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경제에서 실감경제로

“경험경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Experience Economy).” 1998년 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된 이 글은 당시 경제가치의 진화를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저자인 Joseph Pine과 James H. Gilmore는 산업혁명 이전의 경제구조에서는 미가공 재료를 추출하여 사용하였고, 대량생산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제품 중심의 경제로 변모하였으며, 이후 서비스 경제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서비스 경제 이후, 새로운 경제가치의 핵심개념으로 경험을 제시하였는데, 소비자들은 기억에 남을 만한 개인화된 경험에 높은 지불의사가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경험경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하였다.1 과거에는 커피의 원재료인 원두를 재배하고 추출하여 사용하였고, 이후 원두는 대량생산 체제로 제조되고 보급되었으며, 커피를 제공하는 서비스 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커피는 스타벅스라는 노련가(Stager)2를 통해 경험재로 재탄생하였다. 스타벅스 커피의 원두 원가는 1잔당 약 14원이지만,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금액은 4천 원이 넘는다.3 스타벅스의 창업주인 하워드 슐츠는 2017년 4월 주주 콘퍼런스 콜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유통 회사가 이기려면, 그 회사의 매장은 경험을 제공하는 유일한 목적지여야만 합니다.

그림 1 경제가치의 진화(The Progression of Economic Value)
<그림 1> 경제가치의 진화(The Progression of Economic Value)

※ 출처 : (좌) B. Joseph Pine II and James H. Gilmore, “Welcome to the Experience Economy”,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1998; (우) www.peakexperiencelab.com, 7 Reasons Museums Should Share More Experiences, Less Information, March 26, 2017

경험경제의 개념이 발표된 후 20년이 지난 지금, 경험경제는 실감경제(Immersive Economy)로 발전해 나가고 있으며 변화의 동인(動因)은 VR, AR, 홀로그램 등과 같은 실감기술이다. Gartner는 2019년 Top10 전략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실감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선정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고, 가상·증강·혼합현실(VR·AR·MR)을 통해 디지털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바뀌고 이는 실감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4 2018년 영국의 Innovate U5 는“The Immersive Economy in the UK”라는 정책보고서를 발표하고 실감경제의 개념과 실감산업 육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실감경제는 VR 등의 실감기술을 적용하여 산업, 사회,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를 의미한다.6 이제 경험의 영역은 실감기술로 인해 시간과 공간 측면에서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우리는 실감기술을 통해 가상과 현실, 과거와 미래, 어느 곳이든 원하는 경험을 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2016년 Mobile World Congress에서 Facebook CEO 마크 저커버그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가상현실을 통해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도 같은 경험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언급하였고 실감기술의 진화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Innovate UK의 보고서에서 주목할 점은 VR, AR과 같은 실감기술을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범용기술은 역사적으로 영향력이 큰 소수의 파괴적 기술을 의미하는 용어로 여러 산업에서 공통으로 활용되고, 기술진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범용기술이 활용되는 산업의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18세기 말 제1차 산업혁명 시기의 증기기관, 20세기 초 제2차 산업혁명에서는 전기, 자동차, 20세기 말 제3차 산업혁명에서는 인터넷이 범용기술의 역할을 했다.7 범용기술은 경제 전반에 확산되어 생산성 향상을 유발하고, 다른 기술과의 상호 보완작용을 통해 기술적 조력자(Enabler)로서 도움을 주어 산업혁신에 기여한다.8

실감경제가 그리는 미래

실감경제는 시장, 산업, 사회 측면에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시장 측면에서는 SW, 콘텐츠가 관련 HW 시장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VR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초기 시장은 7(HW) : 3(SW, 콘텐츠)의 비중으로 HW 중심으로 형성되나, 이후 SW, 콘텐츠 시장의 비중이 지속 증가하여 향후 3(HW) : 7(SW, 콘텐츠)로 역전될 전망이다.

<표 1> 세계 VR시장 규모 및 HW, SW, 콘텐츠 비중
  Sector / Year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Proportion of sectors HW 73.00% 67.00% 60.00% 52.00% 42.00% 33.00
SW 14.00% 15.00% 18.00% 20.00% 22.00% 23.00%
Content 13.00% 17.00% 22.00% 28.00% 36.00% 45.00%
Market size in million EUR HW 2.142 2.785 3.899 5,653 8.480 14.416
SW 395 632 1,138 2,163 4,325 9,948
Content 380 722 1,444 3,032 7,278 19,650
Total 2,917 4,139 6,481 10,848 20,083 44,014

※ 출처 : ECORYS(2017), “Virtual Reality and It’s Potential For Europe”

실감기술은 산업과 사회혁신의 동력으로 널리 활용될 전망이다.

음악, 공연산업에서의 혁신은 이미 시작되었다. 공연 현장에 가지 않고도 실감기술을 통해 공연 현장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팬들은 직접 현장으로 가는 대신 VR 헤드셋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2018년 12월 영국의 인기 보이밴드 원디렉션의 멤버 리암 페인은 VR을 통해 자신의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였다.9 뮤지션에 열광하는 팬들도 실제로는 가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VR 콘서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인기 뮤지션의 경우 단 몇 분 만에 티켓이 매진되는 경우가 많아, VR 콘서트는 팬들에게 커다란 혜택으로 다가올 수 있다.10 더 이상 방탄소년단의 공연 티켓팅에 실패했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

실감기술은 교육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8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VR 헤드셋을 이용해 정보를 제공받을 때 2차원으로 정보를 제공받을 때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한다고 발표하였다. VR을 활용하면 기존 데스크톱 PC를 사용할 때보다 기억 정확도가 8.8% 높게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이 실험을 통해 VR 교육이 태블릿 또는 단말기 기반을 통해 이뤄지는 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11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실감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는 새로운 도시 건설 프로젝트 설계에 가상현실을 이용하고 있고, 톨레도 대학교의 경우 의학 전공 학생들이 가상현실을 이용해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알베르타 대학교 역시 의료와 재활 공부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가상현실이 활용해 환자들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싱가폴 난양 폴리텍 대학교에서는 가상현실로 터빈학습을 진행하고 있다.12

실감기술은 치료법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2007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해 이라크에서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VR 시스템인 가상 이라크(Virtual Iraq)를 개발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전쟁,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에 대해 트라우마를 지속적으로 느끼는 정신질환을 말한다.13 버추얼 이라크는 X박스의 인기 있는 실시간 전술게임인 풀 스펙트럼 워리어의 개발 환경을 재사용했다. 이라크 참전용사들이 VR 속에서 이라크 전쟁 장면을 재경험하게 하는 장기간 노출 치료법이다. 전용 헬멧에 장착된 고글을 착용하면 이라크 중심가가 투영되고 상공을 경계하는 미군의 헬리콥터 소리와 코란을 암송하는 목소리 등이 들린다. 또 폭발의 진동이 가해지고, 중동 지방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까지 더해져 실제로 이라크의 전장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불안에 대한 습관을 발생시켜 차차 자극이 무뎌지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14 실감기술은 공황장애 및 고소공포증 등 각종 공포증의 치료에도 유용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의 멀티미디어 심리치료센터에서는 VR을 이용해 비행공포증이 있는 환자를 진짜 비행기 의자 같은 곳에 앉힌 다음 비행기 내부를 보여주며 의자를 진동시키고 비행기 엔진소리를 들려준다. 가상현실을 활용해서 환자들이 공포증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해 불안감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치료한다.15 옥스퍼드대학교는 VR을 활용해 고소공포증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68%가 증세가 완화되었다는 결과를 2018년 정신의학 국제학술지 Lancet Psychiatry에 발표하였다16

이외에도 미국 스타트업 볼드 메트릭스는 고객 신체의 가상 맵을 만들어 3차원 가상공간에서 신제품을 입어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 로이즈뱅킹 그룹은 인재채용 시 지원자들이 VR환경에서 퍼즐을 푸는 방식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인그로브 테크놀로지는 엔진 수리를 AR로 배우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호응을 얻고 있다17

실감경제를 대처하는 자세

실감경제의 확산으로 산업과 사회혁신이 가속화될 전망이며 기업과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범용기술로써의 실감기술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과 정책의 전환이 요구된다. 과거 범용기술의 출현과 생산성 향상 사이에는 시차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기존 절차와 관습이 모두 바뀌어야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기가 개발된 후에도 기존 증기기관 또는 수차로 동력을 얻던 시절의 조직과 설비 배치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설비를 바꾸더라도 기존의 배치를 바꾸지 않아 즉각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관리자 세대가 교체 될 만한 세월인 30년이 흘러서야 공장의 배치가 바뀌었고, 2~3배의 생산성 향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범용기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 프로세스와 조직의 완전한 전환이 중요하며,18 정책도 예외일 수 없다. 전환기의 산업육성 정책 수요와 그에 맞는 정책조합(Policy Mix)이 필요하다. 특히, 7:3에서 3:7로 변화하는 실감시장에 맞는 전환 정책이 필요하며, 급성장하는 SW, 콘텐츠 분야 육성 방안 모색이 절실히 요구된다. 실감기술 청년인재 육성을 위한 아카데미 신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실감기술 지원 확대, 공공분야에서의 실감기술 조달 혁신 등 다양한 정책방안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Joseph Pine과 James H. Gilmore가 20년이 지난 지금 Harvard Business Review에 다시 기고 한다면 제목은 “실감경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Immersive Economy)”가 아닐까 싶다. 실감경제에 들어선 지금, 전환 준비가 되었는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 1 B. Joseph Pine II and James H. Gilmore, “Welcome to the Experience Economy”,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199
  • 2 B. Joseph Pine II과 James H. Gilmore는 각 경제 단계에서 판매자(Seller)를 구분하였는데 Commodities를 제공하는 산업경제 이전에는 Trader, Goods를 제공하는 제품시대에는 Manufacturer, 서비스 경제에는 Provider, 경험경제 시대에는 Stager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 3 LG CNS, “당신이 경험한 오늘은?”, 2013.11.18.
  • 4 Gartner(2018), “Top 10 Strategic Technology Trends for 2019”
  • 5 Innovate UK는 독립 공공기관인 UKRI의 소속기관으로 기업 혁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 6 Innovate UK(2018), “The Immersive Economy in the UK”
  • 7 IHS(2017), “The 5G Economy: How 5G Technology will Contribute to the Global Economy,”; KT경제경영 연구소(2018), “5G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 8 Bresnahan, T. F. and M. Trajtenberg(1995), “General Purpose Technologies-Engines of Growth?,” Journal of Econometrics , Vol.65, No.1, 83-108.
  • 9 www.iq-mag net, “Liam Payne and MelodyVR celebrate virtual reality first”
  • 10 www. aitimes.co.kr, “음악 산업, VR로 지각변동…원디렉션 첫 VR 콘서트 개최”
  • 11 Forbes(2019.3.15.), “Virtuality : THE Learning Aid Of The 21st Century”; www.undrightnow.umd.edu, “People Recall Information Better Through Virtual Reality, Says New UMD Study”
  • 12 The Science Times(2015.9.10.), “가상현실 교육, 집중력 2배
  • 13 Science Times(2016.1.15.), “현실로 다가온 가상현실 치료법”
  • 14 www.bloter.net,“장애치료를 돕는 따뜻한 가상현실”
  • 15 Science Times(2016.1.15.), “현실로 다가온 가상현실 치료법”
  • 16 매일경제(2018.7.18.), “놀이기구 근처도 못가는 당신, VR로 고소공포증 고쳐보세요”
  • 17 매일경제(2018.12.3.), “VR가 바꾸는 19개 산업...귀사는 안녕하신가요?”
  • 18 Brynjolfsson and McAfee(2016), “The Second Machine Age, W. W. Norton & Company”; KT경제경영 연구소(2018), “5G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키워드 경제 경제가치 월간SW중심사회 2019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