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에 미국 백악관에서는 ‘대통령 자유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시상식이 있었다. 대통령 자유메달은 미국 사회 전 분야에서 업적을 세운 인물들에게 수여되는 가장 명예로운 상이다. 탐 행크스, 엘렌 드제너러스 등의 연예인과 마이클 조던, 압둘 자바 같은 운동선수 등의 수상도 알려졌지만, 특히 컴퓨터과학자인 그레이스 하퍼와 마가렛 해밀턴의 수상소식은 해외 유수 언론들을 통해 널리 보도되었다. 이미 작고한 그레이스 하퍼와 80세가 넘은 마가렛 해밀턴의 수상이 지금 이 시점에서 더 놀랍고 빛나는 이유는 SW업계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여성 SW개발자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진 1 좌, 가운데 위 UNIVAC 컴퓨터 개발하던 그레이스 하퍼, 가운데 아래, 우 아폴로 11호의 컴퓨터시스템 개발 당시의 마가렛 해밀턴

그레이스 하퍼는 1940년대에 세계 최초로 컴파일러(A-O)를 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언어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녀는 ‘프로그램 버그’ 개념의 창시자로 더 알려졌지만, 숫자로만 구성되어있던 컴퓨터명령체계에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자’는 당시로는 획기적이였던 그녀의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컴퓨터는 지금까지도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단순한 연산기계로서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마가렛 해밀턴은 아폴로 11호의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 아폴로 11호가 달에 무사히 착륙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아폴로 11호 on-board flight software 프로그램이 담긴 ‘펀치카드’들은 그녀의 키보다 더 높이 쌓인다. 지금도 프로그래밍 작업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초창기 개발환경의 척박함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과학이란 말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이자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더 적었던 그 시절에도, 현대 컴퓨터과학의 핵심 요소 및 개념을 만들어낸 이런 여성 선구자들이 존재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학업 성취도는 남성을 앞지르고 있으나, SW분야의 여성 인력의 비중은 매우 저조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60%까지 상승했다. 분야별로는 의학·교육·사회과학 분야의 여학생 비율이 75%, 인문·어학 분야는 60% 이상이었다. 수학·과학 분야조차도 50%였으나, 컴퓨터공학 분야는 20%로 나타났다. 미국 내 대표적 SW기업인 Google 내 여성 SW개발자 비율은 20% 수준이며 특히 시스템 개발 분야에서 여성 비율은 훨씬 낮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SW분야의 여성인력의 현황은 더 심각하다. 2015년도 국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74.6%로 남학생(67.3%)보다도 7.4% 높고 인문계는 54.7%, 예체능은 54.2%, 사회계는 41.7%를 차지하고 있으나, SW분야를 포함한 공학계열은 17% 정도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국내 SW전공 학위 취득한 여성의 비중은 18.84%, SW직종 여성의 비중은 12.5%로 나타났다. 국내 전체 여성 고용률(49.9%)과 여성공무원 비율(43.9%)과 비교하면, SW분야는 여성들의 불모지라 하겠다.

사진 2 2014년 애플 세계개발자포럼 화장실 앞 모습

이런 현상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수학을 잘해서라고 한다.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SW분야에서,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수학실력이 더 뛰어난 남학생들이 이 분야에 더 많다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의 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면, 대부분 국가에서 남학생의 수학성적이 여학생보다 높게 나온다. 그렇지만, 그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성적 차이는 현격히 줄어들고 있고, 성차별이 없는 교육을 지향하는 국가들에서는 남녀의 수학성적은 비슷하거나 여학생의 성적이 더 높기도 하다. 국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최근 결과를 보면, 중학교 수학은 이제는 여학생이 앞선 경우가 더 많다. 남녀간 신체적 차에 따른 뇌의 물리적 차이를 남녀간 능력의 차이로 연결한다면, 최근의 여성의 성취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인터넷 게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최근 남학생들의 생활 태도 때문에 여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남학생보다 높다고 하는 주장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분들께 되묻고 싶다. 타 과목에서는 수리·논리적 역량이 전혀 쓰이지 않는가? 이 짧은 기간 내 이뤄진 남학생들의 생활적 변화와 인류 역사 내내 여학생들을 속박하는 관습적 굴레 중 어느 것의 무게가 더 클까?

필자는 SW라는 특정 분야에서 남녀 성비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원인은 성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 가장 근본이유라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은 잠재적 능력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대다수의 국가에서 여성들은 집에서나 사회에서 “착한 여성(Good Girl)”으로 성장하길 대놓고 요구받는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고 도와주는 여성상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름다운 누이 혹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각인되어왔다. 많은 미디어에서 수학, 과학, 공학은 남성들의 전유물이고, 못하는 것을 귀여운 애교로 넘길 수 있는 여학생이 더 인기많은 캐릭터로 나타난다. “여자는 이런 거 못해”란 말을 듣고 자란 여자아이들에게 SW교육은 흥미와 희망의 불씨를 일으킬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미지의 분야에 대한 도전감을 떨어뜨린다.

이런 고정관념에 기반한 편파적 교육기회는 또 다른 사회적 현상과 더 단단해진 고정관념을 만든다. 특히, SW 프로그래밍은 컴퓨터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쓰이는 언어이며 사고력의 놀이이기에 어린 시절 배움의 효과가 매우 높다. 그러나 최근 초·중·고 SW교육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대부분 남학생이다.(개인적 사례지만, 작년 초등학생 딸이 1년간 방과후 수업으로 선택한 로봇프로그래밍 수업에는 여학생이 단 한 명뿐이었다.) 최근 Google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과학 분야에 대한 부모나 친구의 권유나 격려를 받은 비SW학과 여학생들은 비SW학과 남학생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 뉴욕주립대학의 SW학과 학생 대상의 설문조사에서 여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 컴퓨팅 경험이 남학생들보다 적었고, 이는 전공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자신감은 여성보다 남성이 프로그래밍을 더 잘한다는 고정관념을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심어준다. 그렇지만, 최근 GitHub 실험은 여성의 SW프로그래밍 능력에 대한 인식이 사실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해당 실험에 따르면, 프로그래머의 성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여성이 쓴 코드가 남성이 쓴 코드보다 더 높은 지지도(78.6% > 74.6%)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입맛이 남는건 왜일까?

사회적 고정관념은 누구에게나 위험한 덫이다. 누군가는 할 수 있고 없다는 일방적 줄긋기에서 시작된 격차는 그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고, 남성 여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안긴다. 다양한 구성원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다양한 요구사항에 맞는 다양한 SW의 개발이 우리 사회 전체를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여성이 SW분야에서 소수가 되어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는 전혀 없다. 70년 전부터 SW분야에는 여성 리더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제한적이던 그 때에도 SW분야 건국의 어머니로서 그 발자국을 진하게 남겼다.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멋진 여성들이 SW분야에서 그 길을 이을 수 있다고 믿는다.  

키워드 월간SW중심사회 2016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