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行間)을 읽는 일이란 참으로 어렵다. 비록 분명하게 그 숨은 뜻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말하고자 하는 속내를 이해하거나 어떤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행간을 잘 읽다 보면, 전체적인 맥락(脈絡)을 짚어낼 수 있다. 어떠한 맥락을 파악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함의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행간을 읽고, 그러한 맥락을 짚어내는 노력은‘이해’에 도달하기 위함이다. 어떤 현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와 다양한 관계들을 분별하고 해석하는 것, 그것이‘이해’이다. 그런데 이‘이해’라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 있지 않고, 오롯이 나의 관점과 해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사회적 문제의 정책적 해결은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한 문제 상황이 발생한 환경적 맥락을 잘 파악해야만 올바른 문제 해결을 도출해 낼 수 있고, 효율적 자원의 분배와 효과적인 행정의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환경적 맥락을 잘못 파악함으로써 생기는 몰이해는 심각한 정책적 결과를 야기한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사회의 문제로 남아있을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예산, 인력 등 행정자원은 회수할 수 없는 채로 사라지게 된다.
한편‘문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미래상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 상황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이를 공공의 자원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정책적 해결’인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과제는 첫 번째가 바람직한 미래상을 잘 정의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 상황을 잘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림 1] 해결과제 도출을 위한 어름(Gap) 분석 개념도
이 두 가지 과제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 정의되는 경우, 정책문제의 해결을 위해 도출되는 대안들은 결국 정책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령 정책 실패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원들의 비효율 문제는 남는다.
여기서 바람직한 미래상을 잘 정의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재 상황으로 부터 문제를 정의한다고 했을 때, 이 문제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는 오류를‘제3종 오류’라고 한다. 정책 분석에서 정책문제의 정의가 분명한데, 의사결정 대상인 정책대안이 효과가 없음에도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오류를 제1종 오류라 하고, 효과가 있는 정책대안을 효과가 없다고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제2종 오류라 한다. 제1종 오류와 제2종 오류는 정책의 문제가 올바르게 정의되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데 반해, 제3종 오류는 가설의 검증이나 대안 선택 과정에는 오류가 없었으나 초기에 정책문제 자체를 잘못 파악하는 근원적 오류를 말한다. 이런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안 탐색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1
SW전문인력 양성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자면, 꼭 필요한 인력 충원을 위해서 양성해야 하는 SW인력을 양성하지 못하거나, 양성할 필요가 없는 또는 양성하지 말아야 할 SW인력을 불필요하게 양성하거나, 어떤 SW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등 정책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SW전문인력 양성에서 해결되지 않는 정책적 과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SW정책 수립과 관련하여 시장의 이해당사자와의 의사소통이 충분하였는가 그리고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만족할 수 없다면 SW시장의 환경을 이해하고 문제를 도출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SW정책 대안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에는 혁신성장과 같은 국정운영 방향을 고려하거나 정무적 판단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겠지만, 그 또한 의견 수렴의 충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전제가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 정책적 오류의 발생 가능성은 높아진다.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SW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 개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다고 잘못 판단하거나 또는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고 잘못 판단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SW정책을 입안하거나 SW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SW산업에 종사하는 이해당사자들로 부터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행간을 읽고, 맥락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시작임과 동시에 급변하는 SW환경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올바른 정책적 문제 해결에 이르는 필수적인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오픈커뮤니티’는 매우 중요한 의사소통 창구이다. 한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청회나 여러 공식적인 의견 수렴의 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이 창구를 통해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에 어떠한 제약도 있지 않다.
[그림 2]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오픈커뮤니티’의 정책 제안과 이슈 발굴
이러한 의사소통 창구로부터 우리가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은 그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SW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수많은 나름의 해결방안들을 정리하고 분석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글로벌 SW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국내 SW산업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 상황과 해결과제들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의견 수렴 채널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논의의 장이 지금보다 세분화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생태계 활성화, 전문인력 양성, 신기술 역량 제고, 글로벌 역량 제고 등 우리가 지속적으로 얘기해 온 SW산업의 핵심과제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듣고, 정리하고, 행간을 읽으며, 그 맥락의 파악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SW산업 발전을 위한 올바른 의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이 듣는 것, 더 잘 듣는 것, 소통과 이해의 시작이자, SW정책 성공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