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능적 행위자(Empowered Actor)로서의 정부: 모방을 넘어서는 혁신
- 그렇다면 정부가 복합적인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역할 변화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동형화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배태된 행위자(Embedded Actor)로서의 조직은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행동하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이익과 선호가 형성된다. 하지만 역능적 행위자로서의 조직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상의 분야까지 관여한다. 과거 정부의 역할은 공공 서비스 제공에 한정되었다. 정책과 행정의 영역은 정부가 담당하고, 기술 개발과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양자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회문제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행정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정부의 역할은 확대되고 민간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이 주도하던 기술 혁신과 문제 해결의 영역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협력하는 주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즉, 정부는 책임성, 공공성의 가치를 중시하던 본연의 역할을 넘어 효율성, 혁신성의 가치에도 주목하는 능동적 행위자로 변모하였다.
- GovTech의 도입과 확산 과정에서도 정부는 기술의 수요자나 모방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을 자국의 행정 구조와 사회적 맥락에 맞게 재설계하고 정착시키는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단지 시스템을 구매하거나 타국의 정책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해당 기술이 국가의 법체계, 데이터 인프라, 조직 문화와 충돌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조정(Adapt)하거나 재설계(Reframe)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반의 민원 처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민간 기술의 적용과 협력, 행정 데이터의 구조화,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 인정, 부처 간 권한과 책임 배분 조정 등 복잡한 제도적 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리더십과 설계 역량이며, 이는 GovTech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 또한, GovTech의 실현에 있어 정부는 민간 기업, 시민사회, 스타트업 등 다양한 주체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의 도입뿐 아니라 운영 모델, 법제도 정비, 실증 생태계까지 설계한다. 이는 곧 기술 기반 공공 혁신의 설계자이자 실행 촉진자로서 정부의 새로운 정체성이자 역능적 행위자성의 발현을 보여준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GovTech 사례를 살펴보면, 기술의 성공 여부는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정부의 역량과 전략적 선택, 그리고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하였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와 같이 GovTech를 선도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가 해당된다. 다음 챕터에서 각 사례를 중심으로 각 정부가 어떻게 이러한 능동적 행위자성을 발휘하며 GovTech를 제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