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산업, 큰 그림을 그리자 (다운로드 : 73회)

2016년 출시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와 HTC 바이브(Vive)는 그 전과는 차원이 다른, 한마디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충격적인 경험을 선사하였고 가상현실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어서 출시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반의 포켓몬 고(Pokémon GO) 게임도 출시 반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6억 회를 달성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바야흐로 실감기술(Immersive Technology) 대중화 시대의 막이 열렸다는 기대가 한껏 높아졌었다. 그러나 장시간 사용 시의 어지러움, 무게감으로 인한 착용의 불편함, 3D 콘텐츠 부족을 포함한 여러 한계로 인해 실감기술은 아쉽게도 일부 게이머(Gamer)들만의 전유물로 남겨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본격화된 실감기기의 기술적 진전과 게임 외의 교육, 제조, 재난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사례가 늘어나면서 실감기술 재도약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출시된 실감기술은 이전 세대 기술과 분명히 구분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과거 PC 기반의 VR 헤드셋(Headset)은 고사양의 PC 연결이 필요하므로 주로 고정된 장소에서만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PC에 연결하지 않고 독립적인 구동이 가능한 무선 올인원(All-In-One) 형태의 VR 헤드셋들이 출시되면서 어디서든 가상현실 접속이 가능해지고 있다. 무게 측면의 진전도 뚜렷하다. 2020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무거운 헤드셋 형태가 아닌, 무게도 가벼워지면서 착용감이 한결 개선된 안경형태의 VR 글래스(VR Glasses) 시제품이 등장하였다. 또한 가상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물리적 감각을 더하기 위한 다양한 햅틱(Haptic)기기들도 전시되었다. 예로서 테슬라수트(Teslasuit)社의 햅틱기기는 장갑처럼 손에 착용하면 가상물체를 손에 쥐는 듯한 물리적 촉감까지 전달해준다. 이외에도 신발 형태, 밴드 형태의 다양한 햅틱기기를 통해 더욱 실감나는 사용자 경험이 가능해지고 있다. AR 분야에서도 안경형태의 AR 글래스(AR Glasses)와 햅틱기기 신제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실감기술이 발전하면서 활용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실감기술을 활용할 때 학습효과가 상승하고 교육시간이 절감되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社인 액센츄어(Accenture) 보고서에 따르면, VR을 이용한 수술교육을 실시한 사례에서 수술 중 실수가 기존보다 40% 감소한 바 있으며, 소매 산업에서는 실감기술을 활용하여 교육 시간을 80%까지 단축시킨 사례도 있다. 제조업 등의 업무현장에서는 재직자의 업무지식을 AR로 기록하여 교육하는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문서작성 시간과 교육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의료 산업에서는 VR을 활용한 트라우마 치료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의학교육 및 훈련, 재활 치료 분야에서 실감기술 활용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국방, 재난·안전 등의 공공 분야에서도 가상환경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훈련하면서 실제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같은 특정 상황으로 인해 현실공간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운 수요가 생길 때도 실감기술은 효과적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실감기술을 활용한 문화생활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을 활용한 원격회의, 쇼핑 같은 다양한 응용사례들을 만들 수 있다. 실감기술을 이용하면 원격회의의 몰입감이 더욱 증가하고 3D 모델을 통한 원거리 설계가 가능하다. 다수가 모여야 하는 신제품 품평회도 가상공간에서 진행할 수 있다. 향후 비대면(Untact) 방식이 보편화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실감기술 활용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감기술의 지속적인 개선과 발전, 교육, 의료, 국방, 재난·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감기술과의 융합이 본격화되면서 실감기술은 이제 국가의 새로운 성장을 이끄는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Innovate UK는 2018년 발표한 정책보고서 “The Immersive Economy in the UK”를 통해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실감기술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제는 실감기술이 산업혁신과 새로운 혁신의 가치창출에 기여하는 공통된 핵심기술, 즉 범용기술(General-Purpose Tech.)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에 실감기술로 경제, 사회,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실감경제” 개념을 제시하고 정책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주요국들도 이미 실감기술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며 국방, 교육, 제조 등의 다양한 공공·산업 분야와의 융합을 추진하면서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우리 정부도 2019년 9월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 2019년 10월 「실감콘텐츠산업 활성화 전략」 발표를 통해 국내 실감콘텐츠 산업발전을 위한 거시적 관점의 정책지원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제는 산업·공공분야에서 실감기술이 촉발할 혁신의 기회들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로 실현하고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계획을 마련해야 할 시기이다. 국내 실감산업은 해외에 비하여 규모가 작고 핵심기술력이나 인재역량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실감산업 발전에 필요한 이동통신 인프라와 제조·디스플레이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최초로 상용화한 5G 인프라를 기반으로 산업·공공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도 강하다. 실감기술의 기회와 우리의 강점을 잘 활용한다면 경제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혁신성장의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신성장동력 창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실감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활용 효과 가시화에 따라 실감기술과 산업간 융합의 범위는 계속 확대되고 산업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실감기술의 영향력을 단지 게임이나 일부 파생영역으로 한정짓는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큰 변화와 발전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실감기술의 발전과 이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대한 면밀한 관찰, 한 세대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는 선제적 대응 관점에서 큰 그림을 담은 국가적 대응전략을 준비할 시기이다.

키워드 실감산업 월간SW중심사회 202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