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와 플랫폼 기반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

날짜2022.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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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옥 연구위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xingyu@kisdi.re.kr
  • 디지털화와 글로벌 가치사슬
    • 디지털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가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가치의 정의, 가치가 창출되는 방식, 가치의 목표.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는 그간 기업 단위에서도 다르지 않다. 급격한 변화와 변화에의 적응, 그 안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련의 행위가 디지털화되고, 기업이 가치를 포착하고 생성하는 과정이 변화한다.
    • 기업이 가치를 포착하고 확보해나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전후방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가치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은 가치사슬로 표현된다. 즉, 가치사슬은 기업에서 경쟁전략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경쟁적 지위를 파악하고 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모형이다. 전통적인 경제체제에서 가치사슬이 하나의 가치사슬(R&D, 생산, 유통, 소비)로 연결된 파이프라인 경제였다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가치사슬은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한 플랫폼 기반 경제(규모의 수요경제)로 변화된다.
    • 각자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중간재, 인력이동을 통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견고함보다는, 디지털화를 통한 데이터나 원거리 서비스 기반의 연계가 강화되고, 외부충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가치사슬이 재구성되어가는 중이다.
    • 이 재구성의 중심에는 플랫폼이 있다. 플랫폼 기반의 가치사슬은 이전 ICT 서비스 산업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가치사슬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로 구성된다. 공급자, 수요자, 제3자 개발사, 투자자, 유통과 마케팅, 인프라 등 각종 주체와 리소스가 얽힐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보유한 자원과 가치를 통합,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수요자에게 전달한다. Cennamo(2020)에 따르면, 플랫폼은 기업의 재화와 서비스가 최종 수요자에게 가치를 창출,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인프라스트럭처이다. 쉽게 말하면, 기존 가치사슬 상의 행위와 요소, 즉 인프라, 기술개발, 생산과 유통 등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통으로 녹아드는’ 형태이며, 플랫폼은 클라우드 인프라와 SaaS 형태로 모듈화된 기술을 제공하여 기업들이 그 위에서 또 다른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조금 더 조밀하게 들여다보자면, 가치사슬 행위 중 인프라와 R&D는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와 기술서비스, SaaS로 대체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포터의 가치사슬에서 기업이 비용을 낮추고 수익을 올려 가치를 창출하는 본원적 활동(기업 내부 물류, 생산, 유통/외부물류, 판매)와 지원활동(인프라, 연구개발, 구매/조달 등)은 각각의 단계가 플랫폼 서비스화 되거나, 플랫폼 기반의 외부 서비스 활용을 통한 즉각적인 보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즉, 플랫폼이 모듈화되고 범용화된 형태의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전에는 기업 자체의 역량과 시간, 금전적 비용을 쏟아부어야 했던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 물류 체계 구축과 판매경로 확보 등이 훨씬 간소화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 클라우드와 AI 등 기술 발전에 따라 기술플랫폼 기반의 보완재 확보가 더욱 쉽게 일어나면서,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사슬 변화를 촉진한다. 특히, 기업의 인프라 도입을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기술도입의 경로가 되는 클라우드의 발전, AI 기술의 범용화 등은 가치사슬의 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 클라우드 AI 기반의 가치사슬 변화
    • 클라우드는 컴퓨팅 파워와 인프라에 대한 민주화된 접근방식을 제공하고, 소규모 회사가 비용 부담을 낮추고 최신 인프라에서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하여, 신생기업의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산업지형을 바꾸는 게임체인저로 기능한다. 단순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넘어, 급속도로 증가하는 데이터를 가치 있는 정보로 관리하는 수단을 제공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탑재, 수요자에게 연결한다. 또한, SaaS 시장의 성장과 클라우드 마켓플레이스는 무료 SW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 기술력 대비 마케팅 역량이 취약한 신생기업들의 서비스가 시장에 노출되어 고객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여 진입장벽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
    • 이런 이유로, 디지털화 과정에서 클라우드 채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되며, 비즈니스의 유연성 확보(39%), 유지보수 수고 절감(30%), 비용 절감(17%) 등의 이유로 기업의 클라우드 전환이 진행되는 중이다(Gartner, 2021. 8.). 아마존, MS, 구글 등 주요 사업자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자사 제품에 통합 제공하여 하드웨어에 대한 별도 투자없이 기업들이 컴퓨팅 자원과 기술 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이는 기업의 디지털화와 혁신을 손쉽게 촉진하는 McKinsey(2021. 2)는 클라우드로 인한 가치의 차원(Dimension of value)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각 산업섹터의 기업들이 클라우드를 통해 상당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클라우드의 도입은 비용 최적화와 리스크 경감, 제품 혁신과 규모화를 통한 기업 혁신에 도움이 되어 가치의 확대에 일익한다는 것이다. 수요기업의 클라우드 도입 주요 이유도 IT 관리와 비용 효율화에서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혁신 응용기술 활용 목적으로 변화하는 중으로, 수요에 부합하는 기술환경 및 툴의 지원 여부가 날로 중요해져 가고 있다.
    • 자료: McKinsey(2021.2) 클라우드로 인한 가치창출의 차원
    • 플랫폼 기반 서비스 공급망
    • 이러한 형태의 가치사슬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개방과 공유 두 가지가 필수적인 전제이다. API 등의 발전은 기업의 비즈니스와 외부와의 연결을 촉진하면서 기업의 가치사슬을 확장시키고, 기술과 데이터, 알고리즘 등의 자산에 빠르게 접근하여 보완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며, 핵심 리소스와 지식재산권, 사용권을 개방, 공유한다. 즉, 클라우드는 오픈리소스(open resource)를 통해 각기 다른 이용자집단(개발자, 기업, 소비자 등) 간 개방형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협업과 상호작용을 통해 기업들이 빠른 혁신과 가치창출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 즉, 클라우드 플랫폼을 중심으로 API와 SDK 등을 통해 보완재의 개방과 공유가 촉진되며,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인프라, 기술, 서비스 등의 리소스를 제공하는 CSP(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 Cloud Service Provider)가 공급자로, 공급자가 제공하는 인프라와 서비스를 기반으로 제3의 서비스를 제작하여 판매하거나 최종 소비하는 개발사, 기업이나 개인이 수요자로 기능하게 된다. 또한,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정교해진 서비스는 다시 플랫폼으로 환원, SaaS 제품과 서비스는 클라우드 플랫폼의 마켓플레이스에 탑재되어 클라우드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 공급자-플랫폼-수요자가 상호보완 관계를 이루는 생태계형 가치사슬을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 클라우드 위에 얹어진 대표적인 혁신기술이자, 가치사슬의 재구성을 촉진하는 기술은 AI이다. AI 기술이 범용화되어가면서, 많은 기업은 AI를 활용하여 비용절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 타겟광고 등을 통한 이용자 규모 확대와 서비스의 고도화 등 가치창출과 가치확보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범용 혹은 특정 업무에 특화된 AI 애플리케이션과 머신러닝 개발 플랫폼의 제공 여부, R&D, 자금, 판매, 파트너 생태계, 광범위한 지리적 접근성, AI 역량, 툴의 범위, 데이터 가용성 등의 자원을 중심으로 시장에서 경쟁한다.
    • Mckinsey(2021)는 기업의 AI 적용 비즈니스 기능을 마케팅·판매, 제품과 서비스 개발, 공급망 관리, 제조, 서비스 운영, 전략과 기업 재무, 리스크, 인사 8개 카테고리로 나누어 기업의 적용 정도와 효과를 조사하였다. 개별 행위는 모두 기업의 가치사슬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업의 가치사슬에 AI가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도입이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 자료: McKinsey(2021) 기능별 AI 도입을 통한 비용절감과 매출증대
    • 해당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AI를 도입한 기업들의 79%가 비용절감을, 67%가 수익증대 효과를 경험하였고, 그중 마케팅·판매, 제품 및 서비스 개발 측면에서 AI 도입을 통한 수익증대가 가장 눈에 띈다. 또한, 서비스 운영과 제조 분야 적용을 통해 비용 절감에 큰 효과를 보았다. 포터의 가치사슬에 대입하면, 기업들은 가치사슬의 지원활동에 해당하는 인적 자원관리, 기업 하부구조 등과 본원적 활동에 해당하는 내외부 물류, 제조, 생산, 마케팅, 영업, 서비스 전 단계에서 비용절감과 매츨증대 목적으로 AI를 도입하고 있으며, 마케팅과 세일즈, 제품 개발 등에서 성장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 그뿐만 아니라, AI 기반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공급자에서 수요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던 가치의 흐름은 공동 가치창출(co-creation)로 바뀌고 있다. AI 기반 서비스의 수요자에게서 발생하는 데이터가 무엇보다 중요한 리소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 플랫폼 기반의 글로벌 가치사슬 변화는 지속 가능한가?
      • 글로벌 국가 단위로 확장해 보자면, AI 기술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기술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로컬 플랫폼들이 로컬 데이터를 활용하여 차별화와 특화를 꾀하는 것이 가능해짐으로써,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로컬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으로부터 내수를 방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한 플랫폼이 글로벌화를 진행하는 모습도 목도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플랫폼들에게도 로컬 소비자가 생산하는 데이터의 중요도가 배가되면서, 로컬에서 창출되는 가치가 글로벌 가치사슬의 상류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도 강화되고 있다.
      • 이에 따라 알리바바·텐센트·네이버·카카오, 그랩 등 로컬에 뿌리를 둔 플랫폼 기업들의 약진이 가능해졌고, 플랫폼 기반의 자원통합과 수직·수평적 확장을 통해 기존 선도국 기업들이 차지하던 글로벌 가치사슬의 상하류 부문으로의 이동, 기술과 플랫폼 기반 고부가가치화 실현을 통한 스마일커브 자체의 상향이동을 할 수 있었다.
      • 원천기술과 클라우드, AI 등의 플랫폼을 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그 플랫폼 위에 구현되는 새로운 서비스 모델들은 국가 단위로 출현하는 양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후발국들은 선도국에서 출현한 서비스 아이디어를 로컬 맥락에 맞게 응용, 개선하면서 자체적인 로컬 플랫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의 쿠팡, 중국의 바이트댄스, 인도의 플립카트 등 고유한 특성을 가진 유니콘 기업들이 대거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 안에서 범용화되고 모듈화된 핵심기술과 부품, 개방형 협력을 기반으로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플랫폼 기반 서비스 공급망
      •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의 대형 플랫폼 기업들 또한 클라우드와 AI 기반으로 생태계를 형성해 나가면서 국내 기업들의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외에도, 2022년 8월 기준 총 15개의 기업이 유니콘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비약적인 발전상을 보인다. 그간 한국의 유니콘기업 중 혁신 기술기업이 부재하다는 평을 받아온 데에 반해, 15개 중 의약 기업인 에이프로겐, 화장품 기업인 GP클럽과 LP코스메틱을 제외한 나머지 12개가 모두 기술기업이며, 특히 2020년에서 2022년 사이 7개가 유니콘 기업으로 폭발적인 가치상승을 보였다. 이들은 모두 해외의 클라우드를 활용하는 SaaS 기업이자, 공급자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출발하고,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면서, 소비자 접점을 가진 서비스 기업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련 분야 기술 솔루션을 제공하는 SaaS 기업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야놀자’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숙박거래 플랫폼에서 종합 여행플랫폼으로의 다변화를 넘어서서, 2021년에는 야놀자 클라우드를 설립하여 호텔 운영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공하는 솔루션 SaaS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이 솔루션을 바탕으로 글로벌화를 진행 중이다.
      • 그러나 수직적 분업구조에서 탈피한 수평적 네트워크 관계, 그리고 후발주자들의 거센 도약은 지속가능한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디지털 보호주의의 강화와 불거지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보면 모듈화되고 범용화된 리소스 제공자, 개방과 공유를 통한 상호혁신의 촉진자로서의 플랫폼의 기능, 이러한 기능으로 촉발된 가치사슬의 재구성, 그 속에서 가능한 후발주자들의 비약적 혁신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디지털 세상에서 유용한 플랫폼 기반의 가치사슬은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과 서비스의 초국경성, 개방과 공유를 전제로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데이터 지역화 등의 문제는 클라우드의 본질인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과 위치독립성, 초국경적 특성을 가로막아, 향후 클라우드 시장 지형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요인이다.
      • NIKKEI Asia(2021. 8. 18.)는 미중 갈등과 미국의 데이터 안보 기조로 인해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미중 양 진영의 분리가 표면화될 우려가 존재함을 제시했고, 실제로 틱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이트댄스가 중국 이외의 비즈니스에 알리바바 클라우드 사용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진행한 바 있다. 데이터 지역화의 심화는 클라우드의 기본 전제인 데이터의 국경 간 자유로운 전송과 저장을 제한하여, 클라우드 서비스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 특정 위치에 데이터 시설을 배치하도록 하는 요구는 클라우드 제공자의 위치 최적화를 가로막거나 대상 시장에 대한 서비스를 제한하도록 할 수 있어, 클라우드 서비스의 개방성과 접근성이 저해되고 제한적이고 탄력성이 떨어지는 네트워크 성능의 웹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제기된다(Bitthal Sharma, 2021. 8.).
      • 또한, 인프라와 기술의 제공을 통해 후발주자들의 빠른 혁신이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플랫폼 기반의 가치사슬 변화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기술을 제공하는 거대 플랫폼들이 다른 플랫제품/서비스 생산자들의 생성력(generativity)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들 플랫폼이 제공하는 AI 기술 등은 자체 기술개발이 힘든 기업들에게 빠르고 손쉬운 혁신의 기회를 주는 것이 사실이나, 거대 플랫폼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높이고, 스스로의 혁신역량을 저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이는 거대한 기술플랫폼을 선발국이 독점하고, 후발국은 모방자나 추격자로서의 역할만을 답습하는 구조로 고착화될 수 있다.
      • 이러한 흐름은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을 둔 플랫폼 서비스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중소기업들에 막대한 클라우드 이용료나 전환비용으로 작용하게 될 수 있으며, 나아가 플랫폼 기반으로 촉진되는 가치사슬의 초국경성, 리소스의 개방과 공유, 상호호혜적인 네트워크 관계와 협업, 공동의 가치창출로부터 발생하는 혁신의 기회가적어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