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가과학기술의 혁신을 위해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글로벌 경제·안보 패러다임을 급속하게 바꿀 3대 게임체인저 기술 이니셔티브를 심의·의결하였다. 세 가지 핵심 기술은 AI-반도체, 첨단바이오, 퀀텀(양자)이다. ‘AI-반도체’는 AI와 반도체 기술을 결합하여 고성능·저전력 반도체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첨단바이오 기술’은 생명·건강과 직결되는 기술로서 혁신기반기술과 고품질 데이터의 결합으로 바이오 가치사슬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퀀텀’은 양자 컴퓨팅과 통신 기술을 개발하여 미래의 정보처리와 보안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것을 추구한다. 이처럼 세 가지 기술은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이지만 난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적을 지닌다. 세 가지 기술의 효과적인 확보는 환경, 조직, 협력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시스템적 사고와 전략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전체 숲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시스템적 사고를 통한 접근과 세부 전략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한다.
1. 환경, 조직, 협력의 ‘시스템적 사고’로 접근하라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은 공통적으로 ‘시스템적 사고’를 요구한다. 시스템적 사고는 환경, 조직, 협력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즉, 각 기술을 둘러싼 환경을 비롯하여 정부,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조직 차원의 대응 전략, 주체 간 협력에 대한 파악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시스템적 사고가 이루어질 때 세 가지 기술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각 기술은 고유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환경적 요인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의결한 각 기술의 이니셔티브를 통해 확인된다. AI-반도체는 AI와 반도체 산업이 결합한 분야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AI 기술과 데이터 수요에 의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발전 속도만큼 복잡해지는 기술, 데이터 센터의 확장, 에너지 효율 등이 중요한 환경적 요소로 작용한다. AI-반도체 이니셔티브는 ‘인공지능 G3 도약, K-반도체 새로운 신화 창조’를 비전으로 저전력 AI-반도체 달성, 글로벌 R&D·현지 실증 등 새로운 수출산업화 전략적 지원을 제시하였다. 차세대 범용 AI(GAI), 경량·저전력 AI, AI 슈퍼컴퓨팅 등의 중점기술과 거버넌스 차원에서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설립, 글로벌 AI 리더십 지속을 위한 ‘AI 서울 정상회의’ 개최도 주목된다. 에너지 효율은 중점기술들을 통해 강조되고, 기술적 복잡성과 같은 환경적 요인은 AI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혹은 파급효과를 함께 고민하기 위한 넓은 거버넌스를 통해 드러난다.
첨단바이오는 저출산·고령화 시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맞춤형 의료 등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연관된다. 이에 관련 수요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으며 데이터 활용, 신약 개발, 유전자 편집 등과 같은 환경적 요소가 존재한다. 첨단바이오 이니셔티브는 이러한 첨단바이오의 환경적 요소를 파악하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민국 새로운 성장 DNA, 제2의 반도체 신화 첨단바이오’라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니셔티브에서 제시한 9대 중점기술에는 첨단바이오의 환경적 요소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한국인 100만 명 빅데이터, 인체 표준 분자지도와 같은 바이오·의료 데이터 기술은 첨단바이오에 있어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AI 신약과 첨단의공학, 혁신기반기술은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신약 개발과 유전자 편집이 지속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환경 요소임을 시사한다.
양자 기술은 상용화 초기 단계로 매우 복잡한 기술적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고비용 인프라, 장기적 연구의 필요성, 제한된 인력과 지식 등이 환경 요소로 꼽힌다. 퀀텀 이니셔티브는 ‘양자과학기술 대도약, 디지털을 넘어 퀀텀의 시대로’라는 상대적으로 큰 비전을 제시하였다. 양자 기술은 타 기술에 비해 상용화 초기 단계에 속하고 복잡한 기술이기 때문에 한 단계 도약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니셔티브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2030년까지 양자 전문인력을 1천 명 이상 확보하고 5개 이상 기술 선도국과 정부 간 신규 퀀텀 협력 추진하겠다는 전략이 등장한다. 즉, 고비용 인프라를 요구하지만, 제한된 인력과 지식의 어려움이 있는 양자 기술의 경우 단기간에 무리한 기술 확보 전략을 제시하기보다는 장기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전문인력양성과 산·학·연 연구 거점 구축, 기술선도국과의 교류와 같은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환경적 요소에 대해 파악했다면 다양한 조직들의 대응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는 각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연구개발(R&D)을 지원해야 한다. 고비용 인프라와 전문인력이 필요한 분야에는 장기적인 투자를 고려해야 하며, 신기술의 빠른 상용화를 가능하게 하는 규제 혁신과 기술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나아가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여 국제적인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기술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준회원국으로 가입된 EU의 Horizon Europe과 같은 다자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기업은 혁신적인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자체 R&D를 통해 시장 수요에 맞는 제품을 빠르게 상용화하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스타트업, 연구소, 대학과의 협력을 추진하여 혁신적인 기술을 발굴해야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흥 시장을 개척하고 해외 연구소와의 협력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기초 과학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각 기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첨단 기술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 과정에 대한 혁신을 고민하고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현장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각 조직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도 모든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협력할 때 시스템적 사고가 비로소 가능하다. 게임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은 그만큼 기술의 복잡성과 고도화로 인해 다양한 주체가 가진 자원과 역량을 결합할 때 효과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력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상호 보완적으로 기술을 확보해 나가는 전략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2. 광범위 협력을 통해 융합을 주도하라
결국 세 가지 기술의 확보 전략은 광범위한 협력과 융합연구가 핵심이다. AI-반도체는 특히 전 세계적으로 핵심 기술로 부상하였다. 개별 기술에 대한 관심을 넘어 자율주행, 스마트 시티,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고성능·저전력 반도체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1일부터 22일 서울에서는 AI 안전, 혁신, 포용을 주제로 한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개최한 ‘AI 서울 정상회의’가 진행되었다. 세계 여러 지도자들과 CEO들이 모여 협력을 통해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AI 거버넌스의 원칙을 제시하고 세 가지의 융합적 키워드를 주제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반도체는 게임 판도를 바꾸는 혁신적 기술인만큼 앞으로도 일자리, 윤리 문제 등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발생시킬 것이다. 따라서 AI-반도체로 발생할 위기까지 염두에 두고 국내·외 다학제적 협력과 융합을 주도하여 혁신 기술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관련 이슈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 첨단바이오와 퀀텀 역시 광범위한 협력과 융합이 필수적이다. 첨단바이오와 퀀텀 이니셔티브는 각각 우수 기술기반 창업 환경 구축과 산·학·연 양자 연구거점 구축을 추진전략으로 제시하였다. 최근 AI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급증하면서 AI를 활용한 창업 기업이 다수 등장하였지만 다른 두 기술도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 첨단바이오는 식량·기후변화 등 다양한 사회문제와 직결되고 퀀텀은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기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 소셜벤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산·학·연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모든 기술은 미국, EU, 영국 등 선도국과 선도기관과의 융합연구가 필수적이다. Horizon Europe의 사례를 보면, 유럽은 유럽 전역을 단일 연구지대로 구축하여 재정을 투자하는 연구혁신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2021년부터 2027년까지 7년간 955억 유로(약 138조 원)를 지원한 것은 연구혁신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다. 막대한 투자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협력과 융합을 통해 과학기술의 개방성이 확대되고 혁신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준회원국으로 가입되어 글로벌 협력의 길이 더 열렸지만 이를 벤치마킹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국가, 기업, 인재와의 교류를 추진하고 다양한 연구 컨소시엄을 구축해 나간다면 융합을 통한 기술 확보가 가속화될 것이다.
3. 지방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기회를 넓혀라
지방은 산업의 디지털 혁신이 실제 구현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스웨덴 말뫼는 한 때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말뫼의 눈물이라 불렸는데 디지털·바이오 등 신사업이 성장하면서 말뫼의 웃음이라 불릴 정도로 현재는 지역의 모습이 탈바꿈되었다. 지역 내 조선업의 상징이었던 대형 크레인은 철거되었고 54층 빌딩 터닝 토르소를 중심으로 신산업 육성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지방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전략의 요충지다. 우리나라도 여러 지방에 다양한 자원과 기회가 존재한다. 스마트팜, 스마트공장과 같은 1, 2차 산업의 디지털 혁신은 해당 산업을 먹거리로 삼아온 지방에서 이해도가 가장 높다. 따라서 지방을 디지털 혁신 구현의 테스트베드로 삼는다면 각 지역의 자원과 특화 산업을 적극 활용해 산업의 디지털 혁신 구현을 앞당기고 게임체인저 기술의 확보가 빨라질 수 있다.
첨단바이오를 예를 들어 보자. 첨단바이오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탄소중립 등 인류가 당장 체감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술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바이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 및 기술교류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우수인력 교류 및 공동연구, 기업지원 등을 협력하였다. 노력의 결과로 강원도는 지난 6월 바이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유치하였고, AI 기반의 신약개발과 중소형 CDMO(연구개발단계부터 임상, 제조 등 모든 과정을 서비스화한 사업) 거점으로 조성되는 성과를 얻었다. 또한, AI 헬스케어 글로벌혁신특구 등 바이오 인프라와 항체산업, 디지털헬스케어·의료기기 등 주변 지역과의 연계·확장을 통해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추진한다. 이전에도 강원도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대상으로 규제자유특구가 지정되었기 때문에 첨단바이오 기술 확보의 길이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 외에도 전북특별자치도는 탄소 융·복합 산업을 대상으로 규제자유특구가 지정되어 있고, 광주광역시는 AI 융합 선도도시, 경상북도는 메타버스 수도, 전라남도는 에너지·농업 디지털 혁신을 내세우는 등 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지방 도시들은 디지털 기술과 혁신에 대한 갈망이 높기 때문에 이를 기술 확보의 기회로 연결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지역의 세계화’에 대한 고민도 제안해본다. 지역의 세계화는 특정 지역이 글로벌 차원에서 상호교류가 활성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지방정부는 2023년 12월 기준으로 91개국 1,384개 도시와 1,873건의 국제교류를 진행 중이다. 즉, 지방정부의 해외 자매결연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혁신기술의 시장성 검증 기회를 살리고 기술 확보의 기회가 증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술 확보를 위해 지방 테스트베드 전략을 활성화하고 지역의 세계화를 통해 기회를 넓힌다면 게임의 판도가 빠르게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4. 게임의 흐름을 바꾸는 전략의 유기적 연계
AI-반도체, 첨단바이오, 퀀텀 기술의 확보는 단순한 개별 기술의 발전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AI-반도체는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첨단바이오는 맞춤형 의료, 신약 개발을 가속화며, 퀀텀은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적 발전으로 과학과 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수 있다.
시스템적 사고를 통한 접근과 광범위한 협력, 지방 테스트베드 전략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기술의 확보는 환경에 대한 이해, 조직의 대응, 광범위한 협력이 필요하고 지방을 테스트베드로 삼는 전략도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산·학·연 등이 함께할 때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전략의 추진으로 세 가지 기술의 확보를 앞당겨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중요한 순간에 게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