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제도 상의 문제인지, 관행 상의 문제인지, 아니면 공무원의 직무유기인지 모르겠다. 행정학에 문외한인 컴퓨터 공학도의 눈에는 커다란 모순인데도 창조경제를 추구하는 이 정부에서도 개선이 안 된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국책연구원에서 편안한 연구 생활을 즐기던 한 제자가 공학도의 사회적 사명을 들먹이며 꼬드기는 교수의 꼬임에 빠져서 창업을 했다. 연구소에서 자신이 개발하던 소프트웨어 기술을 양도 받아서 동료 한 명과 같이 연구소 창업을 한 것이다. 이후 이 회사 A는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하여 1년 후에 80%이었던 성능을 92%로 올렸다.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것을 계속하게 되니 연구 성과가 빨리 나오게 되었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나 즐거움은 여기까지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정부에 납품하는데 경쟁자는 같은 기술을 전수 받은 B기업이다. B기업은 기술 개발에 투자하지 않고 전수 받은 80%짜리를 그대로 갖고 나타났다. 어느 기업이 경쟁에서 이겼을까? 그 답은 B기업이다.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않은, 즉 원가가 적게 들어간 B기업이 가격 경제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B기업 제품이 선택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공공조달의 현실이다. A기업의 기술 개발이 비효율적이어서 개발 비용을 낭비했다? 그럴 수도 있다. 어떻던 이러한 상황에서 기술개발 노력은 무모하다.

기술 제품의 공공조달에 관계하는 수요처, 예산 당국, 조달기능, 그리고 감사기능이 각각 최선을 다 하는데 그 결과는 모순이다. 조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이런 모순이 일어날까?

예산 당국에서는 수요처의 수요 제기에 적절한 예산을 배정한다. 조달의 임무는 배정된 예산을 가급적 많이 절약하여 구매하는 것이다. BMT, 혹은 전문가 기술평가를 거쳐 경쟁 제품들의 순위를 정하고 경쟁 입찰을 시킨다. 경쟁입찰에서는 두 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가격 경쟁이다. 최저가 입찰이다.

물론 수의계약 하자고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는 되어 있다. 또 최저가 입찰을 피하고 적정가 입찰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하여는 서류작업의 노력과 감사의 칼날을 무릅쓰고 기술 우위 제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공직자의 열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모든 공직자가 다 그런 열정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열정에 대한 보상은커녕 징계가 다반사다. 하루가 멀다고 공공구매에서의 비리가 보도되는 상황에서 감사의 강도를 낮추라거나 공직자들의 용기만을 부축일 수는 없다. 조달제도의 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도 정보시스템 개발용역이나 소프트웨어의 구매입찰에서 기술과 가격의 비율을 9:1로 할 수 있다. 일반 조달에 적용하던 7:3에서 8:2을 거쳐서 9:1로 왔건만 그 효과는 없다. 일반적으로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복잡도가 높기 때문에 급하게 불려 온 외부 평가자들이 기술평가에서 차이를 많이 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집약적인 제품이나 소프트웨어나 콘텐트 등의 지식문화 상품을 구매하는데 최저가 입찰은 피해야 한다. 적격 업체 선정 후라 할지라도 최저가 입찰 방식은 안 된다. 그림을 구입할 때 최저가 입찰을 하겠는가? 가용한 예산 범위 내에서 가장 선호하는 그림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소프트웨어나 콘텐트 구매에서 10:0을 제안한다. 즉 가격은 보지 말자는 것이다. 미리 적정 가격을 산정하고 이에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방식을 도입하여야 한다. 예산 당국에서는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완성품인 경우는 시장조사가 바람직할 것이다. 큰 정보시스템의 개발용역은 건축물 발주와 같이 설계와 시공을 분리해야 한다. 즉 정보화 전략계획(ISP)을 의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격분석을 통해서 적정가격을 산정하자.

건축 설계 공모와 같이 설계나 프로토타입 공모를 통하여 우수작을 선정하여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도 창의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공직자들의 열정에 보상하기 위하여 업무 평가에 기술 도입을 통한 가치 창출과 업무 혁신을 반영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이다.

우리는 산업사회에서의 작은 성공에 취하여 제도와 관행을 창조경제에 맞도록 수정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더 이상 젊은 기술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섬세한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창조경제여 응답하라.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

원문: 디지탈타임스에 기고한 글

[2013년 12월 23일자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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