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에 대한 그간의 관점과 한계

제4차 산업혁명이 등장하면서 산업과 사회의 혁명적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 종종 언급된 것이 바로 규제제거론이다. 그러나 규제 몇 개만 없으면 만사형통일듯이 이야기하는 규제제거론은 혁신의 저해요인을 없애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혁신주체의 유인(Incentive)이나 사회적 수용과 편익을 다루지는 않는다. 사실 효과성으로 따진다면 규제보다 유인이 더 나을지 모른다. 수익과 보상이 따른다면 기업은 규제를 우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기술의 자체 발전 결과와 그 효과에 의해 사회가 변화한다는 기술결정론과 사회의 체제적 논리에 따라 기술발전이 결정된다는 사회결정론적 관점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을 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들 두 관점은 디지털 혁신의 인센티브, 역기능 및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수용, 즉 기존 사회체제 구성원들이 디지털 혁신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수용이나 합의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못했다. 사실 혁신적인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도 사회 적용에서 뒤처진 수많은 사례가 바로 기술과 사회의 공진화(Co-evolution)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한다.

디지털 탈바꿈으로 촉발되는 사회적 갈등

최근 제4차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안들은 하나같이 복잡하고 그 효과나 위험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특히, 산업과 사회의 디지털 전환은 대부분이 체제전환을 지향하는 혁신 기업들에 의해 촉발되는데, 이들은 외부 거시적 환경의 변화와 기술적 기회를 활용하기 때문에 기존 산업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변혁시키거나 대체하며, 기존 체제의 지배적 행위자들(기업, 이해관계자그룹 등)의 전략적 우위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기존 경제 및 사회 정치적 환경과의 합의와 협력보다는 갈등과 경합으로 돌파(Breakthrough)해야 하는 이슈가 종종 출현한다.

농민단체의 스마트팜 혁신밸리 반대 집회 및 택시업계의 카풀서비스 반대 집회

 

예를 들어 우버, 에어비앤비, 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다양한 디지털 전환의 실제 사례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고,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데에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와 같은 플랫폼 경제의 역기능 그리고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나 근로자 보호 기준 등의 이슈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특히 카카오와 기존 택시업계 간에 불거진 공유차량에 대한 갈등은 디지털 혁명으로 촉발된 사회적 문제와 갈등이 적절히 해결되지 못할 때 우리 경제, 사회 전반이 감당해야할 고통과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는 차원에서, 디지털 신기술에 의한 혁신의 사회적 수용을 인지와 합의를 기준으로 아래 <표 1>과 같이 구분해보면, 사회적 인지 수준이 높고 합의가 형성되어 있으면 ① 유형으로 해당 정책을 실행하면 되고,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되어 있으나 기술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지 수준이 낮으면 기술 연구의 결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기술효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인지 수준이 모두 낮은 다수의 디지털 전환 사례는 ④유형, 즉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는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유형의 경우, 기존 소수의 전문가 중심 혹은 관료 중심의 하향식(Top-Down) 접근 방식에서 R&D 투입, 대형 국책 과제 혹은 몇몇 규제의 제거를 주된 내용을 하는 전략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기술과 사회의 공진화적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참여해서 디지털 전환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인지와 합의의 수준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접근이 필요하다.

<표 1> 디지털 전환의 사회적 수용 유형
- 디지털 기술의 유용성/위험감에 대한 사회적 인지
O X

디지털 기술의 유용성/위험감에
대한 사회적 합의
O ① 정책 실행 ② 기술 연구
X ③ 설득/강제집행 ④ 사회적 갈등(주)

※ 주 : 사회적 인지와 합의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정부가 정책/제도에 대한 분명하지 않은 시그널을 사회 구성원에 전달하면, 사회적 갈등은 증폭될 수 있음
※ 출처 : 이윤희(2009)1의 유형 분류를 필자가 디지털 전환에 맞춰 수정함

디지털 전환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실험주의적 혁신국가 모델

기술혁신과 사회적 갈등의 최소화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탐색적 노력은 시민사회의 전통이 강한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일종의 실험주의적 국가모델(Experimental government, Breckon, 2015.)로서 시도되는 덴마크의 마인드 랩, 영국의 폴리시 랩(Policy-lab), 핀란드의 데모스 헬싱키 등 이미 100여 개의 폴리시 랩이 정부 또는 민간 주도로 만들어져 활동 중이다. 이 기관들은 ‘사회와 정부 혁신’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공하는 대안적 지식 조직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 행동경제학, 시민 참여, 빅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정책결정 과정을 디자인하고 실험하면서 기술과 사회의 공진화를 추구한다. 국내에도 기재부가 2019년부터 신규 정책을 도입하거나 정책 추진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에 ‘폴리시 랩’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2고 발표하여 국내에도 조만간 기술과 사회의 공진화를 실험적으로 도입하는 모델이 소개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지금까지 국내의 혁신전략은 몇몇 신성장 산업의 선정, 비용 대비 편익 분석(예비 타당성), 시장 전망의 수치 등을 중시했던 관성이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정책적 시도에는 다음 몇 가지 관점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全방위적인 영역에 대한 정책들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원격진료, 디지털 헬스케어의 다양한 건강보조기기에 대한 허가, AI+진료에 대해 의료법, 의료기기법, 국민건강보험법과 유전자검사관련 법, 그리고 데이터의 활용차원에서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의 영향 이외에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체계, 의료기관과 의사협회, 시민단체의 입장이 서로 달라 실질적 혁신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자동차관련 서비스가 SW기술과 융합된 자동차 O2O의 경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자법, 자동차정비업, 환경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다양한 법제도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택시조합, 자동차정비협단체 등 이해관계자 그룹이 고용의 안정성, 노동소득의 감소, 승객의 안전성, 환경보호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사례는 정책 패키지를 구성하는 범위의 측면에서, R&D, 규제 등 국지적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처방보다는 R&D, 법·제도, 인재교육, 인프라, 수요·공급망, 혁신의 인센티브, 이해관계자들의 처우개선 등 혁신의 영향이 미치는 全방위적인 영역에 대한 정책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근본적 개혁의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게 보면, 정부는 기존의 선정과 투입에 기반한 자원배분과 규제와 제도형성의 역할에 추가해서 신기술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해 사회적 인지, 합의와 수용을 이끄는 정보제공자, 조정자와 전 방위적 정책간의 조율자 기능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추진방식의 측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기구(제도화)를 통해 미래 비전을 세우되 복수의 비전이 양립 가능할 정도로 일정 정도 혁신의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어야 하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효과성과 위험성을 평가해서 장기 비전에 대한 단기적 정책을 수립하고 반영하며 그에 따라 미래 비전을 지속적으로 재정의해나갈 수 있는 이른바 백캐스팅 방식(Back-casting)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추진체계 측면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디지털 전환의 변화가 기존 사회에서 요구되는 규범과 행동양식으로부터의 이탈, 일상생활 루틴의 근본적 변화 등 전혀 의도하지 않았거나 예상치 못한 경로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정적 단일 목표의 설정을 선형적 프로세스에 맞춰 따라가기보다, 복수의 비전(미래상)과 단기 정책추진의 과정에서 도출된 긍정, 부정적인 효과의 부단한 되먹임 작용(Feedback)이 허용되는 거버넌스(Reflexive governance)로 재구성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정책추진의 주체 차원에서, 전문가 중심(학계, 업계, 관료), 시민 중심 그리고 전문가+시민의 협업적 방식이 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 획일적으로 하나를 선택해 적용하기 보다는 혁신 생태계의 특성과 성숙 단계에 따라 적합한 방식을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험주의적 혁신체제의 목표는 사업의 확산이 아니고, 실험의 과정에서 신기술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차기 정책적 실험의 설계를 위한 충분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 또한 복수의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허용되며, 더욱 중요하게는 정부측에 ‘실험 → 확산’의 선형적 공식에서 부여되는 정책실패의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실험의 실패는 초기 실험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해 충분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하고 결국 차기 정책실험의 설계를 보다 정교하게 할 수 없는 사례가 해당될 것이다.

종합하면, SW혁명은 디지털화(Digitalization) → 정보화(Informatization) → 디지털 탈바꿈(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빠르게 이행하면서 산업을 넘어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 진보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점차 더 많이 요구하고 있지만, 그 해법을 찾는 길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았기에 마치 안개 속을 더듬으며 나아가는 것 같은 탐색과 실험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해관계자들과 참여형 의사결정체를 구성해서 미래 비전을 설정하고 학습과 탐색의 방식으로 사회와 함께 불확실성에 적응해나가는 철학을 담고 있는 ‘실험주의적 국가모델’은 디지털 탈바꿈으로 사회적 이해관계의 출동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유효한 담론이다.

  • 1 이윤희(2009),“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에 관한 연구”, 한국사회학회, 1165-1181.
  •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12272213005#csidxf91d91bb8669b8791d0117861a382cb

디지털 혁명 월간SW중심사회 201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