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2차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가슴이 아팠다. 알파고 논문을 분석했고, 인공지능 연구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기도 알파고쪽에 걸었던 내가 이럴 정도니 일반인은 오죽 했을까 싶었다. 냉정을 되찾고 돌아보니 원인은 이세돌9단의 표정이었던 것 같다. 혼신을 다하는 고뇌에 쌓인 얼굴에 공감하며 잠깐동안 나도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 이입돼 인간편 응원단이 되었던 것 같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의 승리다. 이번 알파고 벤치마크 테스트를 통해 인간을 더 편하게 하고 덜 아프게 할 수 있는 기술의 작은 성취를 확인했다. 바둑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의사결정 과정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에게 맡기고 인간은 결과를 검사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역할을 하는 때가 가까와졌다. 예를 들어 알파고 때문에 암의 극복이 빨라지고 신약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면 이세돌9단을 이긴 것은 충격이 아니라 감탄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은 단어의 정서적 울림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와 실패를 동시에 겪으며 조금씩 발전해 왔다. 컴퓨터가 발명 되자 마자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금방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수 년간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 알려지자 관심은 급속도로 식었다. 전문가의 지식을 규칙의 형태로 표현하고 추론하는 전문가시스템이 등장했을 때와 신경망 학습을 위한 역전파 알고리즘이 발명됐을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신경망을 학습시키는 확장성의 한계가 드러난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인공지능은 암흑기였다. 그러다 조용히 연구를 진행하던 몇 명의 연구자가 이론적으로 이같은 제약을 넘어설 방안을 제시하였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컴퓨터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대용량 학습데이터가 축적되면서 구글과 페이스북이 신경망으로 실용적 수준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이 대형 신경망의 학습방법인 딥러닝이며 인공지능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고 있다.

인터넷 검색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자연어 처리와 지식 표현 등 인간의 지식을 활용하여 추론하는 기호형 인공지능의 연구개발도 꾸준히 진행됐다. 애플의 지능형개인에이전트 시리가 이 시기의 연구에 기반한 기술이다. 그러나 기호형 인공지능의 성능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IBM 왓슨컴퓨터의 저파디 퀴즈대회 우승이다.

알파고의 의미는 바둑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호형 인공지능에서 오랜동안 개발해 온 방법에 딥러닝을 사용한 신경망을 결합하면 품질이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알파고 추론의 기본 구조는 오래 전에 고안된 기호형 인공지능의 게임트리 탐색 기술이다. 알파고에서 개선된 점은 과거에 “휴리스틱”이라는 주관적 계산 결과에 따라 탐색하던 부분을 정책망이나 가치망이라는 신경망을 이용해 더욱 정확하게 계산하도록 한 것이다. 휴리스틱은 인공지능의 논리 추론, 계획 수립 등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딥러닝이 유행하면서 이미 인공지능 연구를 수행하는 여러 곳에서 시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기호형 인공지능과 신경망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통합되는 시대이고 그것을 눈 앞에 보여준 것이 알파고이다.

알파고와 왓슨컴퓨터의 사례는 인공지능 연구가 제한된 실험실 환경 대신 현실의 구체적 목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의 DARPA 그랜드 챌린지는 수년간 공개 경진대회를 운영한 결과 자율주행차의 실현을 앞당겼다. Kaggle.com에서는 현실의 문제와 데이터를 제공하고 우승자를 포상하는 문제해결 콘테스트를 열어 기술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또 공개 소프트웨어 문화와 데이터 공유를 통해 외부의 창의력을 흡수하고 고급 인재를 확보하는 목표를 추구한다. 구글의 텐서플로우, 마이크로소프트의 CNTK, 페이스북의 FAIR 등 딥러닝 관련 소프트웨어의 공개는 외부 개발자의 참여를 통해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개선하고, 이런 활동을 통해 좋은 인재를 먼저 발탁하려는 치열한 경쟁의 표시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소스코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개발한 인재와 기업에 축적된 데이터, 조직내 시스템이라는 점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서는 필요할 때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현실적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하려면 충분한 규모의 컴퓨팅 파워가 중요한 것이다. 알파고는 구글의 인프라를 사용하여 고성능 분산처리 시스템으로 구현되었고 왓슨컴퓨터도 여러 대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저파디 퀴즈대회에 참가했다.

알파고 덕분에 정부와 국민이 모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 분위기를 몰아 정부가 인공지능 기술의 육성을 위해 나선다면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구 자체를 정부주도가 아니라 민간주도로 하고, 정부는 연구 지원 환경을 제대로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위해 공개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고 만들어서 공유하고, 강력한 컴퓨팅 파워를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연구그룹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일종의 '키다리 아저씨'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9단의 대결을 계기로 정부는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인공지능 연구에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우려대로 여기저기서 걱정과 비난의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만 생기면 새 조직을 만든다는 냉소적 반응도 과거 사례를 돌아보면 이해 안되는 게 아니다.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 생기는 연구소가 기존 연구소와 확실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야 이런 비난을 칭찬으로 바꾸고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연구원 계약제, 과제 기간이 끝나면 연구원도 함께 계약이 끝나는 프로젝트 일몰제, 연구팀 자율성 등 최소한의 변화된 형태를 새 연구소에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냉소가 사실로 바뀌고, 인공지능은 제자리 걸음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부양할 연구소만 하나 더 생겨나는 것이 한국에 남긴 알파고의 유산이어서는 곤란하다.

키워드 인공지능 알파고 연구개발 월간SW중심사회 201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