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2015년 1월 새해를 시작하는 시기에 출판된 책 한권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다름 아닌 삼성출신 저자가 출판한 ‘삼성의 몰락’이 그것이다. 작년 여름 이건희 회장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삼성의 미래에 대해 다소 어두운 전망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몰락’을 논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2013년 삼성은 184조 원을 달성한 애플보다도 약 20% 이상 높은 228조 원의 매출을 달성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2년도 채 안된 지금 ‘삼성의 몰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삼성은 애플보다 늦게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갤럭시 폰의 성공과 특유의 집중력으로 세계 1위를 거머쥐었고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의 제조는 물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까지 거의 모든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전략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울듯하다. 우선 ‘국제생산분업체계’에 편입해서 세계의 공장으로 기능하며, 탄탄하게 제조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업체를 당할 수가없다. 가격경쟁력과 플랫폼으로 무장한 샤오미와 화웨이 등 중국기업이 자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삼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제품 차별화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영업채널과 중국인 수요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삼성이 오히려 한참 뒤처진 형국이다. 이제 삼성은 세계시장에선 애플을 못 따라가고, 중국시장에선 현지 업체에 밀리는 위기 상황이다. 사실 세간에 떠도는 삼성 위기론의 핵심은 ‘매출감소’의 문제라기보다, ‘혁신실종’이라는 것이 옳은듯하다. 그간 우리의 성장방식은 구글과 애플처럼 혁신주도형 성장이라기보다 모방을 통한 추격형 성장을 유지했었다. ‘혁신주도형 기술경로창출전략(pioneer)’은 초기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후발자의 모방형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역량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한 전략이다. 반면 우리에게 익숙한 ‘추종자 전략(Follower)’의 경우, 대안 기술의 선택과 초기 시장개척의 부담은 덜한 대신, 선발자의 견제와 동급 기업간에 상호 경합(Adding up)으로 인해 동반 몰락하는 ‘중간자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그간 선발자와 기술격차를 최소화하고 중국과 같은 후발국가와는 차별화하여 성장했지만, 경쟁자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 제고된 지금, 재빠른 추종자(Fast Follwer) 전략만으로는 추가 성장이 어려운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구글과 애플 같은 혁신주도형 기업의 전략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딜레마다. 다소 늦은 감도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드론, 무인자동차, 스마트와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지는 SW의 경이로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 기업의 기술능력과 혁신역량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없이는 산업경쟁력을 논할 수 없고, 산업이 없는 국가경쟁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 몰락론’의 현실 가능성을 떠나서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SW중심사회에 걸 맞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하고 변화와 진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어진 숙제가 쉽지 않지만, 국내 SW기업들은 과거 애플쇼크와 같이 선발기업의 파괴적 혁신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당황스런 상황(후발자 위기)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노키아나 모토로라와 같이 새로운 기술동향을 무시하다가 추락하는 선발자 함정에도 빠지지도 말아야 하며,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의 출현 시기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추락하는 선도 진입의 패러독스를 경계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그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 기업의 역량수준에 맞는 기술과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다. 기술과 시장에 대한 전략은 크게 선도 혹운 추종의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선도전략은 먼저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기술리더쉽, 자산의 조기 선점, 지배적 디자인 선점 등의 효과로 인해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선도기업은 높은 사망률을 갖기도 한다. 이는 후발기업의 무임승차, 선발자 고착효과, 기술과 시장의 불확실성 등의 문제에 기인한다. 이렇기 때문에 그간의 추종전략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선도전략을 바로 채택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특히 우리 기업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개발과 시장선도에 대한 전략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흥미로운 논의는 마키데스와 게로스키(2005) 등이 주장하는 기술진입전략과 시장진입전략을 다르게 구사하는 전략이다. 일종의 선도와 추종의 중간적 모델이기도 한데,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은 대안 기술에 대한 선도적 개발은 유지하면서 최초로 개발된 제품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때를 선별해서 시장에 진입하고 단기간에 장악한다. 이후에는 디자인과 제품과 관련된 기술발전의 트랜드를 주도한다. 이들 기업 중에는 기술의 표준이 형성되는 시기에 진입하여 전체 플랫폼을 형성에 기여하는 기업도 존재한다. 사실 이렇게 기술과 시장을 구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혁신전략은 합리주의적 접근, 즉 시장의 상황에 따라 목표 설정→전략수립→실행→평가라는 일련의 선형적 접근인데, 문제는 기술과 시장 등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하고 불확실해서 이를 인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극복방안으로 크리스텐슨, 레이너 등이 주장하는 ‘더듬이형 접근전략’, ‘출현적 접근전략’이 있다.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들은 아이디어의 창출-선택-실행과정, 즉 혁신과정이 다르다. 첫째, 아이디어 창출과정에서는 기술적 혁신이 어느 영역에서 출현할지 모르지 때문에 기술경계를 넘어선 탐색을 하고, 지식의 증발을 막기 위해 사내 유보에 대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지식 브로커(broker) 등을 통해 아이디어 포착-유지-새로운 조합-테스트의 과정을 거쳐 가능성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활동을 한다(Hargadon, Allen). 둘째, 선택과정에서는 성능의 성숙도와 수익성이 낮은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가 기업의 재무적 판단에 의해 기각되지 않도록 평가와 선정기준을 달리 설정하고 있다. 즉 기업의 자원배분필터가 다르다. ‘삼성의 몰락’에서 저자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실행과정에서는 연구-개발-상용화의 통합의 중요성과 더불어 생각(think)을 모사(play)하는 역량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다(Dodgson). 모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련 연구가 상당히 활발한 편인데, 실제로 유럽기업은 연구자의 5-10%의 시간을 ‘몰래하기(bootlegging)’에 쓰고 있으며, Pre-Project의 성격을 가지며, 연구자개인의 호기심 충족이나, 심지어 조직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사업도 포함된다고 한다(Augusdofer, 2006). 3M, 셀텍과 일본제철의 사례연구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10-15%의 시간을 개인적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이들 혁신기업들은 기획단계의 신중함보다 아이디어의 실행을 강조하고 대안에 대한 분석보다는 대안 없이 ‘일단 해보기(모사)’를 통해 ‘계산된 위험(estimated risk)’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보자.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혁신과정을 기업규모나 조직구조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업규모와 조직이 혁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크게 규모의 경제와 자금 등 자원동원에 유리한 ‘대기업 우월론’과 조직적 융통성이 높은 ‘혁신적 중소기업론’이 있다. 그런데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대기업을 포기할 수도 없고, 중소기업은 아직 혁신적이지 못한 우리의 상황은 대기업도 살고, 중소기업도 성장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쉽지 않은 숙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논의되는 효율성과 융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느슨한 결합 구조(loosly coupled model)’나 양립형 구조(ambidextrous), 즉 여러 개의 독립적인 사업조직을 가지는 기업구조에 대한 논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삼성전자가 추진했던 사업부서별 독립채산제도 이러한 양립형 구조의 변형인데,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의 최근 이슈를 보면 신사업의 추진과 조직 구성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혁신과정에 따른 기업조직에 대한 논의에 빠질 수없는 것이 기업문화와 외부연계에 대한 논의이다.

불확실에 대응하는 기업문화에 대해서는 새로운 것을 하게하는 분위기, 실패에 대한 관용의 수준, 직원의 아이디어에 대한 기업차원의 관심과 보상체계 등에 대한 담론이 있으며, 외부연계에 대해서는 개방형혁신, 사용자혁신 그리고 공급자혁신 등에 대해 다양한 모델과 실험이 진행 중이다. 상명하달(top-down)의 분위기와 불합리한 하도급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기업문화로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어떻게든 대안을 찾지 않으면 혁신경쟁에서 밀리고, 추락하는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몰락’ 저자는 “샤오미가 사용자와 직접 접촉을 통해 시장을 이해하는 ‘사용자혁신’을 강조한 반면, 삼성은 외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빅데이터라는 정체가 모호한 대상에 의존해 시장을 이해하려 들었다”고 꼬집고 있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즉, 산업내 1위 기업들은 종종 기존의 사업모델에 고착되어 새로운 트랜드에 대한 대처가 느리고, 후발기업들은 오히려 도전적이며 자원집중을 통해 시장을 재편한다는 뜻인데, GM, 소니 그리고 노키아가 1위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추락했고, 삼성이 2013년 애플보다 20% 많은 매출을 기록한 시점이 2년도 안된 지금 ‘삼성 몰락론’이 나오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또한 최근에는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 업체의 반격이 무섭다.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은 우리와 승부처가 달랐지만, 지금 중국 업체들은 우리 기업과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고 있어 더 위협적이다. 결국 우리 기업은 혁신과정, 조직구조, 문화와 외부네트워크까지 거의 모든 걸 바꿔야 살아남을 듯하다. 이는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어려운 이야기지만, 아직 완전한 추락하지 않은 지금, ‘한국형 혁신기업 모델’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으면 언재 할 것인가?

키워드 월간SW중심사회 201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