 재도약을 논하기 어렵다.

또한 지능형 로봇생산체제가 주도하는 제품생산은 개인화된 수요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에 따라 시장도 극소 규모로까지 파편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개별 제품과 서비스 차원의 전략만을 구사해 가지고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려워 선도 기업들과의 시장경쟁에서 승산이 낮다. 대안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생태계 차원의 전략인데 구글이 좋은 사례이다. 구글은 검색에서 출발해서 자율주행자동차, AI기반의 서비스, 드론과 시계까지도 개발하며 개별 제품 차원을 넘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연결된 생태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내생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AI연구를 위해 개발한 텐서플로우(TensorFlow)의 소스코드도 공개하면서 더 많은 사용자가 구글의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혁신의 외생화전략(exogenous strategy)도 병행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구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 사례들이 외부 기여자들을 통해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도약의 조건 : 단계축약형 전략, 과감한 개척, 공공의 새로운 역할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재도약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과거와 같이 역동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과감하게 개척하며 생태계 차원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과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국내 기업의 전략으로 단계축약형(skipping)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구글의 경우, 알고리즘 개발(예 : TensorFlow)+데이터→모델링→서비스 출시(예 : Assistant)의 경로로 개척해 나갔지만, 국내 기업들은 이 경로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미 공개된 알고리즘을 재빨리 활용해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서비스 시장을 개척해야하고, 역량이 축적된 후에는 새로운 기술영역에 도전하는 단계축약형 전략으로 신기술 트랜드에 올라타야 한다. 독일의 패션 전자상거래기업인 잘란도(Zalando)가 좋은 사례이다. 이 기업은 텐서플로우에 잘란도의 데이터를 활용해 600개 이상의 의류 디자인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결합, 옷감, 색상, 스타일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 디지털 디자인 스튜디오 스팅크디지털(Stingkdigital)과 협력해 구글 보다 먼저 창작의 영역이라고 했던 패션산업의 디자인 엔진도 개발하고 있다.

둘째, 우리 기업이 새로운 영역을 과감하고 역동적으로 개척해기 위해서 집단형 조직의 형태가 각개 전투보다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로켓인터넷(독일)과 옐로모바일(한국)이 좋은 사례이다. 이들은 과감한 M&A나 모방과 같은 재빠른 기술확보 전략과 신속한 시장진입 전략을 통해 집단형 기업조직으로 진화한 후에 자회사간 교차보조(Cross-Subsidization)와 공동 전문화(Co-specialization)로 초기 불리함을 극복하며 다양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집단형 기업의 혁신 사례에 속하는데, 스타트업이 부족한 자원을 확충하고 기술변화와 선도기업의 견제에 대응하며 성장하기에 보다 유리한 기업조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물론 집단형 기업조직의 문어발식 확장이 비효율적 투자를 야기한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기업의 성장단계와 전략변화 가능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셋째,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초기단계로서 새로운 혁신이 어디에서 언제 출현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따라서 다양한 영역에 대한 과감한 탐색, 연구개발, 그리고 이를 신속히 상용화하는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전략을 잘 구사하는 기업이 바로 구글과 페이스북이고 심지어 중국의 바이두와 알리바바도 자율주행자동차까지 개발하며 이런 과감한 시도에 동참하고 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안정적인 경영권의 방어가 기본이다. 미래기술에 대한 장기R&D, 과감한 M&A와 영역개척은 언제든지 매몰비용(sunk cost)이 될 수 있어 창업자나 경영자가 주주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는 쉽게 구사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구글, 페이스북, 바이두 같은 기업들은 모두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바이두의 경우, 창업자가 지분의 13%만 가지고 있어도 경영권의 방어가 가능하고, 구글은 15%만 가지고도 56%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내에도 창업자의 경영권과 관련된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해 법안발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진도가 느리다. 안되면 적어도 SW분야만이라도 국내기업의 역동적 투자와 과감한 영역개척이 가능한 방향으로 결론이 나야겠다.

넷째, 공공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자율주행자동차 등과 같은 SW기술은 초기에 불안정하거나 기존 기술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어 당장 사업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기존 기술을 장악한 선도기업은 신기술의 시장여건이 형성되도록 버틸 수 있겠지만, 후발기업은 초기 시장여건이 조성되는 시간까지 버틸 여력이 없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해도 후발기업은 신기술 채택의 유인이 크지 않아 계속 과거 기술에 머물 가능성이 높은데,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의 기회를 기업에게만 맡기기보다 신기술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이 부분에서 과거와 같이 전략산업과 특정기업을 선정해서 지원하는 소위 ‘승자뽑기 방식(picking winners)’보다 사회적 가치가 높은 범용기술(혹은 중간기술)을 다수의 민간기업과 함께 발굴(discovery)하고, 평가하며, 많은 기업들이 각자의 다양한 서비스로 진화시켜나가도록 하는 스마트 전문화(smart specialization)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비스가 개발되더라도 초기 국내 서비스의 성숙도가 해외 선도기업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우려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 외국기업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 배타적인 시장보호 조치와 같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도 필요하다. 우버가 2014년 국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는 바람에 카카오가 서비스를 차별화해서 택시 서비스를 준비할 수 있었는데, 만약 우버가 국내 시장을 선점했었다면 카카오의 서비스 출시는 어려웠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 기업의 역량이 충분한 영역은 규제를 없애고 개방해서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상유십이(尙有十二), 필사즉생(必死卽生)이라는 말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 역량이 있는 대기업이 남아 있고, 네이버, 카카오, 쿠팡과 같은 혁신적 SW기업도 포진해 있으며, 정부도 의지가 있다. 이제는 우리 기업이 생태계 차원의 역동성, 과감성을 발휘하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1)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방위고등연구계획국)
(2) Department of Energy(미국 에너지국)
(3)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국립보건원)
(4) National Science Foundation(국립과학재단)
(5)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성)
(6) 김아리, 조명현(2007), 외국인 투자자 유형과 기업의 배당 및 투자의 관계에 관한 연구, 한국전략경영연구
(7) 서울사회경제연구소(2015), 「한국경제의 새로운 지향과 개혁과제」, 한울아카데미, pp191
 

키워드 월간SW중심사회 2016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