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를 위한 기술은 가능한가 (다운로드 : 285회)

김홍열 Kim, Hongyeol / 미래학회 이사, 정보사회학박사 Korea Association of Futures Studies, Director / firrenze@hanmail.net

인공지능은 코로나19를 해결할 수 있을까

영국 일간지 더데일리(The Daily) 3월 18일 온라인 버전에 올라온 코로나19 사태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이 현재 진행형이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국 정부가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싸움의 무기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부 운영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보건 서비스에 활용해 초기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이런 시스템적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체계화된 정보가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정책담당자가 있으면 감염 확산은 분명 축소시킬 수 있다. 물론 마지막 솔루션은 백신이다. 현재 많은 제약회사들과 전문가들이 백신 개발에 노력하고 있고 모두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세상 일이라는 게 사람의 희망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희생이 발생했고 끝도 모를 어둠의 공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백신 개발을 위해 우리가 기다려야 할 시간은 너무 긴데 눈 앞에서는 이웃이 계속 죽어가고 있고 다음 차례는 본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끝도 모를 시신의 관 뒤로는 끔찍한 경제 공황이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심각한 사태를 야기한 코로나19가 처음 중국 우한에서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적 가볍게 생각했다. 중국 사람들의 비위생적 식습관에서 비롯된 전염병이라고 여겼고 일정기간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고 판단했다. 사스나 메르스를 비교적 잘 극복했으니 이번 코로나19 역시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방역체계를 만들어 관리만 잘하면 독감 정도에서 끝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낙관론의 대표주자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유행 초기였던 지난 1월 22일 팬데믹을 우려하는 기자 질문에 “전혀 없다.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괜찮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2월 백악관에서 열린 비즈니스 행사에서는 “그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4월에는 사라지며 열기가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죽인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특유의 정치적 자신감도 한몫했겠지만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의 부재가 대책 없는 낙관론의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 비관론적 관점을 유지한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했고 실제로 빠른 시일 안에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트럼프만큼은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 역시 한때 코로나 조기 종식에 관한 낙관적 전망을 했었고 예측이 틀리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지난 2월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5개 경제단체장 및 6대 그룹 대표 등 경제계 인사와 긴급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매우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판은 해외 언론에서도 있었다. NYT는 3월 28일 자기사에서 “한국의 지도자가 전염병을 오판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아후 신천지 교회 신도인 31번 환자의 등장으로 자신감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여기에서 궁금중이 하나 생긴다. 고급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국가 지도자들이 왜 이런 실언을 했을까.

모든 판단은 기존 데이터에서 얻은 정보를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코로나19 방역 관련 정보는 이전에 발생했던 사스나 메르스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그 두 전염병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지금은 당시보다 보건방역 시스템이 더 체계화되어 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확장되다가 소강상태를 맞게 되면 낙관적 전망을 하기 쉽다.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과 방역 시스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국가 운영 시스템 등을 고려하면 국가 지도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조기 종식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이제 낙관론은 사라져 버렸고 끝 모를 공포감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코로나19는 처음 겪는 사건이라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도 인공지능은 코로나19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분명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인공지능이 코로나19를 이겼다고 볼 수 없다.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공지능의 역할은 미미했고 한동안 코로나 퇴치에 중요한 기여를 하리라고 예상하기 힘들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의학 전문가들의 창조적 해결 능력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국제적 연대와 국가의 후원 및 기업의 투자 등을 활용해서 백신을 만드는 능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사이 큰 희생이 불가피하겠지만 결국 전문가에 의해 백신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 인공지능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처럼 예외적인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결단력이다. 기술은 조연이나 스탭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맡겨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인공지능은 언제 주연이 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사상 초유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단지 하나의 유행성 전염병에 끝나지 않고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주범이 되었다. 한국에서 코로나 발병이 소강상태라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 성립 이후 일국만의 안전과 평화는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한국처럼 GDP 중에서 무역 의존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그 영향이 더 크다. 극적인 솔루션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지구촌은 오랜 기간 아마겟돈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한국은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세계 경제는 극도의 카오스로 진입했고 주식, 채권, 유가, 금리 등 모든 경제 지표들이 연일 폭락하고 있고 회복될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극단적 전망이 도처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1%까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석유파동이 있었던 1980년과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두 번뿐이다.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면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가 심각한 경제사회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미 한국사회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는 이전 두 차례의 불행한 경험보다 더 치명적 고통을 안겨 줄 것이라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도 일본도 계속 불안한 상태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확산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모든 국제적 혼돈 상태가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모든 나라가 코로나19를 치료할 백신 개발에 모든 나라가 집중하고 있다. 3월 22일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국립연구소가 인공지능이 탑재된 슈퍼컴퓨터 서밋(Summit)을 이용해 임상시험 중이거나 시판 중인 약물과 천연화합물 8천여 개를 분석해 77개 약물을 치료제 1차 후보로, 여기서 다시 2차로 톱 7 후보를 골라냈다고 한다. 일반 컴퓨터를 이용했다면 여러 달이 걸릴 일을 이틀 만에 끝냈다. 최종적으로 코로나19를 해결한 솔루션을 찾고 FDA 승인을 얻기까지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인공지능이 그 시간을 단축시킨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인공지능을 포함한 모든 과학적 지식과 기술로 코로나19를 예측할 수는 없었을까. 발생 초기에 왜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메르스나 사스에서 얻은 데이터, 정보 등을 저장하고 가공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실상 기술 만능주의 사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해서 작동하는 시대에 왜 이런 어처구니없이 보이는 사건이 발생할까. 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코로나19 관련 전문가가 없다. 인공지능에게 코로나19에 대해 알려줄 전문가가 없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바이러스라 누구라도 이 역병을 제어할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 박쥐 체내에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특이한 변이를 거쳐 인체 안에 들어오면서 사람의 면역 체계를 파괴시키고 죽게 만드는 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관련 데이터나 자료가 있을 수 없다.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돌연변이 과정을 거쳐 또 다른 종류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더 치명적인 전염병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예고 없이 예측 불가한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동물 몸 안에 있던 바이러스가 어느 과정을 거쳐 어떻게 진화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코로나19처럼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많다. 인류의 긴 역사적 시간을 생각하면 우리 경험의 시간들은 매우 짧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역경을 이기고 생존해 왔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마지막 승자가 된 이유는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는 지능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보건, 방역, 치료 시스템에 활용할 수 있다. 감염자 또는 감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고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백신이 개발될때까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내 증상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인공지능 역시 호모 사피엔스처럼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미리 혼란을 경험한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의 지식을 인공지능에게 전수하면 인공지능은 이전보다 진보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피엔스의 방향 제시다. 감독의 연기 지도가 탁월하다면 좋은 영화가 되고 당연히 주연이 돋보이게 된다. 감독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백지상태에서 감독 고유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주연은 완성된 시나리오 위에서 정해진 대사를 자기 언어로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둘의 순서나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일단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주연이 돋보이지만 최종 OK 사인은 감독만 내릴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의미 있는 주연공이 될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좋은 시나리오가 완성된 다음에 적절한 역할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만약 시나리오가 없다면 배역이 따로 존재할 수가 없다.

[표 1] 주요 윤리철학에 대한 인공지능의 관점
구 분 주요 철학자 윤리 철학적 개념 인공지능에서의 관점
기본적
인권 접근법
임마누엘 칸트 프라이버시나 자유처럼 구체적인 권리로 구현되는 공식 윤리 원칙 인공지능 시스템이 준수해야 하는 규정으로 이들 원칙을 보호
공리주의적
접근법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경제 비용편익 분석을 토대로 인간 복지를 최대화하는 공공정책 수립에 집중 누구의 복지를 극대화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며(예: 개인, 가족, 사회, 또는 제도/정부), 이는 알고리즘 설계에 영향을 미침
도덕윤리적
접근법
아리스토텔레스 사회가 일상생활의 가치를 위해 부여해야 하는 가치와 윤리적 규범에 집중 인공지능의 경우 어떤 가치와 윤리적 규범을 보호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제기

※ 자료 : “Artificial Intelligence in Society 2019 OECD. 번역 NIA P. 89” 저자 재구성

선의를 위한 인공지능은 가능한가

이제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선의를 위한 인공지능은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 선의 또는 사회적 윤리와 철학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OECD 2019년에 발간한 ‘사회 속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in Society)’에서는 윤리적 인공지능의 철학적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위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칸트의 기본적 인권에 관해서는 윤리철학적 관점이나 인공지능적 관점 모두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공리주의적 접근의 경우 인공지능은 선택의 딜레마에서 고민하고 있다. 쾌락에 기초한 개인의 공리가 최대치가 되도록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선이라고 벤담과 밀은 주장하지만 개인의 이익과 공리의 우선 추구가 사회적 공공복지를 담보하기는 보다는 오히려 파괴하는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벤담과 밀 이후에 태어난 인공지능의 설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복지 사이에서의 선택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특수한 상황에 따른 정책적 판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판단은 때로는 긴급하게 진행되기도 하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인공지능의 설계자들은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필요도 반대할 이유도 없지만 그들이 던진 과제에 대해서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현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윤리적 가치 하나하나는 다 소중해 보이지만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특히 인공지능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다. 어떤 가치와 윤리를 선택할 것인가도 고민스러운 주제고 가치 그 자체에 대한 개념 정의 역시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설계자들의 고민이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의를 위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 또는 인공지능을 선하게 활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존재하겠지만 그 내용에 들어가면 결코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 최종적으로 철학, 특히 윤리철학의 문제이고 국가 정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철학은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인공지능에게는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내재화되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의를 위한 인공지능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 분명해서 차마 피해 갈 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이미 사회 여러 분야에서 깊숙이 들어와 있고 우리 삶을 은밀하게 재구성하거나 조작하고 있다. 합리적 수준에서 문제 제기는 분명 필요해 보인다. 아니 문제 제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선한 역할을 하도록 사회적 감시 장치와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한 노력이 글로벌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선의를 위한 인공지능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와 인공지능의 변증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최근 코로나 사태 관련하여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인류는 코로나 위기를 맞아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고 하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민족주의적 고립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의 역량강화와 글로벌 연대의 길이다. 중국과 이스라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특정 국가들은 이미 개인의 생체정보를 활용해 코로나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평시에는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국가적 위급 상황이라는 명분 하에 전체주의적 감시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국가차원의 통제 시스템을 만들면 자유로운 개인이 설 땅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코로나19로 인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세계가 싫다면 합리적 시민과 단체들의 글로벌 연대를 조직하고 저항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활동에도 당연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활용이 필요하다.

전쟁, 자연적 재난,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등 인간이 일정 기간 동안 제어하기 힘든 참사는 늘 우리 주변에 숨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등장해서 참혹한 피해를 남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오로지 시간만이 유일한 솔루션이었지만 근대 자본주의 이후 과학과 정보가 유력한 솔루션으로 등장했고 이제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 역시 상존해 왔다. 러시아 혁명 이후 사람들은 좋은 세상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과학기술과 매스컴을 이용해 정적을 감시하고 여론을 조작하면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다시 장벽을 세우는 일이 너무 쉬워졌다. 조지 오웰이 자신의 소설 ‘1984’에서 묘사한 텔레스크린 사회는 이미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하에 시스템 구축도 쉬워졌다. 하라리가 주장하는 것은 명백하다.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좀 더 거시적 표현을 사용한다면 철학의 문제고 정책의 문제다.

코로나19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선의적 활용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역시 가능하다. 유발 하라리의 통찰력 있는 분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은 두 개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라리는 거시적 관점에서 갈림길을 말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갈림길은 숱하게 많다. 앞서 인용한 사회 속의 인공지능, 챕터 4 공공정책 고려사항에 보면 “인공지능은 인권 증진을 약속한다”와 “인공지능은 인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가 같은 페이지에 열거되어 있고, 다음 페이지에서는 “인공지능은 개인의 참여와 동의를 강화할 수 있다”면서 관련 솔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솔루션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는 범위 안에서 개인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권 문제 외에도 인공지능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얼굴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동화와 일자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선의는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보일 때,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동의로 그 내용과 형식을 변경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선의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그 내용뿐만이 아니라 처음 만들어진 알고리즘의 설계도도 공개해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기존데이터로 훈련을 받은 인공지능은 불의를 영속시킬 위험이 있다. 투명한 상태에서 공개되고 여론에 의해 알고리즘이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수정된 알고리즘에 의해 운영되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더 나은 결과물을 찾는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역시 선의의 변증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는 인공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못했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했을 것이고 자기 학습을 통해 유사한 다음 사태에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이러스와 인공지능, 달리 표현하면 문제와 솔루션은 상호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우리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사이를 중재하는 것은 물론 투명한 시스템이다.

키워드 인공지능 코로나 월간SW중심사회 202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