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에서 디지털 전환의 갈등을 헤쳐 나가려면

  • 유호석산업정책연구실 책임연구원
날짜2019.06.18
조회수11891
글자크기
  • 중국과 한국의 디지털 전환 속도 차이
    • 중국 디지털 기업들의 놀라운 성장은 서구 대표기업들 마저 위협하고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은 가장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는 중국의 속도를 따라가고 싶어 한다. 빠른 디지털 전환속도의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에 기반한 결제, 교통통제, 범죄자 감시 등이다. 얼굴로 상점에서 결제하고 기차를 타는 편의기능을 넘어, 무단횡단자를 실시간 포착하여 전광판에 실명을 공개하고, 다수의 CCTV를 이용해 도시를 감시하고, 공안은 안면인식 스마트 안경을 끼고 범죄자를 색출하고 있다. 이러한 풍부한 데이터 기반에 힘입어 미국 NIST1가 주최한 안면인식 대회에서 중국기업·기관이 1~5위를 휩쓸었다.
    • 안면인식 기술을 이 정도 높은 수준으로 응용하려면 중국 공안과 인공지능 기업이 신분정보와 사진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비유하면 경찰청과 카카오가 개인정보를 공유하여 국민의 얼굴을 식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으면 불법일 뿐 아니라 불법을 피했더라도 시민단체와 국민이 힘을 합쳐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저지했을 것이다. 어쩌면 안면인식은 반체제 인사 감시 등 디지털 빅브라더 2로 발전할 우려가 크므로 차라리 도입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 그런데, 기존 산업을 디지털로 전환하여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신산업 영역에서 조차 이해관계자의 반대에 막혀 추진이 안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갈등 현상을 우리는 다수 목격하고 있다. 택시, 정비, 세차 등 공유경제는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으로, 디지털헬스케어는 병원, 의사 및 사회단체와의 갈등으로, 푸드테크는 농민단체의 대기업진출 반대로 정치이슈화 되었다. 또한, 개인정보의 비식별화를 통한 산업적 이용은 시민단체의 반대로 아직 관련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3 언급한 신산업 영역 상당수는 우리나라가 이미 중국에 뒤쳐졌거나 앞으로 뒤쳐질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스타트업과 정책당국은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디지털 신산업 전반에서 중국은 치고 나가는데 한국은 왜 잘 안될까? 혹자는 정부의 무관심과 기업의 역량 부족을 탓하지만, 언론의 관심 속에 정부와 국회가 설득하고 역량 있는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카풀 같은 신산업의 활성화도 막혀 있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누군가 열심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단편적인 지적은 뒤로 하고 디지털 전환 갈등이 발생하는 구조를 살펴보자.
  • 디지털 전환 갈등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
    • 전통산업에서 신산업으로의 체제전환이 저항받은 사례는 경제사에 이미 경험이 있다. 20세기 영국은 구산업의 쇠퇴와 신산업의 확장에 요구되는 구조전환에 매우 지지부진하게 대응했다. 선진화된 산업국가에서 새로운 기술과 수요에 맞추어 산업구조를 전환시키려고 할 때에는 축적된 자본스톡(기존기업)으로부터의 저항, 그리고 전통적인 노동자의 저항이 강력하게 발생했다. 4 탄광지대를 중심으로 증기엔진에 기반을 두고 건설된 전통경제에서 석탄이 아닌 석유, 가스, 전기로의 전환에 대하여 노동자의 저항 5이 일어났다. 그 결과, 1921년 민영화되었던 석탄산업이 1947년에 국유화 되었는데, 이는 화물, 통신, 철강산업과 함께 비효율적인 ‘영국병’의 상징으로 꼽혔다. 6 한편 선진화가 덜 된 국가의 경우에는 기존 산업구조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저항은 아주 미미하거나 아니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7
    • 전통산업과 신산업이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는데, 민주정치 체제는 이러한 경제적 갈등을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하는 구조이다. 민주주의 자체가 갈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8 하지만 민주주의가 직접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노동자와 기업-기업 같은 개별주체 간 갈등이 사회를 통해 범위가 확대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9 그러므로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처럼 축적된 산업기반이 있으면서 민주화된 정부를 가진 나라에서 디지털 전환에 따른 사회갈등은 필연적이다. 10
  • 디지털 전환 갈등과 혁신
    • 민주사회의 디지털 전환에서 공적선택을 둘러싼 갈등은 제거될 수 없다. 11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없어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들 사이의 차이는 인간본능에 기반한 원초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는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12 전통산업과 신산업의 차이를 없앨 수는 없어도 산업의 구조전환을 위한 절차와 과정에 합의할 수는 있다. 그래서 갈등을 제거대상 또는 장애물로 보기보다는 혁신을 위한 에너지로 보고, 이러한 에너지의 발산을 파괴적이 아닌 생산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13
    • 민주사회에서 디지털 갈등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첫째,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나은 정치체제이지만 ‘다수의 폭정’으로 귀결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14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근대 이후 철학자 홉스, 루크, 루소도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15 다수의 폭정 보다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공화정이 더 나은 대안으로 보는 경향이 오히려 강했다. 16 어느 시대에서든 혁신가는 소수라는 점에서, 기존 산업의 이해관계자가 혁신가를 억압하기 위해 매우 민주적으로 보이는 절차를 악용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에 따른 갈등을 다루기 위해서는 뒤에서 언급할 숙의 민주주의와 같은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 둘째, 혁신을 위한 별종을 육성해야 한다. 혁신의 창출은 기술틈새(Niche)에서 출발한다. 기술 틈새는 급진적이며 새롭다는 특성이 있지만, 초기성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술틈새는 일종의 인큐베이션 공간으로, 학습과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거나 공급망, 사용자-생산자 간의 혁신기회를 제공한다. 틈새는 종종 기존 체제의 문제점으로부터 촉발되며, 혁신 행위자들은 새로운 혁신이 궁극적으로 기존체제에서 유용하게 쓰이거나 기존 체제를 대체한다. 이를 위해 보호된 공간(Protected Spaces)을 필요로 한다, 먼저 전략적 연구개발과 같은 기업의 내부에서 출현하거나 정책적 보조금 또는 규제 샌드박스 같은 정부의 지원에서 출현하다가, 마지막에는 사회경제적으로 수용되어야 성공하게 된다. 17 이 과정에서 기존기업 또는 전통산업의 노동자 단체가 혁신가를 공격하여 혁신동기의 싹을 자르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 셋째, 신산업구조를 전환할 때, 전통산업의 노동력 전환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KT의 전화교환원이 114안내원으로, 이들이 다시 콜센터 상담원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던 사례가 있다. 첨예한 갈등을 해결한 최근의 사례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우버가 서비스당 1달러의 부담금을 5년간 내고 이를 통해 거둬들일 약 2억 5,000만 달러(약 2,830억 원)를 택시 업계를 위해 쓰기로 합의한 것을 들 수 있다. 18 이러한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플랫폼 사업자 규제에 사용자, 이용자, 시민 단체와 정부 등이 참여하는 뉴욕의 택시 위원회 19와 같은 거버넌스 체계를 고려할 수 있다.
    • 넷째, 디지털 전환의 사회적 대화를 위한 디지털 숙의 민주주의의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2017년의 원전건설공론화 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인 숙의 민주주의 20는 참여의 양을 확대하기보다 참여의 질을 높이는 방식으로서 현 체제의 전환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참여하과정에서 시민의 의견과 선호가 변화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는다. 선출된 대표에게 공적 결정을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과정에서 일반 시민을 물론 관련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으로 참여의 내용을 심화하는 것이다. 이로서 복수의 대안과 그 효과를 검토한 후 결정할 수 있는 실천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기존의 오프라인 공론화위원회는 교통·숙박 등 참여의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의제설정만 오프라인으로 진행하고 정보공유, 토론, 투표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디지털 공론화 위원회를 도입해 보자.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민의 정치참여 비용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정당, 블록체인 기반 투표가 도입되어 기존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있다 21는 점에서 숙의 민주주의의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22
    • 이상의 내용에서는 혁신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보호·육성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숙의·토론을 제안했지만, 실행이 빠진 논의만으로는 디지털 전환의 빠른 속도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다섯째, 디지털 전환을 위한 실험국가(Experimental Government) 모델 23의 도입을 제안한다. 때로는 과감히 실험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하는 것이 부작용을 교정하고 효과를 거두는 더 나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적 저항을 경험한 유럽에서는 이러한 정책실험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폴리시랩(Policy Lab)이 약 80여 개 활동 중인데, 기본소득 등 재정정책뿐 아니라, 스마트교통·인공지능·자동화과 같은 디지털 전환 정책도 실험대상으로 삼고 있다. 24 해당 정책실험들은 국가수준일 때도 있지만 도시 및 지자체 범위일 때도 있어, 한정된 범위와 기간으로 실험하고 실패하더라도 배울 수 있다. 25 그래서인지 기획재정부에서도 인과관계 실험결과를 근거로 신규정책을 도입하는 폴리시랩을 시범도입 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26 정부가 이미 도입한 규제샌드 박스의 ‘실증특례’ 제도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효과도 있어 시범적용을 넘어선 본격적인 도입이 필요하다.
    • 한국은 지난 60년 전 시작된 한강의 기적에 이어, 지난 30년간 진행된 민주화로 국제사회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또 한번 산업구조의 전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산업화 이전 시대로, 민주화 이전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고 되돌아가서도 안된다. 그러니 유럽과 영국이 산업구조 전환에 늦게 대응한 사례를 거울로 삼자. 디지털 전환 갈등을 회피하거나 장애물이 아닌 혁신을 위한 에너지로 활용하는 인식전환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 1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 2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유래하였으며, 현대국가는 국민의 개인정보와 재산, 거래내역, CCTV 등 디지털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과 조직을 운영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경고하고 있다.
    • 3  김준연, 박강민, 강송희, 조원영, 유재흥(2018), <디지털 신산업의 혁신 생태계 연구>,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간보고서
    • 4  Rosenberg, N., & Nathan, R.(1982), 『Inside the black box: technology and 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 5  영국교과서 번역본, CefiaWiki
    • 6  김선빈(2008),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 어떻게 성공했나>, 대한민국정책브리핑 기고문
    • 7  Svennilson, I.(1954), 『Growth and stagnation in the European economy』
    • 8  박상훈(2017), 『민주주의의 시간』, 후마니타스
    • 9  민주정치에서는 정당이 갈등을 공적영역으로 옮겨서 갈등의 범위를 확대(사회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 하기도 한다.
    • 10  최광(2012)의 경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본이 다르다며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지 말라고 했지만, 택시, 물류, 의료와 같은 규제산업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라도 입법권을 가진 정치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 최광(2012),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본이 다르다>, 한국경제연구원
    • 11  비민주(권위주의) 사회에서는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억눌려 있다고 봐야 한다.
    • 12  박상훈(2017), 『정치의 발견』, 후마니타스
    • 13  H ård, M.(1993), “기술(혁신)은 이해관계와 (새로운)아이디어 간의 갈등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Hård, M.(1993), <Beyond harmony and consensus : A social conflict approach to technology>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18(4), 408-432.)
    • 14  버나드 크릭(2019),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짧은 안내서』
    • 15  195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옹호자인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예외이다.
    • 16  박상훈(2017), 『민주주의의 시간』, 후마니타스
    • 17  김준연, 박강민 외(2018)에서 Schot(1998)과 Geels(2011)을 인용
      - Schot, J.(1998), The usefulness of evolutionary models for explaining innovation. The case of the Netherlands in the nineteenth century. History and Technology, 4(3), 173-200.
      - Geels, F. W.(2011), The multi-level perspective on sustainability transitions: Responses to seven criticisms. Environmental Innovation and Societal Transitions, 1(1), 24-40.
    • 18  중앙일보(2018.10.24.), “우버는 지원금 내고 택시는 수용. 호주의 공유경제 해법”
    • 19  고유업무인 뉴욕택시의 면허발급뿐 아니라 2018년에는 우버택시 총량과 우버기사의 최저임금까지 결정했다. 뉴욕시 의회의 인준을 받아 뉴욕시장이 임명장을 수여한 상근 위원장 1명과 비상근 위원 8명으로 구성되며, 주요 정책과 법령에 대한 사항은 위원들이 회합하는 월례 정기 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시장은 그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한다.
    • 20  채영길(2017),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 세미나 발제문.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진흥 재단 공동 주최, 2017.11.23, 한국프레스센터. 서울.
    • 21  김준연, 유호석, 박강민, 조원영(2019), [세계화 4.0과 미래사회 : 새로운 디지털 사회에 대응하는 우리의 실천과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이슈리포트
    • 22  이상신(2015),[소셜미디어와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 한국정치연구 제24집 제1호
    • 23  Breckon(2015)를 김준연(2019)이 소개함
      - Breckon(2015), <Better Public Services Through Experimental Government>, Nesta
      - 김준연(2019). '디지털 혁명과 사회적 갈등',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 24  EU(2016), <Public Policy LABs in European Union Member States>, Nesta
    • 25  김현아(2018), ‘폴리시랩은 정부 혁신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LAB2050
    • 26  기획재정부, <2018 경제정책방향>,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