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3번의 패배를 겪고서 값진 1승을 거뒀다. 그는 지난 3번의 대국 패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고,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컸다는 속내도 내비친 바 있다.
이세돌 9단은 우리나라의 국보급 프로 바둑 선수이다. 그런 이 9단의 연이은 패배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고, 언론들은 연방 인공지능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을 보도하기에 바빴다. 혹자는 이번 대국이 애초부터 불공정한 승부였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왜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컴퓨터나 기계가 사람보다 어리석은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기계에 패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이제 이러한 생각은 바뀔 때가 됐다.
이 글에서 먼저 하고 싶은 얘기는 인공지능에 대한 오해이다.
일반인은 인공지능이 갑작스레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인공지능은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 아니다. 이번 알파고에 사용된 딥러닝 기법, 지도학습, 강화학습 등과 같은 인공지능의 세부개념들은 예전부터 있었던 기술들이다. 구글은 이 기술들을 잘 조합했고, 발달한 하드웨어의 성능 위에서 완성했다.
또한,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소설과 영화 속의 인류 종말과 같은 일을 걱정하며, 지금의 인공지능이 당장에라도 모든 면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것처럼 공포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가 1202개의 CPU(중앙처리장치)를 갖기 때문에 1202대의 컴퓨터와 사람 1명의 불공평한 대결이라고 주장도 있지만, 사실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것은 약 30년 전의 컴퓨터 개념을 기반으로 한 오해이다. 현대의 컴퓨터는 여러 대의 '계산 유닛(unit)'을 엮는 클라우드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컴퓨터 몇 대' 같은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 사회는 결국 지능화된 사회로 변화해 갈 것이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기술이 인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사회 혁신을 이끌어왔던 것처럼, 인공지능 또한 변화의 흐름으로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얘기는 이세돌 9단이 이번 패배로 결코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9단의 실력은 인간으로서 정점에 올라가 있다. 다만, 알파고의 바둑능력이 좀 더 뛰어났을 뿐이다.
알파고는 그간 학습한 바둑 기보를 토대로, 현 상황에서 나름대로 가장 최적이라고 여겨지는 수를 계산해 내고 그에 따라 수를 두었다. 소위 '실수'나 '묘수'로 불린 수들이나,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싸움을 피한다'라고 평가되었던 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 입장에서 내린 해석일 뿐, 알파고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의 수를 '계산'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둑의 수천 년 역사 동안 인간과 인간의 대국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했을 것이고, 인간은 경험적으로 이 경우의 수를 '정석' 또는 '실수'로 분류해왔다. 그리고 그동안 '정석'이라고 여겼던 수에 '정형화’됐는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자면 길들여졌다고나 할까? 이는 인공지능에서도 아주 대표적인 문제로 알려진 '지역 최소점·최대점'(Local Minima/Maxima) 문제로 볼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더 높은 산이 있는데 현재 인간의 시야에는 지금 있는 산의 봉우리가 가장 높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묘수'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다. 아직도 바둑에는 그 엄청난 경우의 수 속에 인간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묘수' 들이 숨어 있다. 지구에 사는 인간이 아직도 지구를 완벽하게 다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알파고는 그 '정석'을 학습했고, 이를 토대로 막강한 계산력을 이용해서 인간이 가보지 않았던 곳까지 좀 더 깊이 가봤을 뿐이다.
알파고 역시 약점은 있다. 바둑의 모든 경우의 수를 끝까지 다 계산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력으로 불가능하며, 앞으로도 오랜 기간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알파고는 승리를 위해 최적에 가까운 수를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을 그물에 비유하자면, 그물이 아무리 촘촘하다 해도 물이나 공기를 담아둘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단지 알파고의 그물망이 인간 또는 이세돌 9단의 그물망보다 좀 더 촘촘할 뿐이다. 인간의 그물망이 걸러내지 못하는 것을 알파고는 걸러내는 셈이다. 기술이 더 발달한다면 지금보다 더 정확하게 먼 수를 내다보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고 다른 분야에도 응용될 것이다.
종합하자면, 인공지능의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런 변화의 흐름에 준비가 덜 되어 있고, 이런 변화에 당혹해하는 것 같다. 우리에겐 변화를 맞을 준비가 필요하다. 이번 구글의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이젠 우리가 앞으로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이런 변화 속에서 바둑에서 인공지능의 인간에 대한 승리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세돌 9단의 이번 패배는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변화의 흐름이고, 그것이 인간 챔피언으로서의 명성과 실력을 잃어버리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더 많은 놀라움과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을 재앙이라고 보는 것은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인간'으로서의 거부감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이번 이세돌 9단의 첫 승리에 응원을 보내며, 바라건대 이번 경기의 결과로 이세돌 9단이 자책하거나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