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정부 또한 디지털 기술이 촉진시키는 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행정 효율화, 공공 서비스 개선, 국민과의 소통 등에서 디지털 전환에 따른 혁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이 공공 부문 전반에 깊숙이 침투함에 따라 새롭게 부상한 개념이 바로 GovTech(Government Technology)이다. GovTech는 정부 (Government)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공공 서비스 개선과 정부 운영의 효율성 향상 등 민간의 기술을 통한 혁신 주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FinTech가 금융 분야의 기술 혁신을, AgriTech가 농업 분야의 기술 혁신을 의미하는 것처럼, GovTech는 정부 부문의 기술 혁신을 뜻한다. GovTech는 기존 전자정부에서 추구하던 정부 업무와 서비스의 디지털화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 중심의 공공 혁신이라는 철학을 전제로 한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어떻게 행정에 접목하고, 민간과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 규모 또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GovTech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6,155.9억 달러로 추정되며, 2033년에는 2조 3,0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은 약 15.8%로, 이는 GovTech가 일시적인 기술 트렌드를 넘어 정부 운영과 공공 서비스 혁신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GovTech의 도입과 확산은 기술적 유용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술 자체의 성능이나 경제적 효과도 중요하지만, 민간 부문에 비해 공공 부문에서의 기술 도입은 상대적으로 보다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디지털 기술이 공공 조직에 정착하여 효과를 발휘하고 GovTech이 확산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사회의 제도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행태를 닮아가며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하는 생존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도주의 조직론(Organizational Institutionalism)은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기능주의적 관점이 아닌 제도적 관점을 통해 조직의 행태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를 적용하여 기술이 공공 조직 내에서 어떻게 정당화되고 제도화되는지에 대한 통찰과 GovTech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도적 맥락에서 바라본 GovTech: 정당성을 기반으로 한 동형적 확산 제도주의 조직론에서는 조직의 변화를 발생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정당성을 주목한다. 조직은 정당성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합리적이라고 인식되는 규칙과 규범을 수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상적인 제도의 모습이 마련되고 조직들은 그 제도에 조응하여 서로 유사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조직이 정당성을 추구하면서 제도에 조응하고 점차 유사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현상은 ‘동형화(Isomorphism)’라는 학술적 용어로 표현되며, 이러한 내용들이 제도주의 조직론의 핵심이자 조직을 둘러싼 제도적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이러한 개념을 GovTech에 적용해 보면, GovTech가 확산되는 이유는 단지 기술이 유용하고 효율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민간의 기술을 도입할 때 정부가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조직으로 보이는가에 대한 ‘정당성 확보’를 고민한다. 즉, GovTech는 단순한 업무 효율화 수단이 아니라, 정부가 디지털 전환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올바른 정부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GovTech 확산은 어떤 형태로 발생할까? 제도주의 조직론에서는 동형화를 크게 모방적, 강제적, 규범적 동형화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앞으로 GovTech가 어떤 형태로 확산될 것인지 예측해 보자. 첫째, 모방적 동형화(Mimetic Isomorphism)는 조직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조직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경우이다. 정부가 디지털 전환의 방향성과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거나, 내부 역량이 부족할 때 GovTech에서도 다른 국가의 정책 도구나 거버넌스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GovTech Catalyst(GTC)는 혁신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데 2천만 파운드(한화 약 300억 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공공 부문에서 특정 사회문제를 제시하면 구체적 해결 방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만 가진 기업도 참여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해당 솔루션을 정부가 구매하도록 보장한다. GTC는 성공적인 GovTech 사례로서 향후 GovTech을 실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국가의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모방적 동형화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강제적 동형화(Coercive Isomorphism)는 사회의 법률·규제 등의 제도적 규칙이나 상위 조직, 국제 기구의 요구에 따라 제도를 수용하는 경우이다. GovTech에서는 World Bank, OECD, UN 등의 디지털 정부 평가 지표에 부합하기 위해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원조 혹은 협력 조건으로 기술 플랫폼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World Bank는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GovTech Maturity Index (GTMI)를 실시해 국가들이 디지털 정부 혁신에서 어느 정도의 성숙도에 도달했는지 측정하여 GovTech 성숙도 지수를 발표한다. 해당 지수는 핵심 정부 시스템 및 공공 서비스 전달의 디지털화, 디지털 시민 참여 등 다양한 영역을 보여주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공개되는 국가별 GovTech 수준을 의식한다면 GovTech의 도입과 확산이 가속화될 수 있다. 셋째, 규범적 동형화(Normative Isomorphism)는 전문가 네트워크, 직업 교육, 학술 교류 등을 통해 유사한 정책과 기술 채택이 확산되는 현상이다. 즉, 전문가들이 특정 분야에 관한 조건, 방법 등을 정의하고 확립하는 과정을 통해 어떠한 규범이 만들어지면, 조직들은 그 규범을 지키면서 동형화 현상이 나타난다.7 GovTech에서도 디지털 정책 담당 공무원, 기업의 CIO(Chief Information Officer), 기술 관료들이 국제 콘퍼런스, 연수, 포럼 등을 통해 공통된 정책 언어와 실행 방식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GovTech 시스템 확산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GovTech의 확산은 단순히 기술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라, 성공적인 GovTech 사례에 대한 학습, 제도적 규칙의 수용, 전문가 집단 간 규범의 공유 등 제도주의적 동학에 의해 촉진되면서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단, GovTech가 확산된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국가(조직)에게서 올바른 형태로 GovTech이 내재화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조직이 외부 기대에 부응하여 형식적으로 제도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내부 운영과 괴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주의 조직론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디커플링(Decoupling)이라 정의하며, 부정합화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GovTech에서도 외형적인 모습, 즉 시스템은 도입되었으나 시민의 활용도는 낮고, 내부 업무 방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관행에 머무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GovTech의 핵심 요소인 공공 서비스 제공 방식의 혁신을 강조하기 위해 겉으로는 ‘혁신적인’ 구조를 갖추었음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GovTech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확산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점은 경계되어야 한다. 결국 GovTech의 성공은 단순한 민간 부문의 기술 도입이 아니라, 해당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문화적, 조직적 기반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관련 법과 제도가 기술 활용을 정당화하고 촉진할 수 있는 상태 속에서, 공무원과 시민 모두가 디지털 기술을 행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또한, 민간 기술을 통한 공공의 혁신이 실제 업무 프로세스, 책임 구조, 부처 간 협업 체계와 충돌 없이 통합될 수 있는 조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GovTech는 새로운 기술을 단순히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중심으로 정부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하고, 제도를 바꾸며, 협력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복합적 혁신 과정이다. 역능적 행위자(Empowered Actor)로서의 정부: 모방을 넘어서는 혁신 그렇다면 정부가 복합적인 혁신을 주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역할 변화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동형화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배태된 행위자(Embedded Actor)로서의 조직은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행동하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이익과 선호가 형성된다. 하지만 역능적 행위자로서의 조직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이상의 분야까지 관여한다. 과거 정부의 역할은 공공 서비스 제공에 한정되었다. 정책과 행정의 영역은 정부가 담당하고, 기술 개발과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양자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회문제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행정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정부의 역할은 확대되고 민간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간이 주도하던 기술 혁신과 문제 해결의 영역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협력하는 주체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즉, 정부는 책임성, 공공성의 가치를 중시하던 본연의 역할을 넘어 효율성, 혁신성의 가치에도 주목하는 능동적 행위자로 변모하였다. GovTech의 도입과 확산 과정에서도 정부는 기술의 수요자나 모방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을 자국의 행정 구조와 사회적 맥락에 맞게 재설계하고 정착시키는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단지 시스템을 구매하거나 타국의 정책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해당 기술이 국가의 법체계, 데이터 인프라, 조직 문화와 충돌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조정(Adapt)하거나 재설계(Reframe)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반의 민원 처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민간 기술의 적용과 협력, 행정 데이터의 구조화,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 인정, 부처 간 권한과 책임 배분 조정 등 복잡한 제도적 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리더십과 설계 역량이며, 이는 GovTech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GovTech의 실현에 있어 정부는 민간 기업, 시민사회, 스타트업 등 다양한 주체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의 도입뿐 아니라 운영 모델, 법제도 정비, 실증 생태계까지 설계한다. 이는 곧 기술 기반 공공 혁신의 설계자이자 실행 촉진자로서 정부의 새로운 정체성이자 역능적 행위자성의 발현을 보여준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GovTech 사례를 살펴보면, 기술의 성공 여부는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정부의 역량과 전략적 선택, 그리고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하였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와 같이 GovTech를 선도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가 해당된다. 다음 챕터에서 각 사례를 중심으로 각 정부가 어떻게 이러한 능동적 행위자성을 발휘하며 GovTech를 제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해외 GovTech 사례: 능동적인 정부와 제도화된 혁신 미국 – 정책 문제를 디지털로 재정의 미국은 오랜 기간 연방제 특유의 복잡한 행정 체계와 민첩성 부족으로 인해 전자정부의 일관된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2013년 Healthcare.gov의 실패10를 계기로, 정부는 단순한 기술 시스템의 부재를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자체를 디지털 관점에서 재정의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설립된 USDS(United States Digital Service)와 18F는 단순히 기술을 외부에 발주하는 조직이 아니라, 정부 내부의 디지털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중심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USDS는 2014년 8월 백악관에 의해 설립되어 주요 정부 기관에 최신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하여 정부 시스템을 개선하였다. 18F 역시 미국 총무청(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GSA) 산하의 디지털 서비스팀으로, 연방 정부 기관들의 디지털 서비스 개선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민간의 개발 방식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행정 시스템에 도입하며, 기술을 통해 정부 서비스 전반을 다시 설계한다는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 특히, 정부가 정책 실패를 반성 하고 내부에 지속 가능한 디지털 실행 조직을 내재화했다는 점에서, 미국은 기술 도입의 수요자에서 정책 설계자이자 실행자로 기능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싱가포르 – 내부 개발 중심의 디지털 행정 싱가포르는 GovTech Singapore를 중심으로 디지털 서비스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 내부에서 설계·구현하는 구조를 확립해 왔다.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이나 자립성 강화의 차원을 넘어, 정부가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이에 적합한 기술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부처 간 디지털 자원 공유를 위한 핵심 인프라인 CODEX 플랫폼은 정부의 행정 프로세스를 통합하는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CrowdTaskSG와 같은 시민참여 플랫폼은 정부가 기술을 통해 시민과 직접 협업하는 방식을 제도화한 사례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러한 체계를 통해 기술을 단순 도입하는 주체를 넘어, 정책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 생태계를 설계하는 주체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 스타트업과의 구조적 협업을 제도화 영국은 디지털 정부 분야에서 GDS(Government Digital Service)를 중심으로 표준화된 프레임워크와 사용자 중심 서비스를 구축해왔다. 특히 GTC 프로그램은 공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제도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정부는 정책 문제를 제안하고, 스타트업은 이에 대응하는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며, 선정된 기업은 실증사업 기회를 제공받고 결과를 평가받는다. 이는 정부가 기술을 단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공동 정의하고 실험하는 파트너십 기반의 구조를 제도화한 것이다. 즉, 정부는 단순히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발주자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함께 기획하고 실증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GTC는 탐색, 프로토타입, 실증, 조달로 이어지는 명확한 단계와 기준을 갖추고 있어 민관 협업을 제도화한 대표적 GovTech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구조는 정부가 정책 문제를 선제적으로 정의하고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혁신을 유도하는 역능적 행위자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디지털 정부의 진화와 GovTech 기반 구축 한국도 능동적인 정부의 역할로 인해 디지털 정부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오면서 GovTech의 기반이 구축되었다. 한국의 디지털 정부는 1960년대 말 전산화를 시작으로, 1980~1990년대의 행정정보화, 2000년대 전자정부 고도화, 2010년 이후 지능형 정부, 그리고 최근의 디지털플랫폼정부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축적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이 발전의 흐름은 GovTech 확산을 위한 제도적·조직적·기술적 기반이 이미 상당히 구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전자정부 시기를 지나며 주민등록 등·초본 온라인 발급, 홈택스, 정부민원포털 등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 시기의 전자정부는 업무의 효율화, 비용 절감, 민원 간소화를 핵심 목표로 하였으며, 정보 시스템 구축과 통합이 주요 전략이었다. 이러한 전자정부는 정보화 기반의 기능 중심 시스템으로, 국가가 주도하여 국민에게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구조였다. 데이터는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었고, 민간과의 협업보다는 정부 내부의 전산화와 자동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10년 이후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부는 보다 고도화된 디지털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지능형 정부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예측 기반 행정, 맞춤형 서비스, 비대면 민원 처리 등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지능형 정부 시기는 전자정부의 ‘처리’ 중심 구조에서 ‘분석과 대응’ 중심으로 전환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후 디지털플랫폼정부는 지능형 정부의 연장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비전으로 제시되었다. 디지털플랫폼정부는 행정 전반의 데이터가 플랫폼 상에서 연계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제거하며, 국민과 기업이 문제 해결 주체로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정부를 일방적 서비스 제공자에서 개방된 문제 해결 플랫폼의 설계자이자 운영자로 전환시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GovTech는 이러한 디지털 정부의 진화 위에 민간 기술을 활용한 협업, 문제 중심 접근 방식, 사회적 가치 창출과 공공 서비스 제공 방식의 혁신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추가한다. 전자정부가 서비스 자동화를, 지능형 정부가 기술 활용 고도화를 추구하였다면, GovTech는 기술을 중심으로 민간과의 파트너십을 제도화하는 단계이다. 한국은 그동안 전자정부 운영을 통해 구축한 인프라와 경험, 제도적 구조 덕분에 GovTech로 확장하기 위한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다. 정부는 데이터를 공유하고 행정 프로세스를 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하였고, 국민은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높은 수용성과 기대치를 보이고 있다. 즉, 한국의 GovTech는 단순히 기술을 새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춰진 디지털 행정 기반 위에서 민간 협업과 제도적 실험을 통해 공공문제 해결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민간과 함께 문제 중심의 정책 실험 구조를 설계하는 역량을 갖춘 정책 설계자이자 조정자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고 있는 ‘GovTech 창업기업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정부가 현장의 문제를 과제로 제시하고,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고 실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선정된 기업을 대상으로 GovTech 서비스 개발을 위한 창업사업화 자금, 클라우드 인프라 비용, 데이터셋 구축, SW 품질 검증 등 사업화 지원부터 인큐베이팅·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하며, 공공기관이 실제 수요기관으로 참여하여 정책 현장과 기술 실험이 연결되는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가 민간과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역능적 행위자로서 공공 혁신을 주도하는 GovTech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을 넘어 거버넌스로 가기 위한 GovTech의 미래 GovTech는 단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술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를 둘러싼 제도적 맥락과의 정합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정부 조직과 문화, 법과 규범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주의 조직론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은 기능적 효율성만으로는 확산되지 않으며, 정당성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GovTech의 확산 역시 전 세계적으로 공공에도 민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기대와 정부의 외부 정당성 확보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기구의 평가에 부응하거나 선진국의 성공 모델을 모방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산이 제도적 정비 없이 형식에만 치우칠 경우,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여 민간의 기술은 도입되었으나 행정 실무나 시민 체감에는 변화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GovTech가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 지속 가능한 공공 혁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부는 기술 도입을 뒷받침할 법·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부처 간 데이터 연계와 협업 체계를 통해 행정 구조 자체를 유연하게 조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동시에 공공의 문제를 민간과 함께 설계하고 실험할 수 있도록 민간의 기술이 정책 실증, 솔루션 구매까지 이어지는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 민간 또한 단순히 정부 지원금을 받거나 사업에 참여해 보는 것이 아니라 공급한 기술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공공 서비스 제공 방식을 혁신하는 데 기여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혁신적 서비스를 기획하고, 실증을 통해 정책 현장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창의성과 실행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보완적 협력이 이루어질 때, GovTech는 단순한 디지털 사업이 아닌 공공 서비스 혁신의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정착할 수 있다. GovTech는 이름만 보면 ‘기술’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책, 제도, 협력, 실행 역량이 맞물린 총체적인 ‘거버넌스’의 문제이다. 일시적 트렌드나 시범사업을 넘어, 정부와 민간이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도 상호 이해와 공동 설계를 통해 문제 해결을 도모할 때, GovTech는 진정한 공공 혁신의 실천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다.