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방송콘텐츠 유통체계 만들자
  • 김진형 제1대 소장 (2013.12. ~ 2016.07.)
날짜201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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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
    • A교수는 부인의 50번째 생일을 맞아 색다른 선물을 준비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어렸을 때 리틀엔젤스 단원이었던 부인의 동영상을 구해서 최근의 모습과 비교하며 감동적인 스토리를 구성하고자 했다. 여러 방송국에 찾아가서 그 당시 동영상을 구입할 수 있는가를 문의하였으나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방송국에서는 합창단 이름인 ‘리틀엔젤스’, 혹은 부인의 이름을 키워드로 동영상이 색인되어 있지 않았다. A교수는 부인이 출연한 리틀엔젤스 동영상을 구하기 위하여 큰 비용도 지급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방송국은 고객이 원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판매하여 수익을 올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셈이다. B교사는 각종 파충류가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하여 올챙이가 되고 성장하는 과정을 모은 동영상을 만들어 초등학교 생물 수업에 사용하고 싶다. 그러나 파충류를 실물 촬영하여 동영상을 제작하기에는 현직 교사로서 한계가 있다. 공영 방송국이나 교육 방송국에는 원 소재가 있음직한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만약 지난 30년간의 축구 한일전에서 골 장면만 모은다면, 여러 가수가 부르는 같은 노래를 모아서 가수의 특성을 비교할 수 있다면, 유명 연예인의 어린 시절과 요즘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면, 이런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새로운 느낌을 줄 것이고 사업성이 있지 않을까?
    • 우리나라는 창조 활동이 활성화되는 지식창조사회로의 진입을 꿈꾼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식창조사회로의 진입을 ‘창조경제’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 창조경제다. 그러나 창조는 맨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조가 시작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원 소재, 그리고 이를 잘 엮을 수 있는 다양한 도구가 제공되고, 이들이 만든 창작물이 유통되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이 준비되어야 한다. 정부가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도구의 사용법을 숙달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를 위한 콘텐츠의 원 소재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도구의 확산보다 훨씬 중요하다. 국가가 나서서 창조 생태계의 바탕을 깔아주어 크게 성공한 사례를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의 국역(國譯) 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국역하여 인터넷을 통해 개방하니 조선왕조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하여 많은 국민의 이해가 깊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좋은 역사영화와 역사소설이 많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의녀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대장금이라는 멋진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이 드라마는 전세계 시민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문자 기반의 콘텐츠보다는 영상문화 콘텐츠의 시대다. 영상문화 콘텐츠 생태계의 창조 인프라를 정부가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방송국은 영상문화콘텐츠 자원의 보물 창고다. 이 자원을 창조 인프라로서 공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동영상 콘텐츠를 장면단위로 작게 분할하여 목록을 만들어 제공하자. 제목 등도 좋지만 낮은 해상도의 섬네일을 제공하면 방송국이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자원을 무상으로 제공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비용을 징수해도 되고, 콘텐츠 기반 창업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이익 공유 방식 또는 후불제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콘텐츠를 장면 단위로 분할하고 그 내용을 기술하는 목록 작업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이 작업에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을 참여시킨다면 콘텐츠활용 생태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청년 실업률을 낮추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목록 작업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콘텐츠 융합 회사를 창업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국내 영상문화 콘텐츠의 우수성은 ‘한류’라는 글로벌 열풍을 통해 검증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한류의 확대와 지속성 확보다. 한류를 ‘한 때의 유행’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영상문화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창조경제를 위하여 방송국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 본 칼럼은 디지털타임스 10월 6일(월) [이슈와 전망]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