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와 대한민국 인공지능 정책방향 (다운로드 : 105회)


지난 7월 1일 한일 갈등이 고조되던 시점,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만남이 이뤄졌다. 24조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일본 최대 부호로 선정한 손정의 회장은 1957년 일본 큐슈 사가현에서 출생한 재일교포 3세다.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의 정재계 인물을 만나 비전을 공유하고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협력을 해왔다. DJ 정부 시절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초고속인터넷 육성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소프트뱅크벤쳐스 코리아를 설립하여 100여 개에 가까운 우리나라 스타트업에 2천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번 만남에서 손정의 회장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강조하며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기술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때마침 우리 정부도 관계부처가 모여 출범한 지능정보사회추진단이 약 3년간 운영되어 인공지능 분야 R&D 정책을 마련하고, 인공지능 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인공지능 시대로의 전환에 토대가 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원회 역시 규제·제도혁신 해커톤을 통해 신기술을 도입하여 산업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혁파하고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인공지능 정책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손정의 회장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손정의 회장은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그동안 잘 해온 것, 익숙한 것과 과감히 결별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손정의 회장의 진면목은 자산의 규모가 아니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갖고 소프트뱅크라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탈바꿈해왔다는 데 있다. 16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손 회장은 전자번역기를 발명하여 샤프에 판매하고 일본 중고게임기를 미국으로 수입하는 등 이미 학창 시절부터 사업 수완을 발휘한 인물이다. 1980년 버클리대를 졸업한 후 개인용 컴퓨터(PC)가 모든 가정에 보급될 것을 예견하고 이듬해 일본에 돌아와 유학시절 마련한 사업밑천으로 소프트뱅크를 창업해 PC용 소프트웨어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창업한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 첫 번째 변신을 단행한다. 당시 인터넷의 확산에 발맞춰 일본 최대의 포털 사이트인 야후재팬을 설립하고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에 초기 투자한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손 회장의 화두는 통신으로 바뀐다. 2004년 일본통신을 인수하여 유선통신사업을 시작했고, 2006년 보다폰재팬을 인수하여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든다. 2013년에는 미국 4위 모바일 사업자 스프린트를 인수하여 미국통신시장에도 진출했다. 인수 당시 스프린트는 만성적인 적자 구조에 허덕였으나 수익성을 개선하여 2015년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2015년 3월 손정의 회장은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등 디지털 신기술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내용의 ‘소프트뱅크 버전(Version) 2.0’을 발표하며 두 번째 변신을 선언했다. “기술 기업이 30년 이상 지속 성장하려면 기존의 기술, 비즈니스 모델, 보유 자산을 과감히 버리고 파괴적인 혁신 기업이 되어야한다”는 것이 손 회장이 제시한 변신의 이유다. 이후 프랑스 로봇 기업 알데바란을 인수하여 인간형 로봇 ‘페퍼’를 출시했고, 사물인터넷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인수했다. 무엇보다도 손 회장이 인공지능 시대의 큰손으로 부상한 것은 2017년 5월 약 1천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Vision Fund)’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신기술 분야의 잠재력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전펀드는 이미 승차공유업체 우버, 반도체회사 엔비디아, 오피스공유업체 위워크,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 등 인공지능 시대를 대표하는 80여 개의 기업에 투자하여 소프트뱅크 전체 영업이익의 2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비전펀드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7월 말 새롭게 출범한 ‘비전펀드 2’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손 회장은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 기업에 더욱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명만 바뀌지 않았을 뿐 소프트웨어 유통에서 인터넷, 통신을 거쳐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신기술 분야로 변신을 거듭해 온 소프트뱅크와 마찬가지로 우리 대한민국 역시 눈앞에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턱없이 부족한 인공지능 전문가를 조속히 양성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노동자들이 직무 내용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 노동법제, 사회안전망 등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컴퓨팅 파워, 학습용 데이터 구축 등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 산업에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디지털 신산업을 육성하여 국가 경제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구산업과 신산업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묘수가 요구된다. 인공지능이 사생활 침해나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지 않도록 인공지능 윤리를 정립하고 관련 법·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한 인재양성, 일자리 변화 대응, 산업기반 조성, 법·제도 정비와 같은 분야별 인공지능 정책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한 AI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과의 인공지능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전략과 전술도 수립해야 한다. 인공지능 분야 국가 경쟁력을 분석한 맥킨지 보고서1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이미 인공지능 투자규모, 연구실적, 경제적 활용, 혁신 역량, 전문가 보유 수준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17개 국가가 포함된 2위 그룹에 속해 있다. 향후 5년 내에 2위 그룹 안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다. 우리나라가 승자 편에 서려면 미국, 중국과 양적 경쟁을 지양하고 차별화를 통한 협력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인공지능 분업 구조에 효과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 부품·소재 분야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향후 인공지능 분야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일본 중에서 누가 낫다고 딱히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예컨대 인공지능 연구 건수에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앞서지만, 최상위급 논문은 우리나라가 다소 우세하다.2 한국과 일본의 인공지능 분야 특허 역시 약 6만 3천여 건으로 동등한 수준이다.3 “일본에는 비전펀드가 투자할만한 기업이 없다”는 손 회장의 작심 발언에서 우리가 왜 인공지능에 집중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다.

걱정스러운 점은 일본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국가 근간을 바꾸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3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22년까지 인공지능 활성화에 15억 유로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5월에는 영국 정부도 10억 파운드의 자금을 인공지능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올해 3월 인공지능 인재육성, 인공지능 산업 경쟁력 강화,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존엄성 추구 등을 목적으로 하는 ‘AI 사회원칙’과 ‘AI 전략 2019’를 발표했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아직도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혁신 이야기만 나오면 ‘기업이냐 정부냐’ 식의 무의미한 이분법적 논란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지구상에 기업 또는 정부 중 하나를 택하여 혁신을 이룬 나라는 없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긴밀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한 방향으로 나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만 존재할 뿐이다.

  • 1 Mckinsey Global Institute(2018.9.), Modeling the Impact of AI on the World Economy
  • 2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2018), 인공지능 연구역량 국제비교 및 시사점
  • 3 Stanford University(2018), The AI Index 2018 Annual Report

키워드 인공지능 정책방향 월간SW중심사회 2019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